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쿼바디스 김포공항
“공항고등학교는 이름을 바꿔야 하나?”
인천 계양을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전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김포국제공항을 이전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느닷없이 발표하자 필자는 김포공항 근처에 자리한 서울특별시 관내 어느 고등학교의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이재명 전 지사의 말처럼 김포공항이 실제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면 해당 학교는 교명을 바꿔야 할지, 아니면 현행대로 지속시켜야만 할지 난감한 고민에 빠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이야기에 뒤이어 이재명과 관련된 또 하나의 허망한 촌극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하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처럼, “김포공항을 이전하겠다고 하니 진짜로 이전하는 줄 알더라” 식으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둘러 파문의 수습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제주도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 각각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자들이 뜬금없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김포공항이 만에 하나 폐쇄되면 가장 크고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을 곳은 제주도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주 지역 출마자들이 차마 자기 당의 직전 공식 대선후보를 드러내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지라, 새로운 집권여당의 당대표를 뜬금없이 공격하는 계면쩍고 쑥스러운 블랙코미디를 연출하고 만 것이다.
선거는 진영 싸움인 동시에 진형 싸움이기도 하다. 여당과 야당으로,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 경쟁하기에 진영 싸움이다. 같은 정당과 진영에 속한 후보자들이 사전에 충분히 조율된 선거운동 전략과 정책에 따라서 통일되고 일사불란한 기조와 방향성을 유지해야만 승리할 가능성이 보장되므로 진형 싸움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내로남불의 진영논리로 악명을 떨쳐왔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내내 국민들에게 태연히 보여준 앞 다르고 뒤 다른 표리부동한 모습 탓에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 정권을 내주는 데 이를 정도로 지독한 진영논리를 고집해온 더불어민주당이 A 후보의 공약 때문에 B 후보가 직격탄을 맞아 낙선할 수도 있는 각자도생의 지리멸렬한 양상을 유권자들 면전에서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오가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막상 투표함을 개함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성적표가 그럭저럭 괜찮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는 실력으로 이겼다고 해석해주기 힘들다. 순전히 요행수로 승리한 데 지나지 않는다. 물론 운도 실력의 일종이기는 하겠으나, 국회의석 172석의 거대 야당이 허구한 날 운발과 요행에만 의지해 정치를 하는 상황은 더불어민주당의 불운을 뛰어넘어 국가적 차원의 재앙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실력을 키우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든, 국민들을 위해서든 올바르고 합리적인 노선이리라.
특정한 정당이 실력이 있고 없고를 판가름하는 단연 손쉽고 확실한 지표와 기준은 정당 지도부가 얼마나 능력 있게 효과적으로 국민들의 여망과 바람에 부응하느냐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0대 대선에서 민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는 세 사람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하겠다. 첫 번째 책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고, 두 번째 책임자는 이재명 전 지사이며, 세 번째 책임자는 서울시장 선거에 돌연 뛰어든 송영길 전 당대표이다.
이들 3인방 가운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양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므로 책임의 화살은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 활동하는 이재명과 송영길 두 현역 정치인에게 필연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송영길의 쓸데없는 권력의지
더불어민주당에는 미래지향적 경제성장 담론이 부재하다. 단지 나눠주고, 퍼주겠다는 달콤한 사탕발림이 경제비전의 거의 전부다. 더불어민주당이 나랏돈을 열심히 나눠주고, 예산을 부지런히 퍼준 일의 양대 수혜자는 철밥통 공무원들을 비롯한 안정된 공공부문 종사자들과, 조직화된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 노조원들이었다. 정책도 잘못 설계됐을 뿐더러, 그릇된 정책의 수혜자들마저 극도로 편중돼 있었다.
그 결과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가일층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 구조와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었다. 이재명의 대선 패배는 국민들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에는 인민대중의 삶과 국가경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냉정히 판단했음을 나타낸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만 실종된 게 아니다. 이 당은 지난 20년간 세대교체의 무풍지대로 오만하게 머물러 있다. 국민들, 특히 젊은 2030 청년세대가 간절히 염원하는 세대교체의 빗장을 열어젖힌 정당은 오히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도중 국정농단과 헌법유린 혐의로 탄핵을 당해도 단 한 명도 자발적으로 책임을 나눠지지 않은 까닭에 친박세력은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대선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부겸 전 국무총리만이 차례로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따름이다. 대다수 운동권 출신 86 세대 정치인들은 송영길의 예에서 공공연히 확인되듯 도리어 더 왕성한 권력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에게 ‘책임윤리’란 그저 정치학개론 교과서에 담긴 구두선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의 20대 대선은 누가 봐도 이재명과 송영길 투톱 체제가 정책으로부터 조직까지 모든 전반적 사항들을 주도적으로 좌지우지한 선거였다. 바늘과 실을 연상시키는 둘의 밀착관계는 이승만 시절의 자유당을 방불하게 만드는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의 치졸하고 부끄러운 사사오입 계산으로 절정을 이뤘다.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에서의 고전은 이재명과 송영길의 리더십이 명분에서나 실력에서나 뚜렷한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은 경제 분야에서 유권자들에게 더는 어떠한 효능감도 선사하지를 못하고 있으며, 송영길의 지루한 버티기는 더불어민주당에게 사활적일 지경으로 절실히 필요한 요소인 세대교체의 신속한 추진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
정당의 혁신은 통상적으로 리더십의 교체에서 첫발을 떼기 마련이다. 기존의 영수들이 반드시 나쁘거나 부도덕한 이유로만 물러나는 건 아니다. 그들로는 새롭게 대두한 시대정신의 요구를 성공적으로 충족시키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유권자들이 내리는 순간 대대적인 물갈이가 바야흐로 시작된다.
김동연 전 경기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에게 심각하게 결여된 미래지향적 경제성장 모델을 제시해줄 만한 인물이다. 민생경제에 무능한 정당으로 인식되면 강력하고 믿음직한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하지 못한다. 김동연은 더불어민주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환골탈태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전에서의 당락과 관계없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지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더불어민주당은 세대교체의 화급성과 필요성이 비로소 전면에 부각되었다. 김용민 의원과 고민정 의원 등의 1970년대생 정치인들이 세대교체에 되레 앞장서 반대하는 참담하고 엽기적인 현실을 감안하면 아직 20대인 박지현의 비중과 존재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세대교체는 폭이 크면 클수록 좋다. 1960년대생 86 세대는 물론이고, 86 세대의 순종적인 아바타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된 대부분의 1970년대생 서태지 세대 정치인들까지 동반퇴진하는 담대하고 파괴적인 창조적 세대교체만이 더불어민주당을 낡고 칙칙한 시대착오적인 꼰대정당의 그늘과 굴레로부터 명실상부 해방시킬 수 있다.
퍼주는 것 외에는 별달리 아는 게 없을 이재명과 세대교체의 걸림돌로 전락한 송영길을 대신해서 경제전문가 김동연과 앙팡테리블 박지현이 야당을 이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고가도로가 철거된 직후의 청계천처럼 그 풍광이 상전벽해로 확 달라질 게 분명하다.
진정한 강자는 적으로부터도 스스럼없이 용기 있게 배우는 법이다. 검사직을 그만두기 전에는 선거 한번 나가본 경험이 없는 윤석열과 새파란 30대 당대표 이준석의 조합으로 정권을 탈환한 국민의힘의 성공사례를 더불어민주당은 더 늦기 전에 기꺼이 벤치마킹해야 한다. 경제도 없고, 청년도 없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으로는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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