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본격적인 유튜브 활동에 나섰다. 적잖은 이들에게는 이준석이 유튜브 활동에 나섰다는 소식이 조금은 이상하고 어색하게 들릴지 모른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누리꾼들이 유튜브 사이트에 접속하면 모종의 알고리즘이 작동해 이준석이 나오는 영상물이 도처에서 자동으로 떴을 테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들과는 달리 실제로는 작심하고 유튜버로 활동하지 않았다. 그가 등장한 각종 시사 관련 프로그램들의 콘텐츠가 유튜브에 게시됐을 따름이다. 그가 오롯이 자신이 주도하는 독자적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경우는 금번에 새롭게 출범한 「여의도 재건축조합」이 사실상 처음이다. 이준석이 기존에 출연한 유튜브 방송에서 그의 위상은 외부에서 방문한 초대손님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시간 기준으로 2023년 7월 28일 사전홍보 성격의 첫 동영상을 띄운 「여의도 재건축조합」은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경과한 8월 4일 오후 현재까지 약 2만 5천명 가량의 구독자를 확보한 상태다. 이준석을 향해 우호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많은 숫자로 생각될 터이고, 그를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사들에게는 초라한 수치로 느껴질 것이다.
이준석이 깊숙이 관여해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선 대략 세 가지 특이점이 포착되고 있다.
첫째로 「여의도 재건축조합」이란 명칭이 웅변하듯이 대한민국 제도정치권의 전면적 혁신을 지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 사이의 썩 유쾌하지 않은 인연과 관계를 감안하면 우선적 철거대상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여의도 재건축조합」은 유튜브 운영자의 이념적 경향을 불문하고 편리한 수익모델 차원에서 흔히 장착되곤 하는 슈퍼챗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슈퍼챗은 일정한 요건들만 충족하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거금을 단시간 내에 손쉽게 움켜쥘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다. 이준석은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다. 시청자들로부터 슈퍼챗을 받아 목돈을 챙겨도 법률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는 슈퍼챗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맹목적 진영논리와 망국적 갈라치기에 편승해 부도덕한 돈벌이에 몰두해온 좌우의 ‘극단상업주의’ 정치 유튜버들과 확실하게 선을 그은 셈이다.
셋째는 방금 위에서 언급된 둘째 사항과도 연관된다. 슈퍼챗은 실시간 방송 도중에만 거둘 수가 있다. 「여의도 재건축조합」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 위주의 지엽말단적 소재들만 다루기 마련인 생방송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단은 천명했다.
물론 절체절명의 급박한 정세가 조성될 시에 이러한 방침에 변동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이준석은 굳이 생방송에 목을 매겠다는 움직임을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주요한 정책 현안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차분한 방송 기조를 당분간 유지해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준석은 정당에 몸담은 당원에게는 정상적인 공민권과 마찬가지 권리일 당원권이 합산해 무려 1년 6개월간 정지되는 형태로 국민의힘에서 파문당한 상황이다. 나는 이준석이 유튜브로 일종의 사이버 망명을 결행한 데에는 또 다른 중차대한 이유와 동기가 작용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치하의 엄혹한 유신체제 시절, 대마초 파동이 한국 가요계를 강타했다. 그로 말미암아 장차 K-POP의 초석을 닦을 신중현, 조용필, 정훈희 등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고 말았다. 나중에 공개된 바로는 사회비판적 분위기가 농후했던 포크송과 반항과 도전의 기운이 충만한 록 뮤직에 대한 정권 수뇌부의 구태의연한 거부감이 대마초 흡연을 구실로 수많은 대중음악인의 입에 강제로 재갈을 물리는 원인이 됐다고 한다.
그때 권력의 검열과 간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튜브 같은 대안 미디어가 존재했다고 가정해보자. 방송 출연이 차단된 가수들은 앞다투어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팬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신곡들을 공개했으리라.
이준석 전 대표는 현재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며 유권자들에게 자기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집권당 당수 자리에서 축출된 이후 이준석의 방송 출연은 더욱 빈번해지고 활발해졌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사람과 집단에게는 이보다 더 못마땅할 수는 없을 게다.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당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의 차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 전 수석을 내세워 방송 장악을 시도할 거라는 우려와 공포가 팽배한 탓이다. 정부여당이 진짜로 방송 장악에 착수할지에 관해 최종적 평가를 내리려면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예의주시해야만 하리라.
그럼에도 현실화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하나의 시나리오가 있다. 이동관 체제의 방통위가 들어서면 이준석 전 대표가 지금처럼 자주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 채널에 나타나기는 힘들어질 것이란 점이다.
그러므로 이준석 입장에선 우두커니 앉아서 손발이 결박당하길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를 불러주는 방송사가 대폭 줄어들어도, 이준석을 섭외하려는 프로그램이 거의 완전히 사라져도 본인의 의견과 목소리를 마음껏 발신할 수 있는 통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필자는 그 유용하고 필수적인 비상구 역할을 「여의도 재건축조합」이 무난히 소화해줄 걸로 예측ㆍ전망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군사독재 정권이 기성 일간지들을 무력화시키자 신민당은 「민주전선」과 「신민주전선」이라는 제호의 당보를 차례로 제작ㆍ인쇄ㆍ배포해 집권세력의 언론탄압 책동에 맞섰다. 민주전선에 실렸던 김지하의 장편 풍자 담시 「오적」은 당대 기득권층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신민주전선의 편집국장으로 맹활약하며 필명을 떨친 바 있다.
이준석이 과거에 권력의 폭압과 횡포로 인해 언로, 즉 말길이 봉쇄될 때 야당과 재야세력이 불가피하게 선택했던 전통적 우회전략을 의도적으로 벤치마킹해 「여의도 재건축조합」의 설립을 기획ㆍ추진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대목은 오늘날처럼 다채롭고 다변화된 매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대에는 방송을 장악한다고, 신문사들을 압박한다고 세상이 권력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준석과 그의 동지들의 발랄하고 색다른 실험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저 유명한 명제의 위력과 불변함을 재확인시켜주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axnews.co.kr/news/view.php?idx=35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