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미합중국의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이기고도 졌다. ‘공화당 돌풍(Red Wave)’이 거세게 휘몰아칠 거라는 대다수 미국 현지 언론매체들의 판세 예측이 무색하게 여당인 민주당이 상원을 사수하고, 하원 선거에서도 적은 숫자만의 의석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당이 상하원 선거는 물론, 주지사 선거에서도 참패하는 건 미국 중간선거의 오래된 전통적 문법이었다. 중간선거에서의 압승을 발판으로 삼아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뜻밖의 암초에 부딪친 셈이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할 기회가 깨끗이 사라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운 좋게 탈출했다. 표를 까봐야 아는 게 선거이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경제상태가 엉망일 시기에는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고전해야 정상이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 성향의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 고용현황과 물가지수 같은 중요한 민생현안들에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에서이다.
그런데 빌 클린턴 정권의 창출을 이끌어낸 마법의 주문으로 평가돼온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프레임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야당의 역량이 워낙 형편없을 때이다. 한국의 2020년 총선이 이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서민경제의 상황이 그야말로 파국적 단계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국민의힘으로 개명한 미래통합당은 당시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무려 180석의 국회의석을 무기력하게 헌납하는 치욕적 대패를 당했다. 태극기부대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황교안 대표 체제의 목불인견의 추태에 중도층 유권자들이 진저리를 쳐댄 탓이었다. 극우 틀튜브들에 슈퍼챗 쏟아지는 소리는 중도층 표 떨어지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21대 총선에서 보수정당으로부터 그렇게 이탈해간 중도층 유권자들의 대열에는 2030 청년세대들도 수없이 포함돼 있었음은 당연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만으로 2년이 경과하도록 식상하고 구태의연한 부정선거 타령만 고장 난 레코드판인 양 지루하게 읊어대고 있다.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미국판 개딸들은 근거 없는 음모론에 선동ㆍ현혹되어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기고, 휜 것을 곧다고 떼를 쓰는 광기의 신앙간증을 멈출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링컨을 배출하고, 아이젠하워를 영입했으며, 레이건을 탄생시킨 위대한 정당 공화당은 이제는 정상적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표를 찍어줄 수가 없는 사이비종교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 중간선거 개표결과가 발표되기 무섭게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미국 공화당은 한국 민주당의 미래다”라고 신나게 외쳐대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사들의 진단과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이 트럼프의 공화당의 길을 부지런히 가는 중인 것은 맞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보수논객들이 윤석열의 국민의힘 역시 미국 공화당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데 있다.
중도층의 지지를 상실하기기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견주어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트럼프만 두 명. 작금의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정확한 현주소이다.
좌동훈, 우상민.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 출범에 맞춰 행정부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받은 전반적 세평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확실히 통제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조직을 단단히 틀어쥐는 형태로 국정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내각 인선이었다.
한동훈과 이상민은 겉으로 떠맡은 역할은 비슷해 보일지언정 부여받은 임무의 내용적 성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상민은 경호실장이다. 한동훈은 후계자이다. 이상민은 서울 모처에서 발생한 대규모 비극적 참사에 책임을 지고서 그 스스로 뱉어낸 개념 없는 말처럼 폼 나게 장관직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처지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경호실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왕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의 은부와 복지겸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은부는 태봉의 황제 궁예를 보위하는, 복지겸은 고려의 창업주 왕건을 호위하는 내군 즉 친위대의 총수직을 각각 담당했다.
내군이 국정의 전면에 빈번히 등장할수록 권력과 민심과의 괴리는 더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궁예에서 왕건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민심 수습의 첫 번째 조치로 내군의 존재감이 약화된 대목을 주목하기 바란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이름이 국민들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현상은 대통령에 관한 여론조사 지지율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면 작용했지, 플러스 요소로 기여하지는 않고 있다.
바로 여기가 한동훈이 곤혹스러운 딜레마에 빠진 지점이다.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로 대통령의 후계자들은 지지층의 확장성을 중시하는 이미지 연출 전략에 주력했다. 이를테면 노태우는 전두환과 비교하면 왼쪽에 자리해 있었고, 노무현은 호남 기반의 김대중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사와 예산에서 영남 우선 행보를 고집했다.
그러므로 한동훈은 보수우경화를 거듭하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과감한 거리두기를 꾀해야 바람직하건만 그는 이상민 뺨치게 친위대장 노릇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 내군 장군만 두 명. 작금의 국민의힘의 정확한 현주소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권의 계속되는 우클릭이 낳은 최대의 정치적 피해자는 한동훈 법무장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초여름 무렵 한동훈이 내후년 봄에 치러질 예정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구로구에서 출마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명분도 있거니와 승산도 나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허나 지금의 정당 지지도를 감안하면 천하의 한동훈조차 강남 3구가 아닌 곳에서는 당선을 장담하기가 난감한 지경이다. 이는 윤석열 정권의 지지기반이 엄청나게 협소해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 지지층의 축소로 말미암아 한동훈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군림하고 있는 송파을 선거구에서 출사표를 던지리라는 소문마저 최근에는 무성하다.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극소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한동훈이 텃밭인 강남권 출마를 저울질한다는 건 윤석열 정권이 지지율 반등 노력을 사실상 완전히 포기했다는 의미로 해석돼야 마땅하다.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진영논리가 횡행하는 망국적 ‘집토끼 대 집토끼’ 싸움에 나서겠다는 노골적 신호인 것이다. 한국이 여야를 통틀어 트럼프만 두 명 보유한 미래가 암울한 희망 없는 나라임을 정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한동훈은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이미 완료했다. 그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뒤엉켜 펼치는 거칠고 격렬한 설전은 국무위원과 선량들 간의 질의와 문답이라고 더는 일컫기 어렵다. 경쟁후보들끼리의 텔레비전 토론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분위기이다.
나는 한동훈이 이왕 출마할 요량이라면 구로구나 광진구처럼 고된 선거전을 전개해야 하는 동네에 공천을 신청해야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 후계자가 총선에서 생환할 가능성을 올려주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 방송들이 떠들어대는 함량미달의 시답지 않은 콘텐츠에 의지해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을 조율ㆍ설정해온 그간의 악습을 조금이나마 반성하고 고치려들 터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잠실벌 등판, 고작 임기 4년짜리 국회의원 배지를 한 번 달고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본인 모두를 코미디로 희화시키는 희대의 어리석은 자충수가 되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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