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혹독한 연습이 확실한 승리를 낳는다
선동렬이 무등산 폭격기로 호칭되며 국보급 투수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그와 가장 많은 승부를 겨뤘던 타자는 누구였을까? 당연히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아니면, 오리궁둥이 김성한이나 해결사 한대화일 수도 있다. 왜냐? 단체 구기종목 선수들은 다른 팀과의 경기에 출전하기 이전에 같은 팀 선수들과 치열한 연습경기를 끊임없이 치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시기의 해태 타이거즈는 선동렬을 위시한 이강철ㆍ조계현 등의 주축 투수들이 청군으로, 김봉연을 필두로 이순철을 거쳐 홍현우에 이르는 주전 타자들을 백군으로 각각 나뉘어 청백전 형식으로 연습 경기를 수없이 가졌다. 비록 자체 훈련일지언정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당대 최강의 거포들을 상대로 공을 던져야 했고, 타자들은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들과 타석에서 맞서야만 했다.
소속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아홉 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명장 김응룡 감독이 제자들에게 일일이 잔소리를 해가며 굳이 노력을 강요하지 않아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잠시만 연습을 게을리 하면 구단 내의 경쟁자들에게 언제 주전 자리를 뺏길지 몰랐다. 한창 잘나갈 무렵의 해태 타이거즈는 연습을 그야말로 실전처럼 해야만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서운 팀이었다.
고된 연습이 실전에 강한 선수를 길러내기는 격투기 같은 개인종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래리 홈즈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헤비급 권투 선수였다. 알리가 현역에서 은퇴하고 타이슨이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 이전까지의 기간은 홈스의 활약과 분투가 없었다면 헤비급 복싱 역사에서 유럽사의 중세 암흑기처럼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홈스는 챔피언으로 등극하기 전에는 복싱 황제 무하마드 알리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하며 돈을 벌었다. 알리는 젊은 홈스와의 실전 같은 연습을 충실히 견뎌낸 덕분에 늦은 나이까지 선수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알리와 홈스의 관계는 후자에게도 물론 이익이 되었다. 1980년, 홈스는 거함 알리를 연습시합이 아닌 정식 경기에서 마침내 쓰러뜨리며 자신의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전 세계 복싱팬들에게 선포했다.
김기현은 윤석열의 인간 샌드백
정부와 여당은 공동운명체일까, 독립채산제일까? 실전 단계에서는 공동운명체일 것이다. 허나 실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독립채산제이다. 선동렬이 팀 내 연습시합에서 대충 설렁설렁 공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천하의 선동렬이라도 긴장된 경기감각을 상실한 탓에 실전에서는 제구력에 심각한 난조를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알리가 홈즈가 아니라 생전 권투글러브 한번 끼어본 경험이 없는 동네 건달을 연습상대로 골랐다고 상상해보시라. 나중에 실제 방어전에 나선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기는커녕 굼벵이 같이 느릿느릿 굼뜨게 움직이다가 도전자로부터 무수히 날아오는 펀치를 피하지 못해 경기 개시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캔버스 위에 볼썽사납게 벌러덩 나자빠졌으리라.
만약 선동열이 연습경기에 하는 둥 마는 둥 무성의하게 임했을 경우 실전에서 부렸을 추태를, 만에 하나 알리가 실전 같은 연습을 얼굴에 흠집 난다며 외면했을 적에 진짜 시합에서 드러냈을 꼴불견을 지금 이 순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문제는 해당 인물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머물렀던 과거나,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현재나 정권 수뇌부의 의중과 목표가 제일 먼저 전해지는 곳은 여당이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도모하려는 일이 야당의 협조를 과연 받을 수 있는 일인지를,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민심의 지지를 얼마만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인지를 집권당 구성원들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반응을 타진ㆍ확인함으로써 어느 정도 미리 예측ㆍ판단해볼 수 있다. 다시금 스포츠를 예로 들자면, 선동열이 연습경기에서 던진 변화구가 이종범마저 헛방망이질을 연신 해대는 공이면 실전에서도 구위가 충분히 통하는 공이었던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의 명실상부한 직영체제로 평가되는 김기현 대표 체제가 국민의힘에 들어서면서 윤석열 정권은 집권여당이 제공해주는 이와 같은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전검증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그로 말미암아 윤석열 대통령은 주당 69시간 노동제부터 일제 강점기의 강제징용 배상에 이르기까지 던졌다 하면 폭투요, 찼다 하면 이른바 ‘똥볼’이 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부딪치기 일쑤다. 그러므로 야당과의 충돌에 앞서서 대통령은 여당을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실전을 방불하게 하는 혹독한 맹훈련을 실시해야만 한다.
김기현 대표 체제 아래에서 친윤들로 도배된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는 만만하기 짝이 없는 걸어 다니는 샌드백일 따름이다. 반격할 능력이 원초적으로 결여된 샌드백을 겨냥해 펀치를 퍼부으면 심지어 필자 같은 지독한 약골조차 마치 타이슨이나 된 듯이 우쭐해지기 쉽다. 그런데 내가 날리는 펀치를 샌드백처럼 가만히 서서 고스란히 허용하는 마음씨 좋은 상대방을 실전에서 만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노릇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경 조직을 총동원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허나 이재명이 소위 사법리스크로 인해 느끼는 타격감은 하루하루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유는 빤하다. 이재명의 맷집은 그대로인데, 윤석열의 펀치력이 나날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준석이라는 주먹맛 매서운 날랜 스파링 파트너를 대적하기 버겁다며 해고하고서 때리면 때리는 대로 온순하게 맞아주는 김기현을 새로운 연습상대로 데려온 탓이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권이 강해지려면 대통령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과감히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강력한 여당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윤석열은 ‘당정일체’를 지향하겠다며 여당을 대통령이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면, 저건 보통 말도 아니고 얼룩말이라고 한 술 더 떠 대답할 간신배와 아첨꾼들로 가득한 현대 한국정치사 최악의 약체 여당으로 전락시켰다.
여당이 집권세력 전체의 면역력을 고루 키워줄 백신 구실을 못하니 악재만 터졌다 하면 정권이 중병에 걸려 골골댄다. 집권당이 대통령실의 헛발질에 제때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못하는 까닭에 윤석열 대통령이 23분 동안 국무회의에서 신들린 듯한 독백을 하며 스스로를 우리에게는 고 추송웅 배우가 열연한 모노드라마, 즉 일인극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인간 호소인’으로 등장하는 원숭이 꼴이 되고 만다.
윤 대통령은 본인은 더는 선거에 출마할 필요가 없다며 여당을 길거리에 내버려진 허접한 빈 깡통 정도로 취급하는 기색이다. 한데 윤석열의 치명적으로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여당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 걸로 책임이 끝난다. 그러나 여당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도록 만든 대통령에게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그때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거에 패배한 여당 정치인들은 집에 가면 되지만, 선거에 진 대통령은 퇴임 후에 편안히 자택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설령 집에 가도 머잖아 집 밖으로 강제로 불려 나와야 한다. 자기 혼자 잠시 편하자고 여당을 형편없이 망가뜨린 대통령이 영원히 감수해야만 할 대가이자 업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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