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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세대 퇴진은 목청이 아닌 실력으로 이뤄내야 - 권지웅③. “2030년이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아예 사라질 수 있어”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3-03-17 20: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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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는 한국정치의 오래된 숙원사항이다. 그리고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여망을 상대적으로 충실히 담아내는 정당이 대선과 총선 등 각급 선거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해왔다.

그러나 세대교체의 목소리는 현재는 거대 양당 전부에서 잠잠해진 상태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 축출을 계기로 나이 들고 노회한 구태 기득권 정치인들이 다시금 활개를 치고 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목전의 생존에 급급한 나머지 세대교체는 사치스러운 일로 치부되고 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으로부터 불 꺼진 세대교체의 열기를 다시 점화시킬 방안이 뭔지를 알아봤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민주당 부활의 출발점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성공하는 일이 민주당이 새롭게 거듭나는 성찰과 변화의 시발점이 될 거라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사진전문기자)

공희준(이하 공) : 시선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돌려보겠습니다. 현재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거취 여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만 무성할 뿐이지. 미래지향적인 진취적 논의가 거의 실종된 상태입니다. 친명과 비명을 막론하고 청년들의 독자적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젊은 정치인들과 당원들이 존재할 텐데 다들 어째서 지금 같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복지부동만 고집하고 있나요?

 

권지웅(이하 권) : 우리 당을 변화시키려는 청년들의 개혁적 활동과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당장 제 경우만 봐도 작년 8월에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컷오프를 당했습니다. 저 홀로 고배를 마신 게 아니었습니다. 이동학 전 청년 최고위원 역시 쓴잔을 들이켰습니다.

 

공 : 국민의힘의 ‘천하용인’의 도전과 실패를 더불어민주당에서 반년 전에 예고편 격으로 방영한 셈이네요.

 

권 : 현역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영향력 발휘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예비경선의 규칙 자체부터가 젊은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선출직 기반의 중앙위원들이 주로 투표권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희의 실력이 미흡하고 준비가 부족했음이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요.

 

공 : 정치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면 모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권 : 지금도 당내의 많은 청년들의 더불어민당의 진로와 미래에 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활발하게 발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정치의 핵심이 젊은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일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성 정치권이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회적 현안들을 풀어갈 해법들을 기존의 지배적 시각과는 차별화된 젊고 참신한 관점에서 제시하는 데 청년정치 본연의 사명과 역할이 자리해 있다고 믿습니다. 친명과 비명 식으로 나누는 구태의연한 구분법으로는 신선한 관점과 창의적 접근법이 생겨나기 어렵습니다. 우리 당의 위기는 민주당이 과연 어떤 정당인지를 국민들이 쉽사리 파악할 수가 없는 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공 :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를 국민들이 알게 하려면 민주당 사람들이 어떠한 과제들을 수행해야 합니까?

 

권 : 문재인 정부 당시 우리가 마땅히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해당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하는데, 하지 못한 일들에 관한 성찰과 숙고가 필요합니다. 대표적 사례가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한 부당하고 구조적인 차별을 제거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안입니다. 차별금지법 도입의 필요성은 참여정부 때부터 이미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원내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을 끝내 제정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비대위원으로 있으면서 이 법을 당론으로 관철해내지 못한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몹시 안타깝습니다.

 

공 : 박지현-윤호중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된 비상대책위원회 말씀이시죠?

 

권 : 예, 그렇습니다. 비대위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저는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의 시작을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해야만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여성 유권자들이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해주셨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운동의 주안점을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하는 ‘혐오의 정치’에 두었습니다.

 

공 : 그럼에도 입법 작업은 무산됐습니다.

 

권 : 예, 결과적으로 진전이 없었습니다. 응당 해야만 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정치의 무능과 부작위를 바꿔 나가는 데 청년정치의 본령이 있는데도요. 또 다른 사례로는 고 변희수 하사와 관계된 일이 있습니다. 변희수 하나는 국방부에서 강제전역 처분을 받았습니다. 사후에 순직처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모두가 전임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결정됐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당의 청년정치 세력은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주 69시간 근로제에 대해서도, 전세 사기에 대해서도 뚜렷하고 구체적인 입장 개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청년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요.


청년들에게 주어진 정치적 시간, 결코 길지 않다


권지웅 전 비대위원은 여야가 똑같이 노쇠해지는 현상이 더불어민주당에 이로울 게 없다고 예측했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민주당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한주 기자)

공 : 위원님께서는 의제 설정을 중심에 두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실질적 위험은 정책적 이슈가 아니라 정무적 판단을 둘러싸고 발생합니다. 저는 정무적 판단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국민의힘 산하의 청년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청년들보다 공천 과정에서의 불이익 같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권 : 솔직히 저도 이 부분과 연관해 고민이 매우 큽니다. 국민의힘은 청년들이 행동에 나서기가 오히려 수월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워낙 비상식적 행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우기는 촌극도 빚어졌고, MBC 문화방송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는 부끄러운 광경도 연출됐습니다. 누가 봐도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고, 오판과 실책이었습니다. 민주당은 다행히 그렇게까지 극악한 상황은 펼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장이 나뉘고, 노선이 갈리는 수준에 아직 머물고 있습니다.

 

당내 반대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싫어도 대통령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는 힘듭니다. 민주당 사정도 이와 그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입니다. 당수로서의 임기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7개월이 경과했을 따름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거취에 관해 언급하기가 곤란한 까닭입니다.

 

공 : 친명도, 비명도 어찌 보면 진퇴양난의 처지이네요. 다들 운신의 폭이 좁습니다.

 

권 : 하지만 저는 중요한 당직을 맡은 인물이 이재명 대표 개인의 문제들에 앞장서서 대응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의 공식기구가 대표의 바람막이가 되는 일도 부적절하고요. 왜냐면 국민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 : 국민의힘이 윤핵관 때문에 안에서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86세대 때문에 서서히 곪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존에 비록 미약하게나마 나오던 ‘86세대 용퇴론’은 이제는 귀를 씻고 들어도 들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민주당은 현직 당대표와 직전 대통령도 당원과 지지자들로부터 비판과 성토를 받는 나름 민주적 정당입니다. 반대로, 86세대는 그 어떤 쓴소리도 듣지 않는 성역과 금기가 되었습니다. 86 세대란 성역과 금기를 깨려면 당 내부적으로 어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권 : (조금은 냉소적 어조로) 그분들이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날 분들인가요? 

 

공 : 그렇다고 물러가라는 말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권 : 그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제일 확실한 방법은 그분들을 대신할 강력한 대안세력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상당수는 20년 안팎으로 장기간에 걸쳐 국회의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 하나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시대정신의 요구이자 반영입니다. 시대정신을 충실히 구현할 역량이 없음이 밝혀진 인사들은 이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입자들의 불안한 주거환경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서도 86세대로 불리는 정치인들은 효과적이고 가시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해왔습니다. 이 또한 그분들이 오랫동안 독점해온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음을 의미합니다.

 

공 : 기득권화된 기성세대가 성취하지 못한 걸 청년세대가 완수해내겠다는 포부시네요?

 

권 : 예, 그렇죠. 저희는 물리적 나이의 젊음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으로 그분들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공 : 당을 이끄는 정치인도 노쇠하고, 당을 지지하는 지지층도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간다는 측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거대 양당 전부 거대한 양로원이 될 기세입니다. 이런 황당한 사태를 막으려면 청년들이 좀 더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세대교체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요? 멀뚱히 앉아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기만 바라는 천수답 농사처럼 때가 오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 말고요.

 

권 : 당연히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죠. 우리 스스로 실력 있고 비전 있는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공 : 어느 부분이 염려스럽나요?

 

권 : 청년세대에게 주어진 시간이 통념과는 달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면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퍼센트에 다다를 전망입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달에 0.1퍼센트씩 증가할 정도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2030년 이전에 새롭고 역동적인 정치구도를 창출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에게 정치적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만 봐도 고령화가 정치적 역동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잠식하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정당이 집권해 나라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혁신시킬 수 있는 시기가 아주 잠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일을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단지 청년들의 노력이 모자란 탓이 아닙니다. 신진세력이 실력을 쌓기도 전에 사회가 그냥 늙어버린 데 그 주된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2030년까지 정치의 역동적 변화를 일궈내지 못한다면 한국 또한 일본처럼 정권교체를 비롯한 모든 변화의 희망이 봉쇄된 사회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공 : 보수와 진보가 똑같이 늙어가면 민주당 쪽이 훨씬 더 불리할 거라는 말씀인가요.

 

권 : 저는 그렇게 예상합니다. (④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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