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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을 보면 이준석이 보인다 - ‘윤석열 신당’은 등장할 것인가 ③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2-06-28 22: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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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말에 생긴 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왼쪽)의 다정했던 한때. 두 사람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 신임 당대표로 각각 선출되기 전의 일이다. (사진출처 : 노무현 사료관)

“대선 며칠 후 이강철이 찾아와서 당대표 빨리 내놓으라고 종용하더라고.”

 

필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와 비교적 장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한화갑이 걸었던 영욕으로 점철된 굴곡진 정치적 여정에도 불구하고 한 베테랑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대 한국정치사의 본질과 이면을 관통하는 귀중한 사료가 돼주는 이야기였다. 특히, 수없이 숱하게 명멸해간 크고 작은 정당들의 부침과 궤적을 되짚는 데에서 한화갑 전 대표의 생생한 육성증언은 그가 본인의 정치인생에서 선택한 노선과 이념에 대한 찬반을 떠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그때 차마 활자화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당시의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심란하고 불미스런 사건들이었다. 한화갑 전 대표가 내게 들려준 얘기들 가운데 글의 형식으로 옮겨지지 않은 부분은 필자의 뇌리에서 현재는 거의 모두 잊힌 상태다. 그런데 유독 한 가지 일화만은 네티즌들이 말하는 음성지원까지 가미되며 기억에 오롯이 살아남아 있다. 노무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강철 씨가 한화갑 대표를 불시에 예고 없이 찾아와서는 당대표 자리에서 신속히 퇴진할 것을 압박했다는 후일담이었다.

 

이강철 씨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가열 차게 벌여온 인물이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남민주화 세력’의 대표적 일원이었다. 이강철은 나중에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정무특보와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문재인 비서실장, 즉 문재인 전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두둑한 신임과 돈독한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화갑 입장에서 이강철의 이야기는 곧 노무현의 의중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서슬 퍼런 기세로 당대표에서 조속히 사퇴할 것을 채근하니 한화갑으로서는 가시방석도 이런 가시방석이 없었으리라.

 

허나 한화갑 또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모진 핍박과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단련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현실정치인이었다. 더욱이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권노갑 고문과 함께 정권의 최실세인 ‘투갑스’ 중의 한 명으로 군림하며 권력의 단맛과 쓴맛을 전부 골고루 맛본 터였다. 떠오르는 신(新) 권력의 수뇌부가 물러나라고 한다고 해서 쉽사리 고분고분 물러날 한화갑이 절대 아니었다.

 

한화갑 전 대표 측의 주장만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이강철 전 수석에게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일지 모른다. 꼬마민주당은 이기택을 필두로 김광일, 김정길, 노무현, 이철, 장석화 등 김영삼의 삼당합당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야권의 울타리 안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필자는 이강철 전 정무수석과는 꼬마민주당 당직자 시절부터 근 30년간 여의도 정치권에서 대단히 막역한 관계를 이어온 절친한 선배에게 한화갑 전 대표의 증언을 소개하며 그 진위와 신빙성을 물었다. 선배는 아주 단호사면서도 무미건조한 어조로 한화갑의 회상을 단박에 일축했다.

 

“강철이 형이 그런 짓을 왜 해?”

 

평범한 일개 민간인 신분에 지나지 않는 필자의 주관 아래 한화갑과 이강철 두 원로 정치인을 동시에 데려와 대질신문을 실시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이 문제의 정답은 아무래도 역사의 수수께끼로 영원히 남겨둬야만 할 듯싶다.

 

한화갑과 이준석의 동병상련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왕국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 참석을 목적으로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출국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NATO 정상회담에 정식으로 참여하는 건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출국하는 장소에는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환송을 나오는 게 통상적 관행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만이 경기도 성남에 자리한 서울공항에 나타났을 뿐, 당대표인 이준석 대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준석 대표는 쓸데없는 과잉의전과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평소 성정을 고려해 공항으로 출영을 나가지 않았다고 불출석 사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이준석의 이와 같은 세세한 설명이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 당대표 사이에 감돌고 있는 어색하고 불편한 긴장관계를 도리어 더욱더 도드라지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용산의 대통령실과 여당의 여의도 대표실 간에는 요 며칠 기묘하고 불온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두 사람의 회동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 간에 노골적인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는 근래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만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왕년에 텔레비전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같기도」 꼭지를 방불하게 하는 양상이다. 분명한 사실은 윤 대통령은 두 사람의 만남을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하려는 기색이 역력하고, 이와 반대로 이 대표는 대통령과 자신의 만남에 중대한 의미를 몹시 부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갓 취임한 신임 대통령과 야당 당대표도 아닌 여당 당대표의 회동을 둘러싸고서 밀고 당기는 치열한 샅바싸움이 전개된 건 윤석열과 이준석이 유일한 경우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역시 이와 비슷한 석연치 않은 광경을 국민들 앞에서 공공연히 빚어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관하는 정황은 집권당 당대표는 어떻게든 대통령과 공식적인 면담을 성사시키려 아등바등하고, 대통령은 자당의 당수와의 공개적 만남을 국정 운영에 바쁘다거나 혹은 대통령은 당내 현안들과 무관하다는 등의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가며 차일피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한화갑은 이준석의 미래다”라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명제를 자연스럽게 착상하게 된 저간의 배경이라고 하겠다. (④회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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