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시대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며칠간 장안의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정확히는 세간의 빈축을 사는 대중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평판은 몹시 좋지 않다. 걸핏하면 이리 차이고 저리 치이는 동네북 신세가 되기 일쑤다. 그런데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열성 지지층마저 차마 드러내놓고 편을 들어주기 곤란할 정도로 망신살이 톡톡히 뻗쳤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텔레비전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어머니의 자매를 뜻하는 이모와, 이씨 성을 가진 특정인을 가리키는 이모를 완전히 혼동한 까닭에서였다.
사실 필자도 한자가 옆에 나란히 병기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순전히 한글로만 ‘이모’라고 쓰인 글자를 접했다면 당연히 어머니의 여자형제라고 지레짐작했을 게다. 그러나 달랑 글자 두 개만 적힌 게 아니고 온전한 문장의 일부로 포함된 이모와 맞닥뜨렸다면 전후 맥락을 살펴본 다음 여기에서의 이모가 외가 쪽 여자 혈육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했으리라.
21세기의 한국인은 글자는 읽을 줄 알아도 문장의 참뜻은 이해하지 못하는 심각한 무지성(無知性)과 반지성(反知性)의 수렁으로 나날이 빠져들고 있다. 문해력이 결핍되기로는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이 하드웨어적 차원의 비극이라면, 수준 이하의 문해력은 소프트웨어적 견지에서의 비극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적인 비극에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소프트웨어의 비극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무식한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낳은 우울하고 황폐한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김남국 의원이 이모 교수를 ‘이모가 교수님’으로 오독할 만큼 무식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사법시험 제도가 폐지되고 그 자리에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과거와 견주어 변호사 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음은 물론이다. 허나 변호사 직업의 진입장벽이 아무리 낮아졌다고 한들 이모 씨와 이모님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조차 통과할 수 있는 지경으로까지 현존하는 변호사 시험이 허술하고 엉망이지는 않다.
극렬 지지자들이 정치와 정치인을 망친다
그렇다면 김남국 의원은 그에게는 하염없이 지독하게 부끄러운 흑역사로 남을 치명적 실수를 왜 뜬금없이 저질렀을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보좌진이 준비한 질의 자료를 그가 청문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한 번도 차분히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경우다.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쇠붙이가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분신 같은 존재로 알려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어떻게든 혼쭐내야겠다는 의욕만 지나치게 앞선 나머지 목전의 인쇄물에 ‘이모’가 나타나자 “딱 걸렸어”라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동훈 후보자 딸에게 없다는 엄마의 여자형제를 갑자기 즉석에서 다짜고짜 상상해냈을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의 불성실이 사단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두 번째는 김남국이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를 추궁하기 위해 꺼내든 회심의 자료가 김남국 의원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작성됐을 가능성이다. 남한의 제도권 의회정치에서 초선의원은 소속 정당에서 만들어준 폭로성 자료를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활용해 세상과 언론에 전격적이고 기습적으로 공개하는 저격수 역할로 비일비재하게 징발돼왔다. 초선의원 시절의 홍준표가 대표적 사례다.
즉 당 지도부가 건네준 폭로성 질의서를 김남국 의원은 사전에 꼼꼼하고 자세하게 검토할 시간적 여유를 미처 갖지 못한 채 청문회장 현장에서 다급하게 그냥 읽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김남국을 질타하기보다는 당의 부실하고 안이한 주먹구구식 일처리 방식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김남국 개인의 황당한 게으름 탓이든, 아니면 더불어민주당의 당무 시스템에 근본적 하자가 있었든 결과적으로 김남국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천하의 무식쟁이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김남국 의원이 정치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그가 나중에 정치를 그만두고 오롯이 변호사로만 일하는 내내 “무식하다”는 이미지는 그를 두고두고 괴롭힐, 본인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을 꼬리표가 될지도 모른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당의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던 시기에도 여당이건 야당이건 보스를 향한 무한하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중시했다. 허나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있으면 아무리 충성심이 투철해도 결국에는 당내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다수의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빵점이어도, 태극기부대나 개딸들 같은 극소수 극렬 지지자 집단을 선동할 수 있는 재주만 적당히 갖추면 계속해서 금배지를 달면서 장관도 되고, 심지어 주요한 거대 공당의 대선후보 자리마저 노릴 수 있게 됐다. 정치 분야만을 잣대로 삼는다면 한국사회는 이른바 삼김시대와 비교해 오히려 크게 역주행한 셈이다.
허나 괄목상대라고 했다. 인간은 현재의 자신을 겸허하고 처절하게 반성하며 부지런히 실력을 갈고 닦으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보게끔 만들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이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 누구인지 몰라보게 괄목상대했다는 칭찬 섞인 평가를 국민들로부터 끝내는 듣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기원하는 무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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