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정의당의 위기 이전에 정치 자체의 위기다
공희준(이하 공) : 정의당은 작년에 치러진 6ㆍ1 지방선거에서 역대급 참패를 당했습니다. 반면 진보당은 지자제 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을 배출한 데 뒤이어 이번 4ㆍ5 전주을 재선거를 통해 원내 진입에까지 성공했습니다. 진보정치에서 정의당은 지는 별이고, 진보당은 뜨는 별인 셈입니다. 정의당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둘러싸고 다채로운 시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의당 내부적으로 진단하는 위기의 원인과 이를 극복할 대책은 무엇인지요?
김희서(이하 김) : 저는 지금의 정세를 ‘정치의 위기’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위기를 맞이한 주역은 단지 정의당뿐만이 아닙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민주당 또한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진보정치 전체가 위기에 처했음은 물론입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퇴영적 양당구도와 극단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그 결과 정치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의 실종사태는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정당들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켰습니다. 국민들께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 남아 있던 시절에는 진보정당들에 건전한 균형추와 매서운 감시자 노릇을 주문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극단적 진영논리에 휘둘리다 보니 진보정당들이 감시자와 균형추로 활약할 여지가 거의 봉쇄됐습니다. 거대 기득권 양당은 이런 분위기를 은근히 조장하고 있습니다.
공 : 그분들이야 아쉬울 게 없으니까요.
김 : 그럴수록 정치의 실종사태를 정의당이 앞장서서 타개해갈 필요성이 작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들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온전하게 반영하는 정치를 착실하게 해나간다면 작게는 정의당이라는 특정 정당의 위기가, 크게는 한국정치 전반의 위기가 충분히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진보정당은 노동자 계층과,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되고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일에 전통적으로 주력해왔습니다. 이는 잠시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진보정당의 본질적인 사명이고 책무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점점 더 분화되고 다변화하면서 진보정치가 대변해야 할 계층 사이에서도 차별성이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공 : 연봉 1억 원 넘는 은행원들과 최저임금 수준에 여전히 매여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노동자 계급이라는 한 가지 단일한 범주로 뭉뚱그려 묶는 건 객관적 관점에서 무리수로 보입니다.
김 : 진보정당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 나갈 때마다 시민들로부터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의당이 제 역할을 확실히 해달라는 말씀입니다. 당리당략에 눈먼 거대 양당이 정략적인 이전투구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정의당이라도 서민대중의 민생경제를 우선시하고, 사회의 억울하고 그늘진 곳을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애정 어린 질책입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지 않으니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정당들이 국민들의 바람과 여망에 부응해달라는 간절한 요구입니다.
정치가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힘없고 돈 없는 평범한 서민들이 그 일차적 피해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진보정당들이 망가진 정치 때문에 직접적 피해를 받고 계신 국민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데 성공한다면 정치에 대한 민심의 실망감 역시 기대감으로 다시 반전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머리로 하는 정치는 아주 잠깐만 흥할 수 있어
공 : 대변인님께서는 정치의 위기를 계속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국정치가 아무리 엄중한 위기를 겪어도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당의 존속조차 염려해야 할 지경일 백척간두의 단계로까지 내몰리지는 않습니다. 정의당 입장에서 지금 다른 당 걱정해줄 처지는 아니지 않나요?
김 : (단호한 어조로) 그렇지 않습니다. 거대 양당도 좌불안석이기는 저희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두 당이 모두 쪼개지는 탓에 당이 네 개가 된다느니, 다섯 개나 된다느니 하는 예측과 전망이 현재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중에 파다하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이 분당될 가능성을, 더불어민주당이 분열되는 시나리오를 현실에서 마냥 배제하기는 힘든 형편입니다.
거대 양당이 자극하고 증폭시킨 살벌하고 맹목적인 진영논리는 진보정치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왔습니다. 극단적 진영논리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인물과 세력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약자들이 무엇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것을 다급하게 원하는지에 사실은 별로 관심들이 없습니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이 눈감고 귀 막은 약자들의 시민권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제도권 정치의 무대에서 증진하고 실현시키는 데 앞으로도 변함없이 헌신해갈 작정입니다.
공 : 이쯤에서 원론적 질문 하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정의당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지지층은 누구인가요?
김 : 정의당의 지기기반은 제가 이미 방금 전에 말씀드린 바대로입니다. 경제적으로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정치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분들이 정의당의 핵심 지지층입니다. 정의당은 너무나 오랫동안 대표되지 못해온 분들을 대표하는 정당입니다.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정치적으로 강력하고, 사회적으로 목소리 큰 집단과 계층은 굳이 정의당이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알아서 잘 챙겨왔습니다. 소외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간과되고 외면당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건 진보정당의 필연적인 존재의 이유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예전과는 달리 성격과 색깔에서 다양해진 측면은 당연히 있습니다.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게 오늘날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양성의 존중은 진보정당이 한시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될 새롭고 중요한 과제로 추가됐습니다. 이걸 저희가 국민들이 만족하실 만한 수준으로까지 아직은 해내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느 정치인이든, 정당이든, 정치세력이든 한 치의 예외 없이 위기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저는 저희 당이 맞닥뜨린 위기의 뿌리도 바로 이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 : 대의정치에서 집권, 즉 정권창출에 성공하려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해야 합니다. 소수만 영원히 옹호하다가는 소수당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정의당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 : 제가 서울 구로구에서 지방의원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정치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교훈입니다. 표만 좇으면 단기적으로 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정의당은 소수자만 바라보고 보호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소수자를 먼저 바라보고 보호하는 정당입니다. 소수자를 보듬고, 이와 아울러 그분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토대를 구축하는 일은 당장은 표가 덜 되는 일일지언정 어느 누군가 막중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서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투철한 사명감이 없으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의당은 한국 진보정치의 본산 겸 견인차 구실을 자임해온 정당입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때로는 불리한 결정일지언정 소수자와 연대하고 약자와 함께하는 행동에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거대 양당이 영악하고 냉담하게 기피하는 일들을 하라고 많은 시민들께서 정의당에 여전히 뜨거운 응원과 아낌없는 후원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소수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일은 머릿속의 잇속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슴속의 열정으로 하는 일입니다.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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