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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과 마지노선② : 승자의 무덤 헌법재판소

공희준

  • 기사등록 2019-04-23 16: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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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 프랑스와 독일의 엎치락뒤치락


독일과 프랑스의 숙적 경쟁에서 언제나 승자는 승리의 기억을 먼저 잊는 쪽이었다. (이미지 출처 나누위키)인간은 경험의 포로이기 마련이다. 한데 경험이라고 해서 다 동일한 비중과 가치의 경험은 아니다. 성공의 경험과 실패의 경험은 나중에 천지 차이의 후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패의 경험은 가시방석이 되는지라 고통스러운 실패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빠져나오도록 실패자를 강박하고 재촉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에게 짓밟힌 프러시아가 그랬더랬다.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통쾌한 역전과 복수를 위한 서곡이었다. 삼성그룹이 휴대전화로 세계시장을 제패한 저변에는 자동차 산업에서의 치욕적 철수가 자리해 있었다.


성공의 경험은 안주와 타성에 젖도록 이끄는 최고급 물침대로 자주 변하는 까닭에 궁극적으로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초래하곤 한다. 당대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프랑스 육군이 나치 독일의 폴란드 공화국 침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된 지 8개월 만에 마지노선에서 무기력한 앉은뱅이 오리가 돼버린 데에는 1차 대전 당시 참호전으로 성공한 짜릿한 기억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프랑스의 정치인들과 장군들은 더욱더 성공적인 참호전, 곧 진지전을 추구하다가 기동전 즉 전격전의 부끄러운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어디 프랑스 육군뿐이랴? 코닥이 몰락한 것도 결국에는 필름 시장에서의 승리의 기억에 지나치게 도취된 영향이 컸다. 첫사랑의 기억보다도 때로는 더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괴물이 다름 아닌 승리의 기억이라고 하겠다.


박근혜 정권의 1차 헌재대전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박근혜 정권에게는 결과적으로 꿀 발라진 독이 됐다. (사진출처 : 리브레 위키)문재인 정권 인사들에게 2017년 3월 10일은 평생 잊지 못할 기분 좋은 날이다. 바로 그날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판결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헌법재판소에 승리의 달콤한 기억을 영구보전하고 싶은 충동을 새록새록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리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엄중하고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도 승리의 달콤한 기억이 간직된 추억과 낭만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2014년 12월 19일 안국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이 공식 결정되었다. 박근혜 대통령-황교안 법무부 장관-정점식 검사장 3인방이 그간 종북세력으로 지목되어온 정치세력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서 빛나는 승리를 외견상 거둔 셈이었다. 악명 높은 정통 공안검사 출신으로서 황교안 대표의 최측근으로도 이름난 정점식 전 검사장은 지난 4‧3 보궐선거를 통해 지금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있다.


통합진보당이 박근혜-황교안-정점식 공안 삼각편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난타당하는 동안 제1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재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 주류와 비주류, 친문과 비문을 가릴 것 없이 통진당 해산 사태에 외면과 무관심으로 철저하게 일관했다. 폴란드가 독일에게 비참하게 유린당할 무렵 마지노선에서 유유자적 한가하게 체스나 두고 있던 명목상의 동맹군 프랑스군을 연상시키는 듯싶은 풍경이었다. 프랑스에게는 불운하게도 히틀러는 중간에 제국의회에서 탄핵을 당하지 않았고, 따라서 독일 총통의 프랑스 침공 결심은 변함없이 실행에 옮겨질 수가 있었다.


헌재는 세리머니를 위해 존재한다


정치인들은 헌법재판관들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추종하는 사람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진출처 : 헌재 홈피)골을 넣고서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다. 세리머니를 한 다음 골은 넣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골을 넣는 곳인가? 아니면 세리머니를 하는 곳인가? 당연히 세리머니를 하는 장소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과 배경은 2012년 총선을 즈음해 빚어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경선부정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필자는 이 사건의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이고, 진짜로 억울한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굳이 변별하고픈 의향은 없다.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던 여러 이질적 정파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아직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명확한 부분은 이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박근혜와 황교안 ‘공안 남매’가 자신감에 충만해 통합진보당 해산을 화끈하게 밀어붙일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으리란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전경련과 작금의 민주노총 못잖은 범국민적 조롱 대상이자 스트레스 유발자로 조락할 일도 없었을 테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압도적으로 찬성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이념 성향과 인적 구조가 2014년 12월과 2017년 3월 사이에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박근혜와 그의 심복들이 헌법재판소가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리라고 판단한 것도 내재적 접근법으로 들여다보면 그들 나름대로는 합리적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는 남한사회에서의 헌법재판소를 위시한 법원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에 관해서 무지해도 너무나 무지했다. 사회가 판결을 바꾸지, 판결이 사회를 바꾸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간통죄 위헌판결로 말미암아 성문화가 문란해진 게 아니다. 성적인 일탈과 방종이 만연된 탓으로 간통죄가 무용지물이 됐을 뿐이다. 간통죄를 더 이상 존속시켰다는 대한민국의 감옥이란 감옥은 외도하고 바람피운 불륜 남녀들로 머잖아 전부 꽉 찰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헌법재판소가 골을 넣는 곳이 아닌 세리머니를 하는 곳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분위기이다. 단적으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판사를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무리하게 꽂아놓은 조치를 두고서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탄핵에 대비한 조치라면서 극력 반발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자유한국당을 축구팀에 비유하면 이 팀은 상대방이 골을 넣는 걸 막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다. 득점포를 쏳아 올린 상대편 선수가 축하 세리머니를 그라운드에서 하지 못하게끔 하는 일에만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전차와 항공기가 전선의 주역이 된 전격전 시대에 집권세력이 헌법재판소에 마지노선을 쌓느라 여념이 없다면, 야당은 문재인 정권이 마지노선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시멘트 포대를 만재한 적의 화물트럭들 바퀴에 펑크를 내는 작업에 골몰하는 꼴이다. (③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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