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공희준(이하 공) :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정당입니다. 그리고 노무현과 문재인 두 명의 영남 태생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역시 영남 출신인 이재명 대표가 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는 충청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제껏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충청권에 연고가 있거나 또는 지역구를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민주당의 명실상부한 주역으로 발돋움하려면 어떠한 뼈저린 변화와 혁신이 필요할까요? 왜냐면 지난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양승조 전 충남지사가 민망하고 계면쩍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안희정 낙마 이후 충청권의 민주당 리더십 실종돼
안장헌(이하 안) :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양승조 전 지사께서 슬프게도 컷오프를 당하셨습니다. 굳이 빙빙 돌리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불미스럽게 낙마한 사태로 충청권 거의 전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심각한 지도력의 공백을 겪어왔습니다. 가히 지리멸렬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종전의 리더십은 붕괴했는데, 이를 대신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충남에서 누가 민주당을 선도하고 견인해야만 할지에 관한 명확한 합의점과 폭넓은 공감대가 현재까지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남에서, 범위를 확대해 충청에서 민주당이 확실한 구심점을 마련하려면 과거와 과감하게 절연해야만 합니다.
공 : 충청판 적폐청산을 추진하자는 의미인가요?
안 : 제3당을 한다는 허울 아래 줄 서는 데만 바쁘고, 눈치 보는 일에만 부지런한 구태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의 일선에서 조속히 물러나야 합니다. 그분들의 공통된 특징적 행태가 있습니다. 동네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악수 하고, 주변의 경조사 챙기는 게 하는 일의 사실상 전부라는 점입니다.
공 : 명절만 되면 전통시장을 찾아가 어묵과 떡볶이 즉석 먹방도 찍습니다.
안 : 그분들이 최근에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산술적 기준에서의 입법 실적을 부풀리려고 통과도 불투명한 법안들을 무더기로 발의하고 있습니다. 무원칙한 제휴와 마구잡이식 연대는 오래된 레퍼토리이고요.
공 : 의원님께서 촉구하신 구태와의 이별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해묵은 화두이고 과제입니다.
안 : 구태와의 이별은 큰 틀에서 바라보자면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충분조건은 따로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방향성과 지향점이 명분에서도 올바를뿐더러 실리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걸 550만 충청권 주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주당이 충청 지역에서 확실한 대안이, 믿음직한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충청권은 단일한 정치적 색깔로 뭉친 지역이 아닙니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폭이 매우 큰 곳입니다. 따라서 진보의 잣대만으로, 보수의 눈금만으로 충청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저울질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고 섣부른 행동입니다. 저는 주민들의 삶의 질이 모든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견고히 정착돼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제도권 정치가 충청인들에게 신뢰감과 효능감을 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충청권에서 직면한 리더십의 공백 상태를 조기에 효과적으로 극복하려면 두 가지 열쇳말을 염두에 둬야만 합니다. 첫째는 ‘실천’이고, 둘째는 ‘현장’입니다.
공 : 축약하면 실사구시의 정신이네요?
안 : 예, 그렇습니다. 지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숙제들을 현장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과정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새 인물이 등장해 민주당이 충청권에서 목말라하는 리더십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줄 수가 있습니다.
공 : 2018년 6월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무려 40년 넘게 충청도를 대표하는 간판정치인으로 활동했었습니다. ‘JP’라는 애칭으로도 불린 김 전 총리는 특유의 알쏭달쏭한 화법을 노련하게 구사하며 일세를 풍미했습니다. 지금은 직설의 시대입니다. “기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JP 방식의 둥글둥글한 처세술과 중립기어의 스탠스로는 국민이 호응을 얻기 어렵습니다. 허구한 날 간만 본다고 비판받으며 정치적 위상과 존재감이 나날이 퇴락해온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충청도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서 젊은 청년세대는 나이든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기 의사를 분명하고 단호하고 표현하지 않나요? 충청도 사람의 이미지가 의뭉스럽다는 건데, 제가 만나본 충청도 태생 청년들은 말과 행동이 모두 딱 부러진 경우가 많아서요.
안 : 통계는 그 반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교차로나 횡단보도 앞에 정차해 있다가 신호등 색깔이 파란불로 바뀌면 다시 차량을 출발시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1.2초라고 합니다. 충남의 평균치는 제 기억으로는 0.7초였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빠릅니다. 말이 느리다고 해서 성격마저 아울러 느린 건 아닙니다.
충청도 사람을 “의뭉스럽다”고 표현하는 풍습은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삼천궁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 여부를 명징하게 판별할 방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이 집요하게 기승을 부려온 한국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의자왕의 3천 궁녀’를 정설로 받아들이며 백제의 역사를 깔보고 내리깎아왔습니다. 충청도 사람은 굼뜨고 느리다고, 음흉하고 의뭉스럽다고 여겨온 세태도 그와 같은 잘못된 끼워 맞추기(Framing)의 연장선 위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표현에 신중한 것과 의지가 박약한 건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충청인은 대체로 표현에 신중한 편입니다. 하지만 가슴속의 뜻과 의지는 굳세고 한결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충청도 사람이 마침내 행동에 나서기 시작하면 바위처럼 강력한 결단력을 발휘하고, 전광석화 같은 신속한 실천력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표현이 아니라 고도의 심오한 표현력에선 충청인들이 발군의 내공을 과시해왔습니다. 일례로 한국 예술가의 대표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의 역대 회원들 가운데 충청도 출신 문화예술인의 비율이 유달리 높다고 합니다.
대선 전에는 뜨겁게 구애하더니, 대선 후에는 냉랭하게 무심해져
공 :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한창 벌이던 시기에는 충청도와의 인연을 빈번히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는 충청도 얘기가 윤 대통령 입에서 쑥 들어갔어요.
안 : 정말 쑥 들어갔습니다.
공 : 윤 대통령은 부친의 고향이 충남 공주인 사실을 내세워 충청도에 연고가 있음을 뒤풀이해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입에서 충청도 얘기가 쑥 들어가는 것과 발맞춰 집권여당인 국민의당은 완벽하게 ‘도로영남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당이 도로영남당으로 회귀한 데 대한 지역민들의 여론은 어떤가요? 작년 6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충청도 유권자들은 충청권의 광역자치단체장 네 개 모두를 국민의힘에 몰아줬거든요. 공포의 싹쓸이였습니다.
안 : (잠깐 한숨을 내쉬고) 일단은 다들 쉬쉬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꾹 참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공 : 당한 피해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범죄가 사기거든요.
안 : 도민들께서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고 하여 저까지 덩달아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권이 충청도 민심을 우롱하고 기만한 사건을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성토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집안의 선영이 공주와 논산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충청도에서 유일한 가시적 변화가 있다면 공공기관 통폐합이 한참 거론되고 있음에도 공주와 논산 사이에 한국유교문화진흥원(약칭 ‘유교문화원’)이 들어선 일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원이 지어진 땅의 상당 부분을 파평 윤씨 종친회에서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파평 윤씨 문중이 기부한 부지와 국가가 신규로 매입한 토지를 합쳐서 유교문화원을 성대하게 완공했습니다. 충남은 윤 대통령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전부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가 꺼림칙합니다. 당장 3월 8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출범한 여당 지도부의 구성원들 면면을 살펴봐도 충청인들의 이해와 요구를 중앙정치권에서 힘있게 대변하고 뚝심 있게 관철시킬 만한 정치인이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공 : 당대표, 원내대표, 수석 최고위원 전부가 대구경북 태생입니다. 그런데 충청도 출신이 없기로는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과 피차일반이 아닌가요?
안 : 그와 관련해서는 제가 입이 열 개라도 도민들께 감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마냥 죄송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충청에 대한 관심을 거둔 게 저는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납니다. 충청인들이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얼마나 압도적으로 밀어줬습니까? 충청도 사람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공 :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지율이 심각하게 하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선후보 윤석열에게 최악의 위기이자 최대 시련이었습니다. 이때 윤 대통령이 부친의 고향이라며 공주를 방문해 유세전을 펼쳤습니다. 공주시청 누리집에서 검색해보니 공주 인구가 2023년 2월 현재 기준으로 102,477명입니다. 대전 같은 대도시가 아닙니다. 당시 수많은 공주시민들이 윤석열을 보겠다며 유세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주민들 거의 모두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주와 목포에 들를 때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산과 마산을 방문할 때의 열기 못지않았습니다. ‘충청 대통령’ 탄생을 향한 응원과 기대감이 오롯이 반영된 반응이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대통령 선거 국면이 마무리된 다음에는 윤 대통령이 공주에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안 : 대선 끝나고서는 윤 대통령이 공주에 오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공 : 선거 끝나자마자 매몰차고 야박하게 발길 끊으신 셈이네요
안 : 작가님께서 방금 정곡을 찔러주셨습니다. 대통령 가문에서 기증한 땅 위에 건립된 유교문화원 개원식에 대통령께서 참석하실 거라는 설왕설래가 지역에서 잠시 돌기는 했는데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공 : 대타로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라도 충남의 며느리를 자임하며 개원 행사에 출동하셨다면 모양새가 조금은 살았을 텐데요.
안 : 이명박 정권 당시 현직 대통령 고향인 포항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지역에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이 집중됐었습니다. 포항시 한 곳에만 지원된 정부 출연금 규모가 충남 전체에 지원된 액수를 웃돌 지경이었습니다. 특정 지역에 과도한 혜택을 쏟아붓는 식의 밀어주기 행정과 몰아주기 정책은 당연히 지양해야만 할 시대착오적 폐습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뿌리가 있다고 대선 무렵 수시로 언급했던 충남에 지금처럼 무심한 자세를 취하는 광경을 마주하면 여야를 떠나 충청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가 않습니다. (⑤회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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