정지호 기자
방화동 광명~서울 고속도로 주민 설명회는 그야말로 책임회피의 ‘향연’이었다. ‘책임자가 누구냐’는 방화동 주민들의 질문에 시공사이자, 이번 설명회 진행을 맡은 코오롱 글로벌은 서서울고속도로 주식회사가 ‘주체사’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강서구청에서는 누가 나왔냐’는 주민들의 질문에는 소속 공무원들이 도망을 가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정작 책임지고 주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할 사업시행사인 서서울고속도로 측에서는 아무도 주민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28일 강서구청, 코오롱 글로벌, 감리사인 다산컨설턴트 등은 방화1동 주민센터에서 ‘광명~서울 고속도로 민자투자사업 4공구 공사착공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민설명회에는 방화동 일대 주민 70명이 참석했는데, 과거 와는 달리 주민 참여율이 저조하다며 시작 전부터 탄식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방화동 주민 윤문순 씨는 “날씨가 추운 탓인지 이전 설명회에 비해 참석자가 확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고, 주민 이상호 씨는 “백날 설명회만 열면 뭐하나. 주민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도로건설로 인해 발생할 소음과 분진 등으로 인근 상권과 집값이 주저앉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주민 양소윤 씨는 “소음, 분진 등 환경문제 때문에 인근 상권과 부동산 가치는 확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속도로 건설예정지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주민 김태용 씨는 “집값 문제는 둘째치고 스트레스로 먼저 죽을 수도 있다”며 “구청이던 시공사던 간에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설명회에서는 감리를 담당했던 남억열 다산컨설턴트 부사장이 발표자로 나서 사업과 공사추진방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방화동 일대를 통과하는 광명~서울 고속도로 4공구는 문산방향 기준 서울을 통과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올림픽대로와도 이어질 전망이다.
주민들, "고속도로 건설시 교통 정체 유발…주민들의 생활권, 안중에도 없나" 목소리 높여
주민들의 질의시간도 이어졌다. 답변자로 이번 4공구 설계를 총괄했던 박홍래 다산 전무가 나섰다. 분노한 주민들의 질문세례에 일일이 답변하느라 박홍래 전무는 진땀을 뺐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신방화역 통과 문제였다. 광명~서울 고속도로는 계획상 신방화역의 지하로 지나가도록 설계돼 있었는데, 당초 계획이었던 지하화 계획을 번복하고 역사 위로 지나가는 것으로 주민들 몰래 변경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민 양철형 씨는 “처음에는 신방화역 밑으로 도로를 뚫는다고 하지 않았었나”며 “왜 지금은 역사 위를 지나가는 것으로 바뀐 것인지 해명해 달라. 주민들을 속인 것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박 전무는 “처음부터 역사 위로 지나가는 계획이었고, 번복한 바 없다”며 “지하로 가는 것은 계획 완료 전에 검토는 해봤으나, 터널을 뚫을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해 토목학 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주민 임한식 씨는 “구청도 주민도 모르는 작업을 시공사 측에서 진행하는 것을 목격한적이 있는데, 사전협의가 된 것인가”라며 “또한 이번 설명회도 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주민들 참여가 저조한 것 같다. 나도 겨우 알아내서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전무는 “기존 측량자료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새롭게 측량한 것이다. 설명회에 대해선 사전에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 못한 점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지반침하 등 안전문제가 핵심이슈였던 항동 설명회 때와는 달리, 방화동 설명회에서는 상습 정체 구간으로 악명높은 올림픽대로와 광명~서울 고속도로가 직접 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차량 정체 문제가 주민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주민 윤치용 씨는 “최근 강서구는 마곡지구 등 인구증가 추세 때문에 차량 통행량이 점차 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여기에 항상 밀리는 도로인 올림픽대로의 차량 통행량에 광명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차량까지 더하면 방화동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이에 대해 박 전무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고속도로가 건설 되도 크게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었다”며 “출퇴근 시간에 올림픽대로 전체가 밀리는 것이 문제인데, 고속도로 건설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무의 설명에도 주민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주요 도로들이 얽혀있는 방화동 특성상 광명~서울 고속도로의 진출로는 여러 갈래로 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차선이 줄어들면서 엄청난 교통체증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주민 김민석 씨는 “현재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면 진출입로의 차량이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히려 진·출입로의 차선은 줄어든다”며 “광명에서 올라온 차들까지 올림픽대로로 진출하면서 엄청난 혼잡이 예상되는데, 방화주민들의 생활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 전무는 “올림픽대로 쪽으로 진·출입할 수 있는 길을 두 방향으로 낼 계획이고, 방화대교와 고속도로를 연결 시켜 방화주민들이 강변북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김민석 씨는 "올림픽대로 어디가 밀리는지 아느냐. 출퇴근 시간만 밀린다는 것은 헛소리다. 진출입로를 두 군데 내서 해결될일이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책임자 누구냐 원성에 시공사 측 답변 거부…주민들은 보이콧 선언
일부 주민들 몇명이 구청 직원은 왔는지, 책임사는 오늘 참석했는지 묻고, 참석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흥분하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박 전무는 “나는 단지 고속도로 설계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나는 구청 직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주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박 전무도 언성을 높이면서 주민들과 일촉즉발의 대치 구도를 연출했다. 박 전무는 큰 목소리로 "선생님! 거기 앉으세요. 앞에 앉으세요!"하며 고성을 질렀다. 이에 주민들이 "왜 당신이 화를 내냐"며 거세게 반발하면서 장내가 과열됐다.
결국 박 전무는 답변을 일절 거부하며 행사장 밖으로 나가버렸고,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장내를 확인하더니 황급히 도망가던 구청 직원도 있었다. 코오롱 글로벌 측에 문의결과 사업 주관사인 서서울고속도로 주식회사에서도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코오롱 글로벌 관계자는 “강서구청은 이번 사업과는 실질적으로 무관하다. 겨우 이번처럼 설명회를 주최하거나 주민의견을 취합해주는 정도”라며 “책임 여부를 따진다면 사업시행사인 서서울고속도로 측에 있겠으나, 오늘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장내를 진정시키던 코오롱 글로벌 관계자들에게 “이번 설명회는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 우리는 모두 해산하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주민 설명회는 결국 파행으로 이어졌다.
항동·방화동 주민 반발에 부딪힌 광명~서울 고속도로, 일정 차질 불가피 할 듯
광명~서울 고속도로가 지나는 구로구 항동의 경우에는 교통체증이 가장 큰 문제였던 방화동과는 달리 안전문제가 ‘핫이슈’ 였다.
지난 6월 26일에는 항동 주민들이 광명~서울 고속도로 건설 항의의 표시로 주민설명회를 방해하기 위해 나팔을 불거나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방해했다. 항동 주민들은 그 다음날인 6월 27일 광명~서울 고속도로 건설 저지를 위한 총력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항동 주민들은 집회에서 항동초등학교 밑으로 도로가 뚫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강력하게 규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박창근 가톨릭 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난 8월 9일 항동 초등학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싱크홀 등 지반침하가 우려된다며 ‘연구용역 보고서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광명~서울 고속도로는 익산에서 문산을 잇는 총 261km 길이의 고속도로 중 일부 구간이다. 통일 이후에는 개성, 평양하고도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문산 구간은 2015년 착공해 오는 2020년 준공할 예정이다. 평택~수원~광명 구간은 이미 개통했다. 평택~익산 구간은 지난해 10월 2조 7000억원 규모의 PF 조성을 완료해 착공을 앞두고 있다. 광명~서울 구간만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도로 연결이 끊어진 상태다.
광명~서울 고속도로 공사는 4개 공구로 나눠 진행한다. 코오롱글로벌, SK건설, 포스코건설, 태영건설이 각각 1개 공구씩 맡아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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