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남편은 나의 힘
조은희(이하 조) : 제 남편이 법원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아이 교육에 대한 욕심이 컸어요. 그래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저희 부부가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비용이 더 들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과감하게 법복을 벗었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남편께서 대형 법무법인에 변호사로 취업하신 건가요?
조 :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잘 알려진 이동통신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남편이 법률을 전공한 사람치고는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한 때문인지 그곳에서 최종적으로 최고경영자(CEO)로까지 승진했습니다.
공 : 두 분이 전문직에 맞벌이로 일하셨으니 돈을 많이 버시지 않았나요?
조 : 남편이 집에다 가져다주는 월급의 액수를 감안하면 저희가 돈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선거에 여러 차례 나왔던 탓이 아무래도 큰 것 같아요. 제가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선거전을 치를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남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 :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전부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진 덕분에 장기간 정치를 해올 수 있었습니다.
조 : 제가 서울로 상경한 이후에 서울의 동서남북 모두에서 살아봤어요. 도봉에서 서초까지 수없이 옮겨 다녔습니다.
공 : 저도 좀 광고를 해보겠습니다. (웃음) 제가 우석훈 박사님, 박용진 의원, 김세연 전 의원 이렇게 세 사람이 참여한 대담집에 작가 역할로 끼어들면서 박 의원님과 개인적 대화를 약간 나눠봤는데 구청장님 남편분을 잘 안다고 말하더라고요.
조 : 제 남편과 박용진 의원님이 고교 선후배 관계입니다. 저희 남편이 두 사람이 모두 졸업한 고등학교의 동창회장을 했었기 때문에 서로 어느 정도 안면이 있을 거예요. 이왕 말 나온 김에 남편 자랑을 조금 더 해볼 테니 이해해주세요. (웃음) 윤형주 선생님께서 저희 남편을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극찬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는 참 살갑게 와 닿은 이유가 제가 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저의 이상형을 발견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던 데 있습니다.
공 : 보통 경우에는, 특히나 구청장님 또래의 세대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이상형의 여성을 만난 기분이었다고 술회하지, 그 반대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연애 문제에 관해서라면 구청장님이 일종의 신여성이시네요.
조 : 제 이상형인 남자를 만나는 순간 저는 이 사람과 꼭 결혼해야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제가 남편에게 엄청 공들 들였습니다.
공 : 여자 쪽에서 과감하게 대시한 셈이네요.
조 : 예, 그렇죠. 제가 남편과 결혼하려고 애쓴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더 새록새록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남편을 향해 미안한 감정을 많이 느껴요. 왜냐면 남편이 제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다면 지금 같은 고생을 하면서 이제껏 살아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 점이 남편에게 항상 미안합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후로 남편이 마치 제 후원회장처럼 저를 뒷바라지해왔거든요.
일머리 있는 사람 앞에 해묵은 난제는 없다
공 : 구청장님께서 서초구청장으로서 상당한 업적을 꾸준히 이뤄왔다고 여러 언론매체들이에서 보도했는데, 서초구민이 아닌 저 같은 사람들은 조은희가 일궈놓은 성과물이 무언지를 실제로 체감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구청장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서초구청장으로 계시면서 잘한 일이 있다면 이참에 알려주세요. 그런데 좋은 구청장이 꼭 좋은 시장이 되리란 보장은 없더라고요. 단적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좋은 시민운동가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이 좋은 시장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여지저기에서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습니다. 좋은 구청장이 좋은 시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시는 근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 : 조은희는 ‘준비된 시장’입니다. ‘준비된 일꾼’입니다. 제가 이 점에 관해서는 아주 자신 있게 단언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방행정가로 변신하기 전에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국정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서울시청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면서는 서울시 행정의 총체적 현황과 구조적 문제점들을 자세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험과 이해에 기초해 제가 어디를 왔느냐? 민생현장으로 왔습니다.
공 :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성만 호시탐탐 노리지는 않았다는 말씀이네요?
조 : 예. 저는 국민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청와대와 서울시청과 서초구청을 순서대로 거치며 축적한 경험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뚜렷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왔습니다. 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실용적이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기자생활을 경험한 일도 제가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을 살짝 각색하자면 기자는 서생의 문제의식이, 행정가는 상인의 현실감각이 각각 요구되는 위치더라고요.
조 : 기자에게는 사태의 핵심을 단번에 꿰뚫는 안목과 감각이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면 한 줄의 헤드라인 안에 문제의 본질을 녹여내야만 하니까요. 기자들이 의외로 추진력이 강합니다. 기자에게는 마감이라는 게 존재하거든요.
공 : 결단력이라는 게 근본을 따지자면 마침표를 찍는 역량이기는 합니다.
조 : 그러나 핵심만 단숨에 파악한다고, 단호하게 마침표만 잘 찍는다고 유능하고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성공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저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였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영향 덕분에 제가 현재는 정당한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인들을 만나는 일을 무서워하지 않는 열린 행정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로서 사람을 대해본 경험, 청와대에서 국정을 맡아본 경험, 서울시청에서 시정을 관리해본 경험이 서로 어우러져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제가 서초구청장으로 일하는 시간 동안 그러한 다채로운 경험들이 한층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시청에 있으면서 여성가족정책관과 첫 여성 정부부시장을 차례로 지냈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만약 서울시장이 된다면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겠다는 비전과 정책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서초구청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도 서울시청에서 구상했던 방안들과 아이디어들을 일선 행정현장에서 제대로 실천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서초구청장에 취임하자마자 서초구의 해묵은 현안이었던 일들을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착수했습니다.
공 : 구청장님께서 서초구청장에 처음으로 취임하실 때 어떤 문제들이 서초구의 미결과제로 오랫동안 자리매김을 해왔나요?
조 : 첫 번째는 서리풀 터널을 개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양재동에 공공도서관을 신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잠원동에다가 고등학교를 유치하는 일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기존의 노후한 주민센터들을 대신할 새로운 주민센터 건물들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공 : 제가 책장사도 간간이 하는 사람인지라 도서관 신축 문제가 어떻게 귀결됐는지가 일착으로 궁금하네요. 그래서 결국 짓기는 지으셨나요?
조 :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며) 「양재도서관」이라는 명칭으로 아주 끝내주게 완공했습니다.
공 : 동사무소 신축 문제도 완결하셨나요?
조 : 대부분의 예전 구청장님들께서는 한두 군데만 짓고 임기를 마치시는데, 저는 보다 적극적이고 대대적으로 주민센터 신축에 나섰습니다. 서초구민들의 또 다른 간절한 숙원사항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서초구 곳곳에 설치해 달라는 바람이었습니다. 전임 구청장님들께서는 한 해에 한 개 가량 만드셨는데, 저는 1년에 10개 정도의 국공립 어린이집이 들어서도록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저는 관내의 묵은 현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나갔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지 의구심을 품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일머리가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직업 정치인들은 일머리가 아닌 잔머리가 압도적이고 집중적으로 주로 발달해 있다. 친문이나 친박 같은 목소리 큰 “직업이 강경파인 사람들”일수록 일머리는 형편없으면서 되레 잔머리만 유달리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부류들이기 쉽다.
조 : 일머리가 있으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일머리가! 서리풀 터널은 제가 구청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무려 30년 가까이 사업에 확실하고 가시적인 진척이 없었습니다.
공 : 왜 사업이 하염없이 지체됐나요?
조 : 국방부는 국군 정보사령부 부지를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땅으로 비싸게 매각하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에 서초구민들과 서울시청은 해당 부지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택지 용도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양측이 접점 없이 평행선만 계속 달렸습니다. 정보사 부지를 어떠한 방향으로 처리할지에 대한 확고한 합의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좀처럼 도출되지를 않으니 그 중요한 터널 공사가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서리풀 터널 공사와 정보사 부지 매각 두 가지 사업을 일괄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서 문제의 해법을 착안했습니다. 제가 채택한 대안은 종전에는 패키지로 다뤄지던 이 두 사안을 별도로 분리시키는 전략이었습니다. 저는 그러자면 정보사를 먼저 설득해야만 한다고 판단하고서 정보사 사령관님을 용감하게 찾아갔습니다. 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당시의 정보사령관님께서는 서초구청장이 부대의 총책임자를 직접 찾아온 건 아마 최초일 거라며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④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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