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한국의 노동운동은 유전자 자체가 문제
공희준 (이하 공) :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조직노동은 한때는 사회변혁의 주체이자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데 지금은 민주노총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득권 세력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거대 노조들이 현재와 같은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게 된 변곡점이나 분기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를테면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 같은 사태 말입니다.
김대호 (이하 김) :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유전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공 :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건 우생학이나 생물학적 결정론처럼 들리거든요.
김 : 애초에 노동운동은 기업 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화를 실현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확립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공 : ‘기업 횡단적’이라면 개별 기업을 초월하는 범위를 가리키나요?
김 : 그렇습니다. 직무에 의거한 근로조건의 표준화를 의미합니다.
공 : 삼성전자, LG전자, 동부대우전자를 전부 망라하는 식인가요?
김 : 예를 들자면 아파트 경비원과 한국은행 경비원과 마사회 경비원의 직무의 성격은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직무의 성격이 비슷하면 근로조건도 비슷해져야만 합니다. 돈 많은 원청업체나 2차 협력업체나 3차 협력업체나 직무의 특성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노동조합은 이렇게 직무의 성격이 비슷하면 근로조건 역시 비슷해지도록 만드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헌법에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된 노동 3권을 보장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더욱이 단체행동권은 기업의 업무를 합법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권리이기까지 한데도요.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주역이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동 3권이 헌법에 명문화된 까닭을 아예 이해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오늘날 어떤 것이 존재의 이유냐? 회사가 돈이 많고, 노동조합에 힘이 있으면 개별기업 차원에서 근로조건을 최대한 좋게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공정가격 개념은 원천적으로 안중에 없습니다.
아파트 경비원과 한국은행 경비원과 마사회 경비원의 근로조건이 평등해야만 한다는 명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원과 한국은행 본점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원과 마사회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원의 월급이 동일해야 한다는 논리일 수도 있었나? 그럼에도 멋모르는 사람들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보수화됐다고, 우경화됐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는 여전히 빨갛다. 단, 그가 빨갛게 칠하려는 장소들의 선후 순서가 과거와 비교해 달라졌을 따름이다.
공 : 출발은 개별 기업을 초월하는 보편적 조건의 개선이었는데, 결과는 특정한 기업 안에서의 상황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형 노조가 됐다는 거네요.
김 : 특정한 어느 회사에 고용된 종업원들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소명이 된 겁니다.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형성하는 건 저 후순위로 밀려나 있고요.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이 확고히 자리를 잡으면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상대적 약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거대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단일 기업 차원에서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마인드로 무장돼 있습니다.
공 :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생각만이 장땡이라면, 강남의 아파트 부녀회와 민주노총에 가입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노동조합이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 셈입니다. 단적으로, 강남 아파트 부녀회원들이 잘나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여성들 전체의 권익이 신장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월급이 올라간다고 하여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월급까지 따라서 인상된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김 :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초기에는 원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면 협력업체(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도 조금은 올랐습니다. 그와 같은 견인 효과가 1990대 초중반까지는 일정 정도 발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견인 효과가 증발되면서 흔히들 말하는 ‘노동의 양극화’ 사태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같은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갈리는 ‘직장계급사회’가 출현하게 된 것이죠.
공 :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급도 아울러 상승하는 견인효과가 왜 사라지기 시작했나요?
김 : 저는 자본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임금이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를 실례로 제시해보겠습니다. 현대차는 현재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14퍼센트에 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경쟁업체들은 7프로 정도입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와 소비자와 주주 쥐어짜며 버텨
공 : 경쟁업체라고 하면 어떤 회사들을 가리키나요?
김 :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와 독일의 폭스바겐 자동차가 대표적입니다.
공 : GM은 어떤가요? 부평의 우리나라 GM 말고, 미국 현지의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요.
김 : 그보다 약간 높은 8~9퍼센트 가량인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필요할 때마다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인건비가 차량의 제조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사태를 방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높은 인건비를 무슨 방법으로 감당해왔느냐? 때로는 협력업체를 쥐어짜고, 때로는 소비자를 쥐어짜고, 때로는 주주 즉 투자자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야만 할 몫을 쥐어짜는 식으로 간신히 버텨왔습니다.
김대호 소장이 이야기한 모두 쥐어짜기 즉 ‘모두짜기’가 가능하려면 회사 측과 노동조합 사이의 은밀한 담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자동차 경영진과 현대자동차 노조의 관계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관계를 방불하게 했다. 앞에서는 싸우는 것 같아도 뒤에서는 한통속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협력업체와 소비자와 투자자를 쥐어짜듯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비례성과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악착같이 유지함으로써 유권자들로부터 의석을 쥐어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의 실제 득표율에 어울리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에서의 과도한 의석수와, 높은 가격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대자동차의 낮은 품질은 메두사의 머리에 돋아난 수많은 뱀들처럼 기반에서는 상호 연동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공 : 한마디로 부모가 부자면 자식도 부자이듯이, 회사가 부자면 노조도 부자인 거네요.
김 : 그런 그릇된 현상이 마치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되기 때문에 제가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입니다.
공 : 비상식의 상식화네요.
김 : 예, 그렇죠. 왜 이렇게 몰상식이 상식으로 행세하고 있느냐? 바로 노동관계법에 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법률체계 하에서는 파업 시에 노조가 사업장을 점거할 수는 있어도, 회사가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 후과로 대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서게 됩니다. 중소기업이나 영세한 사업장에서야 고용주가 정 안 되면 지가 식구들이라도 동원해 업무의 공백을 메울 수야 있겠죠.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생전에 후손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자식농사에서는 현대가가 이병철의 삼성가에게 완승을 거뒀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허나 그 자손 많은 현대가라고 한들 노조의 총파업으로 공장이 텅 비게 된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의 작업라인을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김 : 대기업에서 목격되는 것과 같은 노사 간의 이런 엄청난 힘의 불균형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거기에 더해 확대재생산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노동관계법이 원청업체인 대기업 노조들이 협력업체나 하청업체의 소규모 노조들과 연대할 필요가 없도록 부추기는 것이죠. 만약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세요. 단일 기업 차원에서만 파업에 돌입한다면 회사를 상대로 노동조합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업종 차원의 연대가 필수이고, 협력업체 노동자들과의 단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려면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들 전부를 껴안는, 업종 전체 차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기업 노조들이 대변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특정한 기업에 소속된 개별적 노동조합 심급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노동시장 전반의 공정가격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법률이 힘센 대기업 노조들로 하여금 자기들만의 이해를 좇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조와 시스템이 문제인 겁니다. 그런데 생뚱맞게 도덕적 호소로 꼬인 매듭들을 풀어가려고 하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응급환자가 발생한 곳에 구호장비를 갖춘 119 구급대를 출동시키는 대신에 자선냄비를 든 구세군을 보내는 식으로 문제에 대처해온 건 비단 노동 분야만은 아니었다. 과학적이고 책임 있는 구체적 해법의 강구보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실체 없는 선의와 진정성이 능사로 여겨지는 풍토로 말미암아 한국사회는 강력한 입법권을 보유한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마저 스스로의 정당한 권능의 행사를 포기한 채 길거리로 촛불 들고 나가는 것이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총체적 불능 사회’가 되고 말았다.
공 : 그렇다면 광주형 일자리 도입에 민주노총이 현대자동차가 중심이 되어 강력하게 반발하는 일도 대한민국 노동시장에 만연한 기업형 노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김 : 저는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직무의 성격을 감안할 때 광주형 일자리에서 제안된 연봉만 받아도 되는 일자리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근로조건이면 기꺼이 취업하겠다는 구직자들도 결코 적지 않고요.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에서 제안된 직무와 동일한 일을 하고도 9천만 원에서 1억 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입장에서는 광주형 일자리가 엄청나게 불편하고 불쾌한 골칫거리일 테니 반대를 하는 것이겠죠.
공 :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비판하는 논리들은 수두룩합니다. 옹호하는 논지들도 허다하고요. 소장님께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지 않고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을 끌어올릴 대안적 방안이 있나요?
외국인 노동자 제한은 왜 필요한가
김 : 무엇보다 우선되어야만 할 작업은 노동수요. 즉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반대로, 저임금에 대한 수요는 줄여나가야 하고요. 저는 이와 관련해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공급을 제어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 : 소장님께서 왕년에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활동하실 때 이 지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나요?
김 : 없었습니다. 지금은 여기서 가까운 대림동 일대 같은 경우는 완전히 차이나 타운처럼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공 : 제가 머무는 사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이 7호선 남구로역입니다. 남구로역 주변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점령당하시피 한 게 이미 오래전부터입니다.
김 : (한숨을 푹 내쉬며)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황당한 노릇이기도 하고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노동수요를 줄이려면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인력 고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해소시켜줘야만 합니다. 일단 한번 채용한 다음에는 평생 동안 데리고 있으라고 압박하면 과연 어느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고, 투자에 나서겠습니까? 당연히 채용을 꺼리게 됩니다.
지금은 한 이불 속에서 살 섞은 부부 사이도 서로 맘에 안 들면 망설임 없이 갈라서는 세상이다.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라는 요구는 남의 돈 먹고사는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해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다.
김 :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노동을 제한하는 일 같이, 저임금 노동의 공급량을 줄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임금을 올려야 합니다.
공 : 사회임금이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개념입니다. 부연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 : 사회임금이란 국가가 세금과 예산을 활용해 국민에게 제공하는 여려 가지 복지 혜택들을 뜻합니다. 근로장려세제가 대표적 사회임금입니다. 실업급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수당들도 사회임금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임금 부문에서 굉장히 취약하고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 : 소장님께서 통탄하신 부분이 제 가슴에 절실하게 확 와 닿네요. 제가 최근에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 형식으로 퇴사한지라 당장 생계가 막막해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했더니만 요건이 굉장히 까다로워 결국 포기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나라에서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다 떼어갔으면서.
김 : 우리나라는 사회임금이 얇고, 짧고, 까다롭습니다. 사회임금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게 그림의 떡이기 딱 좋은 조건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 사회임금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여주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원이 아닌 평범한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교섭력이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평범한 일반 노동자들이 교섭력을 확보하게 되면 아주 낮은 수준의 일자리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사회임금 제도가 실효성 있게 실시되어야 종래처럼 일부 대기업 노동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대응능력을 갖고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가 있습니다. 형편없이 열악한 일자리를 외면할 수 있는 대다수 노동자의 정당방위(!) 권리가 비로소 제대로 보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 사라지면 노조도 사라져
공 : 한국사회의 주요한 역설적 모순들 가운데 하나가 노동과 노조의 분리와 괴리입니다.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와 민주노총에 속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돼버린 거죠.
김 : 21세기 한국사회의 신흥 기득권 세력은 노동과 공공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거대 노조들과 공무원입니다. 공공부문 종사자들 역시 새롭게 기득권 대열에 편입했고요. 저는 이 사람들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몫의 지대를 거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춘 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금은 작가 겸 방송인으로 전업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정조준해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한다”고 참여정부 시절에 비꼰 바 있다. 나는 김대호 소장은 적절한 메시지를 참 부적절한 뉘앙스로 발언한다는 아쉬움을 인터뷰 내내 억누를 수 없었다. 노동과 공공의 앞머리에다가 재벌과 건물주를 덧대면 지대추구 세력, 곧 불로소득 집단에 대한 그의 분노와 문제의식은 한층 더 폭넓은 대중적 반향과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으련만 그는 어떤 사정에서인지 그 간단한 표현기법상의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공 : 제가 정말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민주노총에 전화를 해서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락치라고 몰릴까봐서요. (웃음) 저 같은 작은 신생 인터넷 매체의 비정규직 통신원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요? 민주노총이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는 느낌을 제가 여태껏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김 : 민주노총은 기본적으로 기업별 노조체계 위에서 꾸려져 있습니다. 각자의 사업장에서 붉은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서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자본의 이윤을 노조에 더 많이 나눠달라고 투쟁하는 게 본질적 역할입니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들에게도 물론 열려 있습니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에게서는 대기업들과는 다르게 머리띠 묶고 사장실 점거한다고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조가 설령 있다고 한들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게 민주노총 조직이 확대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수는 2018년 1월 현재를 기준으로 786,563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10만 명 정도의 조합원이 신규 조합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새로 들어온 10만 명이 민주노총의 대의와 원칙에 공감해서인지, 아니면 영악한 사회생활을 위해 민주노총의 품속을 파고들었는지는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나 같은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민주노총은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부녀회들처럼 당신들의 천국이자, 그들만의 리그로 보인다는 점이다. 거창한 동지의식도, 애틋한 감정도 별로 들지 않는 높고 낯설고 머나먼 특수목적의 이익집단일 뿐이다.
김 : 제가 과거에 구로공단을 터전으로 노동운동을 펼칠 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노조들이 20개가 넘었습니다. 그 많았던 노조들이 1990년을 전후해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회사가 폐업했거나, 사업장이 지방으로 이전했거나, “노조 때문에 회사 못해먹겠다”는 사장의 협박 반 푸념 반의 비명에 질려서 스스로 해산했거나, 아니면 공권력의 탄압에 와해됐거나 하는 식으로 노동조합들이 시나브로 구로공단에서 차례차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점이 1989년이었습니다. 20프로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1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냐? 기존 노조들이 대거 소멸된 탓입니다. 어떻게 보면 노조가 사라졌다기보다는 회사 자체가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고요.
공 : 노조원들이 노조를 탈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가 사라지니 노조도 함께 사라진 거네요.
김 : 그렇죠. 반면에 노조의 결성과 활동에 적합하고 유리한 신규 사업장들은 좀체 만들어지지 않았고요.
공 : 저도 이따금씩 노조들이 개최한 집회와 시위 현장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때 조금은 희한한 정경이 물론 힘들고 고생한 탓도 크겠지만, 집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의 대부분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다는 점입니다. 젊은 사람이 없어요.
김 :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의 인구구조만이 발등에 떨어진 시급한 불이 아닙니다. 산업현장의 인력 재생산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한국사회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미래상을 그에 못잖게 섬뜩하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기업만 봐도 인력을 절대로 늘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엉뚱하게 공무원과 공공부문만 인력이 증원되고 있습니다. 생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실질적 부가가치는 창출하지 못하는 현대판 양반만 대책 없이 꾸역꾸역 양산하는 셈입니다.
사회의 재부는 늘지 않는데, 양반의 숫자만 늘어난다? 19세기 조선왕조가 딱 그랬다. 문재인 정부의 보이지 않는 핵심적 국정운영 기조를 필자는 사농공상의 질서에 기초한 도학정치(도덕정치)로 파악하고 있다. 문재인 시대의 사대부 계급은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사자를 양축으로 삼아 이뤄져 있음은 구태여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21세기판 사대부 계급 또한 실질적인 경제적 부가치치를 창조하지 않음도 두말하면 잔소리이리라. 김대호의 우울한 비관론이 내게도 스멀스멀 전염된 까닭이다. (⑥편에서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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