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이냐, 밥상이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최근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 그가 주도해 창당한 개혁신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답보 상태에 빠졌고, 이준석의 정치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긍정과 비교해 부정이 우위를 점유한 상황이다. 개혁신당이 본격 출항도 하기 전에 항구에서 허망하게 좌초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라 하겠다.
2024년 총선이 ‘이준석의 시간’이 되리라고는 이준석 본인조차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른바 ‘별의 순간’은 총선에서 찾아오지 않는다. 보통은 대선에서 맞이하는 법이다. 이회창은 1996년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서기 2000년의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총재로서 야당을 사상 최초로 원내 제1당으로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그럼에도 이회창은 대통령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최근의 사례를 제시해보련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던 이낙연은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도록 이끈 주역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현재 본래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을 탈당해 초미니 정당인 새로운미래에 합류해 있다.
이회창과 이낙연이 차례로 뚜렷이 증명하듯이 총선에서 빛나는 성과물을 확보한다고 하여 대선에서의 전망이 반드시 밝아지지는 않는다. 이는 총선을 수확의 시간이 아닌 파종의 시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이준석과 이낙연의 전격적 결합은 11일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 신혼부부의 경우에 견준다면 결혼식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지가 아니라 가정법원으로 출발한 격이었다.
그러나 단 하루짜리 사건에도 복기할 과정과 총화할 결과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 제대로 결산서를 뽑지 않으면 동일한 오류를 나중에 재삼재사 되풀이해 저지르고 만다.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와 팀을 이루는 일은 밥을 먹다가 밥알 몇 개를 바닥에 흘리는 정도의 실수에 빗댈 수 있다. 일단 짝을 이룬 상대방과 불화하고 결별하는 일은 밥상을 통째로 뒤엎는 참사에 비견될 수가 있다. 이준석은 이낙연과 남녀 간의 연애에서 말하는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후에 합당을 선언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핵심 지지층의 반발과 여러 가지 무리수를 무릅쓰고서 이왕지사 통합한 마당에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버텼어야 옳았다. 왜냐? 22대 총선 국면은 이준석에게 별의 순간이 아닌 축적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악물고 버티지 못한 이유를 이준석 대표에게 직접 물어볼 입장과 위치에 있지 못하다. 고로 순전히 내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추측 또는 억측에 근거해 이준석이 이낙연과의 조기 결별을 선택한 까닭을 서술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은 별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트라우마의 순간’부터 겪었다. 그건 이준석이 향후에 어떻게 결단하고 행보하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현재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으로 차츰차츰 기우는 기미가 조금씩 포착되는 중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손해나야 성공하는 오묘한 정치의 세계
정치인 이준석의 최대 트라우마가 무엇일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준석 본인이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에 임명한 이양희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정권 수뇌부가 희망하는 바대로 이준석에게 당원권 6개월 정지 처분이라는 과도한 징계조치를 내린 쿠데타적 사건이리라. 이 기막힌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완벽하게 접수했고, 이준석은 사실상 처량한 야인 신세로 내려앉는다.
“당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윤석열과의 권력투쟁에서 참담하게 패퇴한 쓰라린 경험은 이준석에게 그와 같은 교훈을 거의 강박관념처럼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개혁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이준석이 자기가 윤리위원장을 맡아야겠다고 언급한 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던 셈이다.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 보고 놀라며 내지른 외마디 비명과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 당권의 가치와 중요도는 때와 장소를 달리하며 시시각각 변한다는 사실을 이준석은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다. 이준석이 윤석열과의 힘겹고 고독한 싸움에서 대다수 민심의 지지를 등에 업었던 건 그가 약자였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력적이라는 동정표가 언더독(Underdog) 이준석에게 집중적으로 몰린 셈이었다.
이와 달리 이낙연과의 다툼에서는 이준석이 내용이야 어떻든 외부로 비치는 모습은 강자였다. 윤석열과의 갈등에서 이준석에게 쏠렸던 압도적인 동정적 시선을 이번에는 누릴 수가 없었다. 이낙연 세력을 확실히 일소하고 개혁신당 내에서 이준석이 다시금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했음에도 그에게 남은 건 상처뿐인 영광이다. 불손하고 시건방진 인상만 외려 가중됐을 따름이다.
이낙연과의 짧은 동거 직전까지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준석과 제휴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들은 이준석으로부터 단물만 빨아먹길 원했다. 회계장부의 숫자가 전부일 냉혹한 기업의 세계에서는 남과 절대로 손해 나는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반면, 살과 살이 부딪히고 피와 피가 섞이는 현실정치의 공간에서는 손해 나는 장사를 인내심 있게 계속하며 지지층을 꾸준히 확장해가야 한다.
김대중은 재야세력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봤고, 이기택이 인솔한 꼬마민주당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봤고,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과의 거래에서도 엄청난 손해를 봤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통틀어 결국 정권을 잡은 건 김대중이었다.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결렬되고 실패한 연합전선은 사소한 손해조차 견디지 못하는 지극히 작고 협량한 인물이라는 달갑지 않은 주홍글씨를 이준석에게 아로새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준석은 이낙연과의 정치적 재결합은 꾀하지 못할지언정 인간적 화해만은 도모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이낙연 집을 찾아가 단둘이 밤새워 통음이라도 불사해야 한다. 이준석을 향한 민중의 신뢰와 기대감이 단연 고조됐던 시기는 이준석이 영악한 이준석 대신에 순진한 이준석으로 무대에 등장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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