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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좌파생활’의 전제조건은 진취적인 우파 경험 - 좌파 우석훈의 미래의 블루 오션은 현재의 어린 우파 남자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2-02-10 02: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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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잘못은 미숙한 위치 선정

 

우석훈 교수의 「슬기로운 좌파생활」에는 좌파 꿈나무들을 키워 한국을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넘쳐흐르는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로 바꿔나가려는 대담하고 도발적인 미래전망이 담겨 있다.

“엄마도 페미야?”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인 우석훈 성결대 교수의 신작 「슬기로운 좌파생활(도서출판 오픈하우스 펴냄)」은 십중팔구 소위 배운 여자일 진보적 중년 여성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을 아들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고서 느끼는 충격과 공포의 순간을 생생히 묘사하는 내용으로 책의 서두를 흥미진진하게 열고 있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고서 두 번 놀랐다. 첫째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펴든 지 채 5분도 경과하지 않아 모종의 소감을 피력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석훈의 발군의 필력에 놀랐다. 둘째는 책에서 개진된 본격적 주장에 찬반 의사를 표시하기에 앞서서 저자에게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먼저 전해야겠다고 서슴없이 결심한 나의 한없이 드넓은 오지랖에 놀랐다.

 

진보 성향의 갱년기 엄마를 페미니즘에 물들었다고 추궁하는 떡잎부터 보수적인 사춘기 아들 녀석. 1980년대에 대학물을 먹었을 586 세대의 아저씨와 아줌마들에게는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며 혀를 끌끌 차게 할 가슴 답답한 절망적 장면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허나 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생명수와도 같은 용돈을 주는 부모의 권위와 명령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저항하는 아이들의 맹랑한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는 않겠다는 안심과 희망을 비로소 넉넉히 얻게 되었다.

 

왜냐? 기성세대의 이념과 취향을 그대로 얌전하게 물려받는 미래세대만 존재하는 사회공동체에 닥칠 운명은 딱 두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정체와 최종적 퇴보.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들에서는 20대의 경우 또래의 남성과 견주어 동세대 여성이 진보적이란 결과가 자주 발표돼왔다. 지금부터 여혐이라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을 각오하고 내 솔직한 견해를 밝혀보련다.

 

나는 좌파와 우파는 늘 상대적 개념이라고 확신해온 터이다. 이를테면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 추진이 자본주의 국가에선 우파적 노선으로 자리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좌파적 개혁으로 치부되었다. 본질은 변화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현상 유지를 좇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2022년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현상 유지를 고집하는 보수반동 집단이 되었다. 1970년대생 40대가 더불어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된 실질적 원인은 그들이 “지금 이대로”가 가장 행복하다는 여기는 데 있다.

 

반대로, 나머지 모든 세대들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목 높아 소리 높여 외친다. 우석훈 교수의 통렬한 지적대로 일제 강점기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좌파가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ㆍ정착된 우리나라에서 씨가 마른 사태는 대부분의 일반 유권자들이 좌파를 더불어민주당의 주요하고 핵심적인 구성분자들 가운데 일부로 인식하고 있는 탓이다. 물론 그러한 관념은 면밀하지도 못하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오도된 허위의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장 먹고살기조차 힘든 평범한 인민대중에게 진보와 좌파를 섬세하게 구분ㆍ변별할 수 있는 정교하고 치밀한 사회과학적 식견과 안목을 요구하는 건 애당초 무리수이리라. 모난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고, 남한의 좌파는 이미 오래전에 수구기득권 세력이 돼버린 주류 진보와 충분한 거리두기에 실패한 까닭으로 말미암아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이재명을 현재 대선후보로 내세운 한국의 주류 진보진영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실은 우파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개인적 인연을 계속 무탈하게 이어갔다면 편안하게 꽃길만 걷는 인생을 지속가능하게 만끽할 수 있었을 역량 있는 유명 지식인이자 출중한 연구자인 우석훈이 본연의 위치인 좌파로 복귀한 근본적 동기는 그가 한국사회의 총체적 변혁을 오랫동안 부지런히 기획하고 치열하게 실천해온 견결한 좌파인 점에 있다.

 

자생적인 급진 우파가 세계를 변혁한다

 

페미니스트 40대 후반 엄마와 10대 중후반의 마초 아들의 갈등구조를 천착하는 작업으로 다시금 돌아가자. 나는 ‘변화 대 안정’ 구도에 근거해 전자가 현상 유지파이고 후자가 도리어 변화를 추동하는 혁신파라는 역발상을 하고 싶다.

 

필자는 10대 소녀들이나 20대 여성들이 지닌 것으로 알려진 진보성이 참다운 진보성인지 가끔씩 회의감이 인다. 그들이 하는 얘기들이 나이든 진보 지식인들의 영향을 받은 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짜로 본인들의 순수한 소신과 깨달음인지, 아니면 교단의 전교조 교사의 가르침이나 강단의 민교협 교수의 이론을 수동적으로 거울처럼 반사하는 데 불과한 건 아닌지 궁금증이 눈치 없이 발동하곤 한다.

 

반면에 10대 소년들은 선생이 전교조 노조원이든 혹은 한국교총 소속이든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꼰대로 간주해 대놓고 대든다. 자생적 보수주의가 바깥에서 타율적으로 수혈 받은 외생적 진보주의와 비교하면 최소한 백배는 더 급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평가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러므로 이대녀가 아닌 이대남이 보다 창의적이고 혁명적이며, 도전적이고 모험적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엄마를 페미라고 비난하는 중고생 아들이 후레자식일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여자인 터라 육체적 힘이 달리는 모친을 향해서는 눈을 부라리면서 아직까지는 아들을 근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부친에게는 꼼짝 못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그렇게 기회주의적으로 살면 한마디로 싹수가 노란 셈이다. 하지만 부모의 성별을 불문하고 균등하고 불온하게 반항한다면 나름 기본적인 일관성은 갖춘 아주 기특한 녀석이리라.

 

그렇다면 “엄마도 페미야?”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에 봉착한 배우고 진보적인 중년 여성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고 바람직할까?

 

나는 아들의 힐난 섞인 질문을 “엄마는 틀렸어(You are wrong)”가 아닌 “엄마는 늙었어(You are old)”로 받아들일 것을 감히 정중하게 권유하는 바이다. 아들의 뇌리에서 페미니즘은 나쁜 사조가 아니라 낡은 사상으로 규정되고 있을 개연성을 어머니 쪽에서 성급하게 배제하지 마시라는 뜻이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현상은 페미니스트 엄마와 마초 아들의 모자 관계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가 있다. 더욱이 바야흐로 21세기는 인류가 이제껏 겪지 못한 새롭고 기이한 현상들이 쉴 새 없이 속출하는 뉴노멀의 시대(Age of New Normal)이다. 젊어서는 좌파였다가 늙어서는 우파가 된다는 여태껏 광범위하게 통용되어온 법칙 또한 일거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에 기존의 기준과 가치체계에 과감하게 항거해본 체험의 유무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장차 크게 엇갈린다. 관건은 좌파 부모에게 맞선 우파 아들은 기성 질서와 규범을 소소한 차원에서나마 혁파하고 전복하려고 시도하는 짜릿한 일탈의 경험을 확실히 해봤다는 것이다.

 

고로, 우석훈이 나서야 할 일은 일찌감치 반역과 봉기를 아는 몸이 된 불량기 다분한 저들 꿈나무들을 상대로 이른바 밭갈이에 나서는 것이리라. ‘온순한 좌파’는 ‘인도주의적 폭력’만큼이나 형용모순일 테고, 무슨 사건만 생겼다 하면 예전에 갓 시집온 새색시들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얌전하게 앉아 촛불 드는 반응이 거의 전부인 현존하는 온순한 좌파들을 데리고서는 세상을 바꾸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연유에서이다.

 

필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외동딸을 슬하에 두고 있다. 나는 딸아이가 이러한 물음을 던져올 때마다 내심 마음이 뿌듯해진다.

 

“아빠는 옛날 사람이야?”

 

맞다. 아빠는 옛날 사람이다. 그러니 딸아, 아비가 네게 무슨 말을 하건 일단은 의심하고 반박하렴. 그래야 세상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씩씩하고 아름답게 바꿔나갈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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