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 기자
"몇 년째 저렇게 비어있어요. 코로나는 끝났지만 고물가에 소비도 없고, 이렇게 불경기에 월세가 1억이라는데 누가 들어오겠어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지하철 강남역과 신논현역을 잇는 강남대로. 왕복 10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양쪽 대로변은 퇴근을 앞둔 직장인과 쇼핑백을 손에 든 시민으로 북적였고, 스마트폰 지도 앱을 열어 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난해 여름 문을 열어 영업 시작 전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미국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가이즈' 매장도 예전처럼 길게 줄이 늘어선 것은 아니었지만 안에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대로 양쪽에 늘어선 건물 1층에 텅 빈 점포가 곳곳에서 보였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오랜만에 동창들과 술을 마시러 강남역에 왔다가 전부 '임대문의'가 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상권이 다 죽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신논현역과 강남역 사이 대로변 고층 건물 1층 상가를 모두 살펴보니 두세집 건너 한집 꼴로 매장이 빈 채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특히 역삼동과 맞닿은 신논현역 5번 출구∼강남역 11번 출구 쪽 대로변에는 1층 상가 39곳 중 18곳이 비어 있었다. 비교적 작은 점포 3곳이 쪼르르 줄지어 공실인 곳도 있었다.
썰렁해진 강남대로 상권 상황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의 상권별 중대형 상가 공실률 자료를 보면 작년 4분기 기준 강남대로 공실률은 8.3%로 5년 전인 2018년 4분기(2.6%)의 3배 수준이다.
코로나19 유행과 거리두기로 공실률이 정점을 찍은 2020년 3분기(16.4%)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작년 4분기 도산대로(3.3%), 압구정(2.0%) 등 강남 일대 인근 상권과 비교하면 여전히 회복은 더딘 편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당시 유동 인구가 줄면서 강남대로 점포 문을 닫은 브랜드들이 높은 임대료와 상권·영업전략 변화 등 복합적 요인에 따라 엔데믹 시대에도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분석한다.
전통적으로 강남대로 상권은 명동과 마찬가지로 높은 임대료 탓에 해당 매장의 매출 자체보다는 홍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입점한 화장품이나 스포츠 브랜드 등이 주를 이뤘다.
영업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풍부한 유동 인구를 노리고 일종의 브랜드 '광고판' 역할을 하던 매장들이 거리두기 영향으로 광고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되자 결국 떠나버린 것이다.
2010년 12월 강남대로에 자리 잡은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매장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절정이던 2022년 9월 폐점했다. 10년 안팎 자리를 지켜온 네이처컬렉션, 에스쁘아, 아리따움 등 다른 화장품 브랜드 매장들도 비슷한 시기 차례로 문을 닫았다.
높은 임대료가 꿈쩍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지역 공실을 장기화하는 요인이다.
강남역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은 "임대료가 낮아지면 건물 가치가 떨어지는 셈이라 임대인 입장에서 임차인이 없다고 해서 임대료를 내리지는 않는다"며 "특히 강남역 쪽은 이자 부담에 쪼들리는 임대인들이 아닌 만큼 임대료를 1년 받느냐 못 받느냐보다 건물 가치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의 또 다른 중개업소 직원도 "건물주 중에는 임차인으로 플래그십스토어(대형 상권 지대에 큰 수익보다는 브랜드 홍보 효과를 위해 설립하는 매장)만 받으려는 분들도 적지 않다"며 "임대료는 안 떨어지는 상황에서 핵심 상권도 인근으로 옮겨가면서 (임차인들이) 강남대로 쪽은 많이들 보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제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이 지역 600㎡ 규모 매장은 현재 '보증금 50억원·월세 1억5천만원' 조건으로 새 임차인을 구하고 있다.
역시 임차인을 찾는 신논현역 쪽 300여㎡ 규모 매장은 보증금 15억원에 월세 8천만원 조건이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로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코로나19 시절 기업 마케팅 전략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위주로 옮겨간데다 성수동 일대나 대형 복합쇼핑몰 등지로 상권이 이동한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가 올라가고 경제가 침체한 상태, 즉 소비가 위축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줄고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공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공실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데믹 이후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장사가)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 현장에 가야만 구입할 수 있는 업종이 중심인 상권은 덜 죽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임대료를 낮추더라도 (임대 매물이) 잘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강남대로 상권에 들어설 수 있는 대형 업체들도 성수동 등 새롭게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지역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스타필드 같은 대형 복합쇼핑몰이 형성되면서 서울로 소비가 유입되지 않고 많이 분산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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