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들, 자식 위해서라면 돈 안 아껴

공희준(이하 공) : 86 세대는 왕년에 전두환 패거리의 군부독재와 싸웠던 일을 사골국물 끓이듯이 평생 동안 우려먹어온 집단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입시 제도에서만은 전두환 군사정권 체제가 채택했던 방식을 지지하는 것입니까?

전대원(이하 전) : 공희준 원로가 했던 말씀에 정답이 들어있습니다. 원로님 인서울 대학 쉽게 들어가셨잖아요? 그 사람들이 쉽게 갔다는 건 그 자식 세대도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 : 586들이 학력고사 방식에 힘입어 특별한 노력 기울이지 않고 진학했으니까, 586 세대의 자식 세대도 학력고사 방식에 의지해 특별한 노력 기울이지 않고도 인서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작용하기 때문인가요?

전 : 그렇죠. 586들의 상당수는 시골집이나 혹은 대도시 변두리 단칸방에서 깜빡거리는 흐릿한 형광등 아래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자식들은 예전보다는 훨씬 개선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고생했던 경험에 이제는 탄탄한 물질적 토대가 얹어진 덕분에 입시에 대한 굉장한 자신감이 지금의 586들에게 생겨났습니다. 돈도 많지, 노하우도 쌓였지, 586들은 교사라는 이상한 매개체만 사라지면 시험에 의거한 단판 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상태입니다.

공 : 저는 부모님께서 영세한 직종에 종사하셨습니다. 집안의 경제력이 좋은 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도 입시에서 대박은 터트리지 못했을지언정 본전은 건졌습니다. 그래도 부모님 모두가 고학력자였다면 수험생활에 적잖은 도움을 받았겠죠.

전 : 저는 평소에는 586 세대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아왔습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인터뷰어인 원로님의 기호와 관심사에 발맞춰 답변내용을 준비했습니다. 586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유리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돈 때문에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을 극렬하게 반대하겠습니까? 당장 「스카이 캐슬」만 시청해보세요. 돈은 물론이고 영혼이라도 바쳐서 제 자식을 일류대에 진학시키는 게 학부모들의 로망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586들이 돈이 많이 들어서 학종을 반대한다는 논리가 납득이 되십니까?

공 : 586들이 짱구를 부지런히 굴린 결과 자기들 자식에게 불리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니 반대했겠죠.

전 : 빙고! 학력고사 방식이 586들에게 유리한 기제인 이유를 열거해보겠습니다. 일단 입시라는 특정한 경기장에서의 유전자(DNA)의 우수성이 입증됐습니다.

공 : DNA가? 흐흐흐

전대원 선생은 우생학적 맥락에서 하드웨어(?)의 우열을 거론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입시의 공간이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그와 같은 비유를 곁들였을 뿐이다. 문맥을 오독할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은 노파심이 발동하는 터라 필자가 혹 발생할지도 모를 일부 독자들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미리 대못을 박아두는 바이다.

전 : 첫째로, 부모가 상대적으로 머리가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로, 586들은 외부적 변수만 제어된다면 자신들 아이들의 성적을 상위권에 진입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전대원 선생은 설명과 질문을 필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냈다.

전 : 저 외진 두메산골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힘들게 생활하는 학생이나, 또는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서울 산동네에서 가난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학종을 비판하는지라 학종 반대 여론이 우리나라 담론시장에서 이렇게 득세한 겁니까? 아니면, 586들이 학종을 무차별로 난타하는 바람에 학종 전형이 국민의 공적으로 자리매김한 건가요?

공 : 21세기 대한민국은 586들의 특수한 여론이 사회의 보편적 여론으로 둔갑되어 통용돼왔습니다. 팔육이들이 참 재주들은 좋아요. 담론시장 장악하고서 대국민사기 치는 재주들은.

전대원 선생은 MBC 문화방송의 간판 토론 프로그램인 「백분 토론」에 현직 고등학교 교사 신분의 토론자로 출연해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가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숫자의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호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진은 전대원 페이스북 계정에서 갈무리해온 해당 프로의 한 장면

학종 전형은 평범한 흙수저들을 위한 입시 제도

전 : 그 목소리 큰 586들이 거주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공 : 당연히 강남 부자동네죠.

전 : 그렇다면 그 586들의 자녀들은 주로 어떤 고등학교를 다니겠습니까?

공 :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입니다.

전 : 강남에 살면서 자기 아들딸 특목고 보낸 586들이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을 금수저 전형이라고 손가락질해대면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 같은 현직 교사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공 : 입에서 저절로 육두문자 나옵니다.

전 : 이제 제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시겠어요? 현실에서는 안티 586들이 586들과 콜래보(Collaboration)를 이루며 학종을 공격하는 담론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제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자판 하나로 이 모든 싸움을 감당하고 있는데….

공 : 선생님도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씀이시네요. (웃음)

전 : 저는 586과 안티 586 모두에게서 교육과 관련해 모순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공희준 원로님께서는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을 병행하라고 학부모들이 성화를 부리는 데에서 모순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공희준님으로부터 모순을 감지했습니다.

공 : 어떤 모순인가요? 모순이 없으면 그게 인간인가요? 신이지!

전 : 평상시에 다른 모든 사안에서는 586들과 길항관계로 대립하는 인물이 유일하게 교육문제에서는 586들과 같은 배에 탔다는 사실입니다.

공 : 그 정도 모순이면 약과네요. (웃음) 그럼 586들의 결정적 모순점은 뭔가요?

전 : 본인들 스스로가 금수저인 주제에 학종 전형을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치명적 자가당착입니다. 평소에 586들이 자행하는 내로남불을 얄미울 정도로 잘 짚어내는 원로님마저도 학종 문제에서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화뇌동을 하고 계십니다. 586들의 주장이라면 일일이 반박하고 검증하시던 분이요! (죄인을 문초하듯이)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공 :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제 아내가 머리가 좋습니다.

전 : (실소에 가깝게) 하하하…. 부인을 잘 얻으셨습니다.

공 : 제 아내가 머리가 좋아요. 아주 좋아요. 돌아가신 제 장모님께서도 머리가 무척 좋으셨고요. 저는 제 어머니가 머리가 좋으십니다. 생각해보니 집안에서 여자들이 머리가 좋네요. 제 딸도 솔직히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웃음)

전 : 단판 승부에 자신 있으신가 보네요. (길게 호흡을 들이마신 후) 학종 반대론자들이 학교생활기록부 전형을 금수저 전형이라고 폄하하지만 않았어도 제가 화가 그나마 덜 났을 겁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강남엄마들이 학종을 격렬히 반대합니다.

공 : 강남아줌마들이!

전 : 자식을 특목고에 입학시킨 부모님들께서도 학종을 성토합니다. 제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로 부임하기 전에는 경기도의 농촌 지역에 입지한 학교에 5년가량 있었습니다. 제자가 대학 잘 가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은 시골학교라고 해서 도시 학교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시골 학교에서 경험해보니까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입시에 성공하는 방법은 학종 전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종 찬성론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큰 문제나 하자 있나요? 제 아들을 좋은 대학 보내려고 학종 전형을 옹호해온 것도 아니거든요.

공 : 전대원 선생님께서는 매우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사고구조를 갖고 계십니다.

전 : 저는 제가 지도한 아이들의 대학입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까닭에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런데 토론회를 나가 보니 상대방이 금수지언 거예요. 그 금수저 양반이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다”란 논리를, “집안은 가난하지만 실력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학종을 철폐하자”라는 논지를 전개하면 제 심정이 어떻겠어요?

공 : 저라면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상대편 토론자에게 조용히 다가가 꿀밤 한 대를 때려줬을 것 같습니다.

전 : 저는 때려주고 싶다는 의미까지는 아닙니다. (웃음) 저로서는 어이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제 편을 들어줘야만 마땅할 공희준 원로님마저도 옆에서 학종 반대론자에게 맞장구를 치고 있으면 제가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겠습니까? 저는 학종 제도를 빌려 흙수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안절부절못하는 판국인데.

공 :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의 마음은 설움 반, 원통함 반이겠네요.

전 : 예, 그렇습니다. 사실은 저도 학창 시절에 학종에 어울리는 유형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내신 성적도 별로였고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학종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능시험을 건너뛰는 건 아닙니다.

공 :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진행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님과의 인터뷰의 한 대목이 독자들에게 엄청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전 : 어떤 부분이었습니까?

공 : 김대호 소장님께서 “나는 지금의 입시전형 제도로도 서울대 갈 수 있다”는 취지로 단언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 대목을 읽고서 역시나 서울대 출신인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님이 거의 경악에 가까운 수준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⑦편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