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과 민주당
고전은 책의 제목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문의 내용을 통독한 사람은 거의 없는 책들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그러한 범주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아온 고전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의 제목을 아는 인간은 많아도 실제로 관람한 관객은 의외로 드물다. 필자가 예시하려는 영화 「라쇼몽(羅生文)」이 전형적 경우이리라.
일본 태생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가 메가폰을 잡은 1950년 작 「라쇼몽」은 부인과 함께 숲속을 지나가다가 산적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한 무사의 애통한 사연을 다루고 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의 진술이 제각기 엇갈리는 까닭에 결국에는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저승에서 이승으로 소환해 증언을 들어보지만, 그럼에도 명료한 진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한다. 진리의 상대성과 인간의 주관성이 작품에 내포된 주제의식이라고 평가되는데, 필자가 이 영화를 온전히 정주행하지 않은 탓에 더 이상의 구체적 설명을 계속하지는 못하겠다.
「라쇼몽」은 극장에서 개봉된 지 만으로 70년이 경과해 지적재산권이 소멸ㆍ만료된 영화다. 세계적인 명감독의 섬세한 손길과 번뜩이는 눈썰미가 곳곳마다 배여 있는 유명한 고전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께서는 정식으로 날을 잡아 유튜브에서 전편(全篇)을 검색해 감상하면 좋을 듯싶다. 솔직히 나는 그럴 정도로까지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서설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200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출발해 2004년 4월 15일에 실시된 우리나라 제17대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사실상 마무리된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는 한국정치에서 일본 영화 「라쇼몽」과 비슷한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 분당 작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거나 아니면 앞장서서 막으려고 시도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의 숫자만 계산하면 수십 명에, 이 과정에서 진영을 나누고 패거리를 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양쪽 모두에서 개떼처럼 서로 뒤엉켜 치열하게 다툰 열혈 지지자들의 규모까지 헤아린다면 족히 수만 명에 달할 인물들의 기억과 주장이 들쭉날쭉 천차만별인 이유에서이다. 누구의 회고에서는 선량한 천사가 누구의 후일담에서는 사악한 악마로 지목되고, 어떤 이의 관점에서는 억울하고 불쌍한 피해자였던 인물이 또 다른 어떤 이의 시각에서는 무도하고 파렴치한 가해자로 변신한다.
게다가 새천년민주당 분당에 찬성했거나 반대했던 주요하고 핵심적인 인사들의 상당수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단적으로 분당파의 구심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수파의 대부 역할을 수면 아래에서 소극적이나마 맡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이다. 결정적으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얼렁뚱땅 넘어가자는 입장이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는 현재 전반적인 지배적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가리지 않고서 진상 규명과, 과거 청산과, 그리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유난히 극성스럽게 편집광적으로 몰입해온 민주당 계통 정당 구성원들의 평소 태도와 행태에 견주면 참으로 불가사의할 지경으로 수상쩍고 이례적인 분위기라고 하겠다.
난닝구와 백바지는 살아 있다
임진왜란을 알아야 병자호란의 원인과 전모가 확연히 이해되는 법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풋풋한 사랑을 알아야만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를 향한 춘향이의 결사항전의 자세에 자연스럽게 감명 받기 마련이다. 길고 지루하고, 소모적이고 파괴적이며, 끝내는 무의미하고 무책임했던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그 결과물인 열린우리당 창당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부실하면 작금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내전을 방불하게 만드는 당내 계파 싸움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다. 갈등의 향방과 진로를 제대로 예측ㆍ전망하기도 불가능하다.
필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검증된 수재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의 영민함은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비리그 최고의 명문학교인 하버드 대학을 무사히 정상적으로 졸업한 그의 학력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된다. 이준석은 금상첨화로 지적 호기심 또한 충만하다. 그는 휴대전화로부터 자기자동차까지 각종 첨단 기기들의 거침없고 부지런한 선구적 사용자(Early Adopter)였다.
그런데 이준석이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권의 중요한 한 축인 집권여당의 당수임을 감안하면 그의 식견과 안목에서는 여전히 2프로가 부족하다. 그건 바로 이준석이 입심 좋은 싸움꾼에서 위대한 정치지도자로 성장하고 도약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한국 정치사에 대한 면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이다. 필자가 이제껏 관찰한 바에 의거하자면 이준석의 한국 정치사에 관한 시야와 이해력은 기껏해야 박정희 정권이 산업화의 초석을 놓았고, 참여정부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에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평면적 수준 너머로는 좀처럼 발전하고 나아갈 기미가 없다.
그런 일차원적 단계에는 이준석이 속으로 무척이나 한심하게 여길 태극기 부대와 개딸 무리도 진즉에 충분히 도달한 상태다. 태극기 부대에게 박근혜는 박정희에 필적하는 조국 근대화의 찬란한 기수이고, 개딸들의 머릿속에서 이재명은 노무현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 민주화의 불세출의 영웅이다. 나머지 인사들은 죄다 이름 없는 엑스트라거나 혹은 기껏해야 비중 낮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당 분당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중대한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필자가 서술해나갈 새천년민주당 분당사는 이준석으로 표상되는 오늘날의 2030 MZ 세대가 기본적 교양이자 기초상식으로 꼭 숙지해야만 할 민주당 분당 사태의 추이와 진면목을 청년들에게 가르쳐주는 데 뚜렷한 목적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이준석의 강력한 지지기반 구실을 담당해주는 20대 남성들이 새천년민주당을 분당시킨 거대하고 복잡하며 교묘한 정치적 메커니즘이 어떠한 구실과 빌미를 내세워 작동이 시작됐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준석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배현진 의원의 악수 요청을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뿌리친 행동이 얼마나 통한의 자충수였는지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청년들에게 새천년민주당 분당은 저 중남미의 어느 소국에서 옛날 옛적에 발생했던 케케묵은 군부 쿠데타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간주되기 십상이다. 왜냐? 지금의 2030 청년세대가 새천년민주당이 비극적으로 분당되는 전말을 뚜렷이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현재의 남한 정치권의 권력과 기득권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청년들에게는 교양미 가득한 문필가로 인식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새천년민주당의 분당을 촉진ㆍ강행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 어떠한 비열하고 악랄한 권모술수의 동원도 마다하지 않았던 희대의 음흉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유시민이 자신이 마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견결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것처럼 행세하는 광경을 접할 적마다 그가 DJ와 동교동계와 호남인에게 저지른 만행과 망발들을 치 떨리게 소상히 기억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분노에 더해 역겨움마저 느끼게 되는 연유이다. (③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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