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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②] 나는 왜 이재명에 분노하는가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인터뷰 ②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18-11-20 18: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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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문제작이자 출세작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김대중 죽이기」가 1995년 2월에 공식적으로 출간된 일을 계기로 한국사회 최고의 적폐세력으로 떠올랐다. 더욱이 탤런트 겸 모델이었던 고 장자연 씨의 자살 사건에 조선일보 사주의 친인척들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공론화되면서 해당 신문은 현재는 혐오물질 비슷한 수준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안티조선 운동’은 동력과 명분을 오래전에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구독도 하지 않고, 조선일보에 기고도 하지 않으며, 조선일보의 취재요청에 응하지도 않는다는 나름의 ‘3불 정책’을 요란하게 견지하며 참여정부의 탄생에 일조할 정도로 한때 기세를 올렸던 안티조선 진영이 시나브로 출세와 성공을 위한 도구나 사다리로 변질된 탓이다. 정청래 전 의원, 정 전 의원처럼 민주당에서 금배지까지 달았던 최민희 전 민언련 사무총장, 문화평론가 김갑수 씨 등의 인물들이 tv조선 화면에 열심히 얼굴을 내미는 작금의 씁쓸한 세태는 안티조선 운동의 처참하면서도 지저분한 몰락을 웅변해주는 상징적이고 일그러진 삽화들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필자는 김대호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그 새끼매체들과 잇달아 인터뷰를 가진 일을 일단은 혹독하게 추궁할 도리밖에 없었다. 일부 탐욕스러운 출세주의자들과 몇몇 영악한 기회주의자들이 저지른 안티조선 운동의 지능적 악용으로 말미암아 뻗친 내 ‘승질’을 누군가에게 분풀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김대호 소장이 안티조선에 은근슬쩍 편승해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조선일보는 내 생각과 얘기를 왜곡 없이 실어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공희준 (이하 공) : 김대호 소장님께서는 최근 조선일보에 이어 월간조선과도 인터뷰를 가지셨습니다. 조선일보는 곡필과 선동을 일삼으며 대한민국 수구기득권 세력의 본진 역할을 긴 세월 동안 도맡아온 곳입니다. 소장님께선 왜 그 많은 언론매체들 가운데 하필이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셨나요? 물론 조선일보사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겠지만….


김대호 (이하 김) : 우선은 조선일보가 제가 한국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들을 전혀 왜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참여정부 시절에 조선일보의 논조와 보도에 무척이나 분노했던 사람입니다. 오죽 화가 났으면 조선일보를 손에 받아들자마자 신문지를 죽죽 찢어버렸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글들을 쓴 적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조선일보가 저에게 나쁜 인상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만 보자면 저는 조선일보에서 심각하게 왜곡된 논조나 편향된 기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나름대로 시대의 중요한 흐름을 제대로 짚으면서 과거의 부정적 인상을 많이 탈색하기도 했고요. 저는 조선일보가 저의 말과 생각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보도해주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에 응하게 됐습니다.


공 : 말과 생각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잘 보도해주는 것이 핵심이라면 구태여 인터뷰에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냥 외부 기고 수준에서 멈출 수도 있고요.


김 : 두 번째 이유도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는 조선일보가 자사의 보도와 칼럼을 통해 표현하는 문제의식이 제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정신과 ‘싱크로율(일치되는 비율)’이 높다고 봅니다.


김대호 소장의 이야기에 나는 더 이상 토를 달거나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그의 의견을 조용히 경청한 후에 독자들의 판단에 오롯이 맡기는 길이 상책임을 깨달았다.


김 :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공학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가 발신하는 메시지에 분개했습니다. 안티조선은 메시지 때문에 메신저를 반대한 운동이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조선일보의 메시지를 공격하는 움직임은 별로 없습니다. 조선일보의 과거 행적을 갖고서 메신저를 공격하는 식입니다. 저는 여전히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15년 전 무렵에 관한 기억들과, 현재의 객관적 현실을 냉정하게 비교‧대조하는 성찰적 자세를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공 : 소장님께서는 조선일보는 현재를 말하고, 안티조선 진영은 과거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 지금의 진보진영에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1945년~1948년 사이의 해방공간을 풍미했던 좌우익 패러다임으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940년대의 시각과 1950년대의 눈높이에서 21세기에 필요한 복지정책을 논하는 식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50년대의 화석’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지금 우리나라의 이념투쟁을 두고서 50년대에 생겨난 화석과 80년대에 만들어진 화석들이 치열하게 이전투구를 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하는 까닭입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오래전에 화석이 돼버린 사람들이 목소리가 너무나 크고 높습니다.


공 : 50년대산 화석이나 80년대산 화석이나 다들 나이 50이 훌쩍 넘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20대와 50대 사이의 반목을 ‘세대갈등’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50대와 80대가 대립하는 현상은 칙칙한 아저씨들과 늙은 노인들 사이의 ‘노노투쟁’일 뿐입니다. 둘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니까요.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밥그릇 투쟁에 불과하다는 게 소장님께서 내리신 평가인가요?


김 : 화석 1과 화석 2의 싸움일 뿐입니다.


한겨레신문은 반노-친문 매체


공 : 제가 ‘김대호’라는 이름 석 자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경로는 한겨레신문의 칼럼이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겨레신문은 친노진영에 우호적이거나 친문세력에 친화적인 인물들만을 단골 필자들로 섭외해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때 김대호가 골수 친노-친문 인사였다는 증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구한 반노이자 견결한 비문 성향인 제가 봤을 때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으로 소장님께서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사정없이 직격탄을 날리고 계십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떠한 극적 계기와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있었기에 김대호의 급격한 노선 전환이 발생한 건가요?


김 : 제가 한겨레신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했던 시기는 2012부터 2013년으로 넘어가는 대략 6개월 정도의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을 친노-친문 프레임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실은 한계레신문은 오히려 반노였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친문인 건 맞고요.


반노이면서 친문? 나도 가끔씩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발상을 해대는 별난 인간들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마치 “맥아더 원수 존경하는 주사파”나 혹은 “시부모 3년상 치르는 페미니스트”처럼이나 모순어법으로 들렸다.


김 : 특정한 인물을 기준으로 한겨레신문과 같은 주요한 언론사의 논조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한겨레신문은 1980년대 정통 운동권의 철학과 현실인식을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는 언론기관입니다. 전형적인 진보좌파 매체인 거죠. 현재는 화석이 돼버린 80년대 학생운동권과 재야운동권의 철학과 가치와 정서를 대변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한겨레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코드가 맞지 않지만,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과는 궁합이 일치합니다.


김대호는 진보와 보수의 관점이 아닌 주류와 비주류의 시각을 기준에 근거해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파악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의 의견은 일견 수긍이 갈 수도 있는 해석이었다. 참여정부가 진보적 아웃사이더들의 정권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진보적 인사이더들의 정권이기 때문이다. 진보적이되 인사이더인 즉 주류인 집단을 우리는 보통 ‘강남좌파’라고 부른다. 그리고 “누리기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주류계급의 태생적 속성은 언제, 어디에서나 영원불변하다.


김 : 왜 제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사람이 되었느냐? 저는 2001년 5월에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허망하게 좌초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우리나라의 노조, 시민단체, 교수집단, 금융, 정부 등의 속살과 민낯도 아울러 봤습니다. 2004년 4월에는 「한 386의 사상혁명」이란 책을 썼습니다. 80년대 운동권의 낡은 철학과 현실인식, 시대착오적인 가치와 정서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면서 뼈저린 전면적 성찰을 촉구하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이어서 2007년 5월엔 「진보와 보수를 넘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저는 ‘한국판 제3의 길’ 노선을 일관되게 추구해왔습니다. 그와 같은 노선으로 민주세력과 진보진영을 혁신해야만 한다는 신념을 아주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2001년에 표출되고, 2004년에 정리되어, 2007년에는 마침내 대안까지 마련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김대호 소장이 자신의 '노선'을 일관되게 기술하고 있다고 밝힌 3부작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책의 표지 (사진=예스24)  

공 : 사상의 무기를 완벽히 벼린 다음에는 출사표를 던질 차례입니다.


김 : 저는 먼저 민주당부터 혁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설정한 일차적 극복 목표이자 우선적 타파 대상이 낡은 정신과 가치에 함몰된 80년대 운동권이고, 민주당은 시대착오적 운동권 진영의 총본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겨레신문과 친문세력 역시도 낡은 운동권의 중요한 서식처로 파악해왔습니다. 제가 논공행상에서 소외된 탓에 문재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렸다는 식의 저를 향한 뒷담화와 수군거림처럼 허무맹랑한 음해와 억측도 없는 것이죠. 제가 30대 후반부터 시작해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차례로 써낸 제 저서들의 내용만 봐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듯이, 저는 일관된 스탠스를 취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와 같은 일관된 스탠스의 대립물입니다. 따라서 제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제가 만약에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판을 멈춘다면 그거야말로 되레 자리와 이권을 노리는 위선인 행동이 되는 겁니다. 아니면, 제가 만일 정권의 서슬 퍼런 기세가 무서워 입을 닫는다면 저는 몹시 비겁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저는 제가 근 20년 동안 일관된 태도와 행보를 소신 있게 견지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공 : 2012년의 19대 총선 무렵에 민주통합당에 공천신청을 늦게 하신 것도 당의 혁신을 위한 노력의 연장선이었나요?


김 : 주변에서는 제가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불합리한 지적입니다. 저는 원래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이 정치신인들에게 개방적 자세를 보였기에, 민주당 입당을 결심했습니다. 제 지역구가 관악갑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유기홍 전 의원,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 총 6명이 경선에 참여했는데, 저와 유기홍 두 사람 간의 양자대결로 압축되었습니다. 컷오프를 당한 한광옥 고문은 당을 탈당해 정통민주당을 창당했고요. 분명히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은 저는 당에서 공정한 경선을 보장할 것처럼 약속했기 때문에 입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임승차를 바라며 공천을 신청한 건 아니었습니다.


공 : 공천신청이나 경선참여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김 :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공천신청과 경선참여는 정치적 뉘앙스가 크게 다릅니다. 제가 출마선언문을 발표한 날짜가 2012년 1월 19일입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무소속의 정치신인이었습니다. 그 출마선언문에는 제가 왜 선거에 나오려고 하는지에 대한 동기와 이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떠 있는데, 제가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공 : 현실정치를 경험하면서 기성정당의 문제점들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공천 방법, 정당운영 방식, 정강정책의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기성 거대 정당은 어떤 고질적 한계를 갖고 있었나요?


김 : 첫 번째로 공천과 관련해 말씀드리자면 원래는 공천 혁신의 일환으로 정책 토론과 가치 논쟁을 여러 차례 개최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깡그리 무시되었습니다. 가치와 비전에 대한 아무런 논쟁 없이 선거인단을 지역에서 모으다 보니 동원력 있는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 돼버렸습니다. 유기홍 후보는 10년 동안 지역에서 조직을 다져온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금배지도 달았었고요. 그와 달리 저는 온 지 40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공 : 관악구가 아주 맨 땅은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김 : 제가 구정 설계를 포함해 관악구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었습니다. 경선과정에서 제대로 된 후보자 간 토론이 보장되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책 토론과 자질 검증이 일절 없는 상태에서 아는 사람 끌어 모으는 걸로 경쟁 구도가 흘러갔습니다. 더군다나 경쟁자인 유기홍 후보는 지방의원들 여럿을 캠프에 데리고 있었고요. 경선 결과는 600표 대 1200표로 제가 완패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당들의 강령은 쓰레기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정당의 강령은 '한마디로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공 : 공천 과정에 대한 소장님의 회고를 들어보니 정당 운영의 각도와 윤곽도 아울러 나오네요. 그 부분에 대한 별도의 질문은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소장님께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신 동기는 기성 정당의 정강정책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 텐데, 막상 가보시니 우리나라 정당들의 정강정책의 현주소는 어디쯤이었나요?


김 : 저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습니다. 제가 정당의 강령과 관련해 가장 많은 글을 쓴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이를테면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민주통합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글도 당연히 있고요. 대한민국 정당들의 강령을 살펴보면 시대착오적 내용이 엄청 많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좋은 말 대잔치’에 더해 앞뒤 안 맞는 모순투성이이기도 합니다.


공 : 강령은 좋은 말 대잔치인데, 대변인 논평은 아무 말 대잔치. 정말 푸짐하네요. (웃음)


김 : 우리나라 정당의 강령은 한마디로 쓰레기입니다. 굳이 읽어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원인은 정당의 정신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데 있습니다. 비단 강령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공천 방법, 조직 형태 등 모든 것들이 도무지 공당이라고 봐주기 어려운 조악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정당은 그냥 호랑이가 아닙니다. 생사람 잡아먹는 잔인한 식인 호랑이입니다. 이 식인 호랑이를 때려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기성 거대 정당에 들어갔던 것이죠.


공 : 그런데 때려잡기는커녕 소장님까지 덩달아 식인 호랑이에게 되레 잡혀먹을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호랑이굴에서 탈출하셨잖아요? 아니면 퇴출당하신 거던가? (웃음)


김 : 그래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호랑이굴에 혼자 들어가지 않으려고요. (웃음) 현재는 포수들을 조직해 머잖아 굴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또다시 나타날 호랑이를 잡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공 : 혈혈단신, 단기필마의 일기투는 하시지 않고 지금부터는 단체전만 치르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김 : 물론입니다. 


문재인 후보, 은수미 노선으로 기울어


공 : 주요 대권주자들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 핵심적 동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간을 보는 데 있습니다. 소장님께서 대선후보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저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처음부터 주파수가 어긋난 잘못된 만남 아니었을까요? 단적으로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는 단순한 간보기 차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차나 한 잔 마시러 소장님을 부른 건데 소장님께서는 그게 간택 의식인 줄 착각하고서 혼자 정성스레 목욕재계하고 기다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호의 문재인 극딜은 간택되지 않는 데 따른 ‘사감 폭발’ 내지 ‘뒤끝 작렬’의 결과물이라는 조금은 삐딱한 시선도 일각에서는 있습니다.


김 : 그런 것을 두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똥○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에는 제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의 산업, 노동, 정부, 금융 전반을 관찰해오면서 느낀 통찰의 집약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문제의식이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설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의 핵심적 목표는 한국판 제3의 길의 모색과 개척이었습니다. 한국판 제3의 길을 열려면 민주당 안에 똬리를 틀고서 버티고 있는 낡은 진보를 교화하거나 설득하거나 고립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마 문재인 후보 주변의 측근들 가운데 제가 피력한 노선과 대의에 깊이 공감한 사람들이 있었던 듯싶습니다. 그래서 19대 총선이 끝난 직후인 2012년 4월 하순에 문재인 후보를 부산 사상구의 선거사무소에서 만났습니다. 아직 사무실 정리도 채 끝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공 :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는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 두기에 들어간 단계였겠네요. 인적 진용 구축도 포함해서요.


김 : 문재인 후보는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으로 주변에서 김대호를 추천하더라고 저에게 귀띔해줬습니다. 그러면서 문 후보는 사회디자인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콘텐츠를 2012년 3월 13일치까지 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주변 측근이 저를 추천하면서 사회디자인연구소 홈페이지도 함께 소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한 점을 보면 김대호 소장은 문재인 후보와의 만남에 상당한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한 눈치였다.


김 : 문재인 후보의 노선을 유연한 진보 혹은 합리적 개혁의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제가 결정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문 후보의 주변 사람들이 조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제가 키우고 쌓아온 통찰과 문제의식을 애정을 갖고서 문재인 후보에게 정성을 다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문 후보의 그 뒤의 행보를 보니 노동 정책이나 고용 대책과 연관해서는 은수미 성남시장 같은 사람들이 고집하는 쪽으로 경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비판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저는 문재인 방식의 고용 정책과 노동문제 대처방식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을 하며 대안을 제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요즘 들어 비판의 수위와 강도를 부쩍 높였느냐? 그때는 문재인은 권력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나는 왜 이재명에 분노하는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경기도청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 

공 : 방금 은수미 성남시장을 꼭 집어 거명하셨습니다. 정치행보와 정책기조만 놓고 평가하자면 은수미 성남시장은 리틀 이재명 또는 여자 이재명으로 자리매김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수미 시장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당연히 이재명 경기지사에게도 느끼실 터인데, 도대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소장님께서는 이재명 지사를 그토록 싫어하십니까? 왜냐면 반대로 이재명 좋아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기 때문입니다.


김 : 이재명 시장의 사람 됨됨이에 대한 평가는 그와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로부터 일찍부터 들어온 터입니다. 그러나 그게 본질은 아니겠죠. 제가 문제시하는 건 노선이고 우선순위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수시로 ‘친일청산’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문제의 순서 말입니다. 공희준 통신원이 자주 하는 얘기가 “진보도 강남, 보수도 강남”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 담합체제를 비판하는 담론입니다. 이념으로 보자면, 국가주의 우파와 국가주의 좌파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서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저해하고 통합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게 21세기 한국사회의 핵심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경기지사는 80년대 초 우리가 대학교 1학년이었을 적에 피를 거꾸로 치솟게 했던 케케묵은 정서를 부추기며 2018년인 지금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치의 우선순위의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후진적이고 시대착오적 행태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김대호 소장은 이재명 지사를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와중에도 나 홀로 고고하게 북벌을 외치던 조선 중기의 노론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사실 전쟁터에서 칼에 맞아죽는 것도, 가뭄과 홍수에 굶어죽는 것도 북벌 주장하는 노론 양반들의 차지는 아니었다. 북벌이 뭔지도 모를 가난하고 평범한 인민의 차지였다.


공 : 이재명 지사가 우선순위에서 착오를 일으켰을 수는 있겠지만, 문제제기 자체가 악하고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 :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권력자원은 제한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모순과 부조리가 엄청나게 누적․심화돼가고 있는데도, 나라의 위정자들이 이를 방치 내지 방관한 채로 엉뚱한 곁가지만 부여잡고서 헛심만 쓰고 있다면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 낭비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지금도 무수히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국가의 제대로 된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서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지대(地代)가 보장되는 공무원 자리를 얻으려고 새벽부터 노량진 고시원 앞에서 장사진을 이룹니다. 100명이 시험을 치르면 99명이 떨어지는 것이 공무원 시험이고, 떨어진 99명은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치부되어 청춘들이 망가져가는 것이 지금의 비극적 사회 현실입니다. 이런 눈에 띄는 재앙들을 무책임하게 모르쇠 하는 건 엄청난 죄악입니다. 정치와 행정에서의 가치의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그 어떤 부정부패보다도 국민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기 때문입니다. (③편에서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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