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안철수, 낡은 것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었다
공희준 (이하 공) : 김대호 소장님께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특정해서 주제로 삼은 책을 집필하신 적은 없습니다. 반면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책은 노이즈 마케팅을 불사하면서까지 쓰셨습니다. 책 제목이 무려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였거든요. 안 전 대표에 관한 책까지 내신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안철수 현상’이 소멸하고, 그와 더불어 정치인 안철수 또한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대호 (이하 김) : 안철수 전 대표에게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안이 그에게는 결여돼 있었습니다.
공 : 이왕 말 나온 김에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을 한번 비교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과 자본을, 기업과 가계를, 사람과 이윤을, 도덕과 부도덕을, 민족과 외세를 대립과 모순의 관계로 파악하는 낡고 경직된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문 대통령에게는 학습능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와 반대로 안철수 전 대표는 80년대식의 시대착오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롭거니와 학습능력도 있는 인물입니다. 문제는 안철수에게는 낡은 것도 없지만, 새로운 것도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안 전 대표는 새로운 프레임도, 새로운 비전도, 새롭고 담대한 용기도 부실했습니다.
공 : 문재인에게는 머리가 없고, 안철수에게는 가슴이 없다?
‘독불장군’과 ‘모두까기 인형‘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에게 찍힌 부정적 낙인들이다. 실제로 만나본 그의 성격은 독불장군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섬세하다고 묘사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허나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전 대표를 싸잡아 평가절하한 김대호의 인상비평에서는 모두까기 인형의 위엄을 확연히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 : 그런데 정치는 행정이나 사회과학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머리 없는 문재인과 가슴 없는 안철수가 선거에서 붙으면 당연히 전자가 이기기 마련입니다.
김 :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틀어쥐고 있는 것들이 적다면 누가 대통령을 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국가가 너무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규제의 권한, 공기업 인사권 등 오만가지의 제도와 정책을 국가가 좌지우지합니다. 한층 더 불행한 일은 우리나라가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입니다. (우울한 목소리로) 말기암 환자와 비슷한 상태에요.
한국은 말기암 환자
공 : 허구한 병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말기암인가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나라 전체가 조현병에 걸린 상태일 수도 있거든요. 제가 그래서 한국사회에서의 트위터의 역할과 위상을 ‘거대한 정신병원’이라고 개념규정한 것이기도 하고요.
김 : 왜 말기암이냐? 증식을 중단해야 할 악성세포들이 계속 왕성하게 생장하기 때문입니다. 권리와 이익이 민주적으로 제기되지 않습니다. 진보진영에서건 보수세력에서건 힘센 사람들의 권익만이 확대․강화돼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빚어내는 폐해가 되레 더 큽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맹점은 무지몽매해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무지몽매함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따뜻한 덕분에 정권을 잡은 사람이 나라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나 심각하거든요. 대한민국이 아무런 사회경제적 모순이 없는 사회라면,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라면 무지몽매한 인물이 권력자가 된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 시스템은 한마디로 모순 덩어리입니다. 가슴 따뜻한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만큼 우리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이 얘기를 할 때 김대호 소장의 모습은 냉철한 전략가보다는 열혈 애국청년에 가까웠다. 열혈 애국청년이 냉정한 이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광경? 뭉클하면서도 애처롭고, 애처로우면서도 뭉클했다.
김 : 우리나라에서는 평범한 국민들이 자기들이 영위하는 일상생활의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정치인들의 자질과 역량을 감별할 기회가 좀처럼 없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잘 확립된 선진국의 사례를 관찰해보면 우리와는 전연 다릅니다. 그런 나라들에는 1000~2000명 정도로 구성된 소규모 단위의 기초자치단체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그곳에서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정확한 능력치를 확실하게 판별해낼 수가 있습니다. 미국과 스위스 같은 경우에는 시민들의 상시적 감시와 평가가 이뤄지는 환경 아래에서 공공서비스가 제공되어왔습니다.
공 : 많이 부럽네요.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 공간에서 실체 없는 아바타로 존재할 뿐이거든요. 시끄럽긴 한데 별 쓸모는 없는 잉여스러운 인간이 SNS 전성시대의 대한민국 정치인입니다.
김 : 우리나라에선 소단위의 가까운 거리에서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피부로 실감나게 접하며 감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공직자를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지방이나 작은 공동체의 풀뿌리 수준에서 정치인들을 걸러낼 수가 없습니다. 5,100만 명으로 구성된 거대한 단위에서 추상적으로 평가와 감별이 진행됩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무지몽매해도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만 그럴싸하면 대통령에 선출될 수가 있습니다.
공 : 번드르르한 이미지 하나 앞세워 손쉽게 정권 잡는 풍토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피장파장 아닌가요? 과거에 히틀러도 독일에서 그렇게 집권했고요.
김 : 미국을 한국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사례가 많은데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소규모 단위에서 정치인들의 능력을 감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훈련시키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입니다. 더욱이 미국은 연방정부의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한이 한국 중앙정부 대통령의 그것보다 크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는 상당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치와 관련된 실질적 권한들은 주정부를 위시한 자치행정기구들의 수중에 놓여 있습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권한이 중앙의 행정부에 독점적으로 집중돼 있습니다. 이처럼 권력의 분산이 유명무실한 구조에서는 국가체제도, 정치제도도 제대로 된 지속적 발전을 이룩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되어 있어요.
남북관계,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공 :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님과 사적으로 아주 절친한 관계이시죠?
김 : 예, 그렇습니다.
공 : 최광웅 원장님께서 제게 그런 걱정 섞인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신 적이 있습니다. “(김)대호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남북관계 문제에 관해 자꾸만 언급하는 바람에 자기 점수를 자기가 깎아먹고 있다”고요. 저도 예전에는 소장님께서 한반도 문제에 관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여쭙는 겁니다. 소장님께서는 왜 갑작스럽게 반북행보를 걷게 되셨는지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과 더불어 ‘반북시장’에 거의 혜성처럼 등장하셔서요. (웃음)
김 : (약간 계면쩍은 표정으로) 제가 남북관계에 대해 잘 모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하지만 김대호가 한반도 문제를 잘 모른다는 식으로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저 가운데 누가 더 연구와 고민을 많이 했겠습니까? 제가 사회디자인연구소장입니다. 직업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전문가를 스승으로 모셔오든지, 관련 서적을 탐독하든지, 세미나에 참여하든지 해서 어떻게든 공부를 합니다. 저를 비판하는 분들은 거의 모두가 어디엔가 매여 있는 인물들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조직으로부터 얻어오는 일을 먼저 걱정해야만 합니다. (단언적으로) 제가 그분들보다 남북관계에 대한 공부를 독립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훨씬 더 많이 했을 겁니다.
공 : 나도 알고 보면 남북관계 전문가라는 취지의 말씀이네요?
김 : 연구소를 운영하다 보면 자신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라면 짧더라도 글을 써서 검증을 받으면 됩니다. 글에는 나의 주장을 알리는 것과, 나의 주장을 검증받는 것의 두 가지 용도와 목적이 있거든요. 저는 고용과 노동, 그리고 공공(公共)을 중심적 주제로 삼아 이제껏 글을 써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발도 사고, 역풍도 맞아가면서 검증을 받고 콘텐츠의 질을 개선하고 정련시켜왔습니다. 그와는 달리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공부가 일정한 궤도에 올라올 때까지 일부러 참았습니다. 이야기를 안 했다는 건 역으로 생각하면 축적의 시간을 가져왔다는 의미입니다. 공개적으로 발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동안 수많은 세미나에 다니고, 책을 보고, 대가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는 발언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죠.
공 : 김대호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 : 발언할 수 있을 만큼의 연구와 고민이 축적됐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공 : 그동안 조용히 내공을 키워 오셨다는 건가요?
김 : 예. 문재인 정부의 대북 노선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뭔지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제 주변에도 그와 같은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대호 소장이 지목한 그와 같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최광웅 원장과 필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역으로, 필자도 대북 강경론을 고집하는 인사들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 : 제가 그 사람들의 견해를 백번을 들어보고 천번을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겁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온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가 북한에 대한 현재의 저의 판단이 옳고 타당한지에 관해 그분들에게 끊임없이 검증을 받고 자문한다는 사실만큼은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 : 그런데 수십 년 동안 민족문제와 한반도 정세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대다수가 말하는 얘기가 “제재와 압박으로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과 전망입니다. 단적으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같은 내로라하는 유력한 보수 인사까지도 북한과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소장님께서는 더욱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만약 압박과 제재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구체적 군사행동 단계로 진입해야 하나요?
김 :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평화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안보와 관련해서 저의 일차적 원칙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겨냥한 압박과 제재는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효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는 성공하고, 다른 하나는 실패한 게 아닙니다. 포용과 대결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압박과 제재는 실패했다”는 명제 자체가 성립되지가 않습니다. 압박에 구멍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진짜 강경하게는 제재를 밀어붙이지 않았고요. 북한이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로 출현하는 장비가 있습니다. 커다란 바퀴가 엄청 많이 달린 미사일 운반용 차량인데, 이게 중국에서 제작된 특수차량입니다. 압박과 제재가 철저하게 집행됐으면 북한에 반입될 수가 없는 군수물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압박과 제재만 요구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취했을 때에는 북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제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김 : 김대호는 ‘대북 제재론자’가 아닌, ‘대북 제대론자’다 이건가요?
김 : 기존에 했던 것처럼 찔끔찔끔 제공하는 보상은 안 됩니다.
글로 읽은 김대호의 대북관과 말로 듣는 김대호의 대북관은 미묘하면서도 의미 있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보다 글이 선명하고, 어떤 사람은 글보다 말이 뚜렷하다. 김대호 소장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독자들께서도 이쯤에서 대충 촉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한 진보는 북한 정권의 앵무새 노릇 멈춰야
김 : 북핵 문제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상업용 인공위성이 1989년에 북한 영변 지역에서 핵시설을 촬영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벌써 30년이 경과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남한 일각에서는 북한도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강변했습니다. 1998년에 북한이 광명성 1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에는 북한에게도 우주공간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두둔했습니다. 광명성 인공위성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곧바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요. 지금은 어떠냐? 북핵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자구책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북한의 입장을 끊임없이 옹호해온 역사가 이렇게 깁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옹호이고 정당화인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당국에 핵무기 목록을 제출하라고 종용하니까 이번에는 뭐라고 북한을 감싸느냐? 핵 리스트는 곧장 미국의 공격 목표로 악용될 거라는 북한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어요. 이 앵무새 노릇을 30년간 충실히 수행해오고 있는 겁니다. 30년간을! 이 부분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진보라는 사람들이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너무나 심각한 문제거든요.
공 : 하지만 분단 이후의 남북관계를 통틀어 조망해보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의 기간보다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의 세월이 단연 더 길었습니다. 소장님은 제재와 압박이 불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대화와 화해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부족했습니다.
김대호 소장은 화제의 무게중심을 전환했다. 그의 돌연한 국면전환 시도가 없었다면 대담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무의미한 도돌이표처럼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 경제가 발전하려면 사유재산권의 존중과 보장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농업 개혁으로 식량생산이 늘어났습니다. 장마당이 활성화돼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북 제재와 압박의 와중에서도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원리와 요소가 북한에서 싹트니까 물질적 생산력이 증대하면서 주민들의 실질적 편익이 증진되었습니다. 이건 제재와 압박을 탓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북한 경제가 장기간 동안 황폐함을 거듭해온 사태는 김씨 세습 왕조와 조선노동당의 잘못된 시장관을 추궁하고, 실패한 정책에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일입니다. 북한에게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대한 시장이 이웃해 있습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했나요? 러시아가 북한을 강력히 압박해왔나요? 아니거든요.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들에서 팔릴만한 물건들을 북한이 만들어 수출했다면 북한의 경제 사정은 오늘날과 견주어 훨씬 나아졌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다 대북제재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남한의 여론을 몰아가고 있어요. 남북관계가 극도로 긴장되고 경색된 이유도 냉철하게 따져봅시다. 연평도 포격은 명명백백한 선제공격입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도 북한의 대남도발이고요. 저도 처음에는 폭침이 아니라고 믿었지만요.
김대호 소장은 대학교에서 금속공학과를 다녔다. 그가 중도에 학생운동에 투신했어도 들은풍월은 분명 있을 것이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그의 주장은 아마도 나름의 기술적 판정에 근거했을 터인데, 이런 논쟁은 문과생 출신인 필자가 아니라 김대호 소장처럼 이공계를 전공한 인물이 펼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 같아 나는 더 이상의 소모적 문답은 지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전쟁은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야 한다
김 : 북한은 오랫동안 남조선 해방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왔습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도 조국통일을 외칩니다. 북한 정권이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은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일과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지 못한 상황을, 북한 경제가 피폐해진 현실을 왜 자꾸만 미국과 남한 보수의 탓으로 책임전가를 시도합니까. 한국에서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체는 남한 사람들이 바라는 통일은 북한 체제가 연장되는 통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북한과 비교하면 남한이 단연 더 민주적이고, 자유적이고, 공화적이고, 개방적이고, 풍요롭습니다. 이를 잃고 싶어 하는 남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상정하는 통일은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긍정적 성취물들이 북한으로 연장되고 확장되는 통일입니다. 한반도 최대의 아이러니는 남한이 그리는 통일한국의 미래상과 북한이 노리는 통일조국의 개념이 판이하게 다름에도, 남북한 사람들이 “조국통일!”을 합창하며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풍경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상이 아닙니다. 통일은 엄청난 폭력적 행동이 될 겁니다. 저는 그러한 연유에서 통일보다는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고, 공영과 공존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자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에 북한이 과감한 개혁과 개방에 나서고, 가시적 인권 개선 조치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공 : 그래도 제재와 압박이 약발이 먹히지 않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다음은 단호한 군사행동인 건가요?
김 : 남한은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로 살아도 이제는 별다른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자기 나라가 낙후된 모든 원인을 분단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조국통일을 부르짖는 겁니다. 북한이 LA나 뉴욕을 겨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겠다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이판사판으로 나오면 미국은 수백만 명의 자국인들이 살상되는 사태를 무릅쓰면서까지 구태여 무리하게 군사행동에 착수할 나라가 아닙니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기습남침을 감행해 남한을 점령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북한이 미국이 개입할 경우 다같이 죽자며 빼째라 식으로 반격한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손을 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희준 통신원은 평화를 위해 백두칭송을 하면서 살겠습니까?
공 : 당연히 안 살죠. 그런데 북한의 군사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입니다. 북한은 견적이 안 나오는 나라거든요. 북한은 모든 자원을 핵개발에 쏟아 부은 탓으로 말미암아 핵무기 보유국을 자처하는 수준에는 도달했지만, 반대로 당장 탱크에 넣을 기름도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민군이 삼보일배를 하며 휴전선을 돌파해 서울을 기습적으로 점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 : 남한 사람들은 군사폭력의 실체와 무서움에 대해 알지를 못합니다. 촛불시위를 통해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한 까닭에 국가권력이 갖는 보편적이고도 어마어마한 공포와 폭력성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시리아를 보세요. 이라크를 보세요. 미얀마를 보세요. 그리고 크메르루주를 보세요. 역사적으로 국가폭력이란 정말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존재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번에 경험한, 촛불시위 앞에 물러나는 권력은 선진국 권력입니다. 더 선진적인 나라는 국민들이 촛불시위조차 벌일 필요 없이 스스로 알아서 순순히 퇴진하고요. 이와 정반대로 후진국 권력은 몹시 잔인하고 포악합니다. 수백~수천 만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반(半) 야만 권력입니다. 그리고 북한 정권 역시 이러한 반 야만 권력입니다. 북한 정권은 심지어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야만적 권력이기도 합니다. 제가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해야만 한다고 호소하는 까닭입니다.
공 : 북핵을 제거하기 위해 실제로 무력이 동원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이로부터 비롯될 충격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소장님께서 천착해오신 화두가 경세제민, 즉 경제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겁니다.
김 ; 이 부분은 상상과 예상을 초월하는 영역입니다. 북한이 핵을 쏠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으로 조준해놓은 장사정포를 발사할 수도 있고, 남한의 인구밀집 지역을 향해 화생방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낙관적 시나리오에 의거해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본래의 의도와 어긋나기 십상입니다.
공 : 금년으로 종전 100주년을 맞은 제1차 세계대전도 거의 모든 참전국들이 수개월 안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입각해 선전포고를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김 : 독소전도 그랬고요.
공 : 히틀러도 석 달이면 소련 정복을 마칠 수가 있다고 장담했었습니다.
김 : 전쟁은 어떻게든 피하고,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공 : 소장님과 제가 그 지점에서만큼은 절묘하게 완벽한 의견일치에 도달하네요.
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국제정치이고, 전쟁과 평화의 문제입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말을 듣습니까? 그렇다고 북한이 우리 정부의 말을 들어줍니까?
공 :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기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습니다.
김 : 북한과 미국 둘 다 우리가 제어하기 어려운 상대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쟁은 피하되, 전쟁에 대한 기본적 준비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제정세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나아가야만 하겠죠. (④편에서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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