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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유시민」을 만들자 - 빽바지, 포스트잇, 그리고 만두의 추억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18-12-26 18: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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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물장수 유시민을 아시나요


“경기도 장터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방물장수가 왔으니 장터가 커질 것 같다.”


2009년 3월 9일 오전,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기도지사 출마 소식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교한 데이터가 뒷받침된 날선 직설화법을 즐겨 구사해온 평소의 심상정답지 않게 풍자와 해학 넘치는 촌평으로 유시민 전 장관을 향한 경계심과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방물장수에게는 고정된 영업장소가 없다.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간다. 심상정이 유시민을 엉덩이 가벼운 방물장수에 빗댄 까닭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물장수 돌아다니듯 전국 도처의 선거판을 들락날락해온 탓이었으리라.


유시민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두 번 연속 금배지를 달고서는 지역주의 극복을 표방하며 대구 수성구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낙선한 후, 이번에는 다시금 수도권으로 올라와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는 현란한 정치행보를 선보여온 터였다. 가히 신출귀몰이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2010년도의 경기도지사 선거는 국민참여당 유시민의 참전을 계기로 정말 화근하게 달아올랐더랬다. 유시민 후보의 초반 기세는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파죽지세였다. 유시민은 민주당 김진표 후보를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을 통해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의 단일화가 성사된 직후에는 민주노동당 소속 안동섭 후보로부터 사퇴와 지지선언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이윽고, 유시민을 방물장수에 견주며 맹공했던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마저 후보직을 전격적으로 중도사퇴하면서 경기도지사 자리는 유시민 후보의 손 안에 거의 들어온 듯했다.


역시나 선거는 까봐야 아는 법. 유시민은 정작 본선에서는 현직 경기도 도지사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약 4.5퍼센트의 득표율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물건 판 방물장수가 이튿날 아침 일찍 보따리를 꾸려 미련 없이 훌쩍 사라지듯, 세 명의 야당 소속 경기도지사 후보들을 여의도 선수들 용어로 차례차례 ‘드롭(Drop)’시켰던 유시민은 2013년 2월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정치권을 떠났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초식동물로 변하지는 않듯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유시민은 정치를 소재로 다루는 평론가로, 작가로, 방송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현역 정치인이었던 시절보다도 몇 배는 더 잘나가고 있다. 현역 정치인 시절에는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일일이 책임을 져야만 했으나, 일단 야인 신분으로 하방한 이후에는 일체의 의무들로부터 면제되어온 덕분이었다.


유시민의 사물극장


빽바지, 포스티잇, 만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현역 정치인 생활을 되짚어볼 수 있는 세 가지 사물이다. 특히 포스트잇은 옛 개혁당 당원들에게 분노를 자아내는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리 맛없는 밥집에도 먹을 만한 반찬이 한 개씩은 있는 것처럼 조선일보에도 읽을 만한 내용물이 가끔씩은 올라온다. 「장석주의 사물극장」이 그런 사례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적 사물이 한 가지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사물이 한 가지도 아니고 무려 세 가지씩이나 된다.


첫 번째는 저 유명한 빽바지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2003년 4월 24일에 실시된 덕양을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개혁당 소속 야권 단일 후보로 당선됐다. 이때 유시민의 승리를 지원하고자 발 벗고 나선 인사들이 여럿이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TV 토론회에서 유시민한테서 ‘곶감동영’이라는 멸칭을 들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나중에 극우 논객으로 변신했다가 지금은 영어의 몸이 돼버린 미디어워치 전 대표 변희재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유시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변희재는 유시민 당선을 너무나 열심히 도운 나머지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총력전의 결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유시민은 그해 4월 2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정장 양복이 아닌 캐주얼 복장 차림으로 등장했는데, 당시 그가 입고 나온 바지가 다름 아닌 빽바지였다.


두 번째 사물인 흔하디흔한 사물용품인 포스트잇이다. 개혁국민정당(약칭 개혁당)은 열린우리당에 앞서서 이미 “백년 가는 정당”의 기치를 내걸고서 일반당원, 곧 개미당원들의 십시일반으로 탄생한 신생 정당이었다. 유시민 전 장관을 비롯해 김원웅 전 의원, 영화배우 문성근 씨,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등이 개혁당 창당에 앞장섰던 것으로 필자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개미들이 창당한 신생 정당 개혁당이 유시민 주도 아래 열린우리당과 합당을 추진하는 와중에 상당한 무리수가 두어졌다는 점이다. 열린당에의 흡수를 반대하는 당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합당파는 개혁당 사무실의 볼펜과 포스트잇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열린우리당 측과 살림을 합쳤다고 한다. 그때 겪은 충격과 배신감의 여파였을까?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을 강력히 반대했던 과거의 개혁당원들은 규모는 미미할지언정 현재까지도 유시민의 가장 극렬한 비토세력으로 남아있다. 


세 번째 사물은 음식물인 만두다. 참여정부의 한국군 파병을 비난하는 이라크 수니파 무장반군에게 납치된 고 김선일 씨의 생명이 위태롭던 바로 그 순간, 유시민은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만두를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이른바 쓰레기 만두 사건으로 말미암아 만두의 매출이 급감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만두 소비를 촉진하자는 취지 아래 개최된 행사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참석했던 것이다. ‘먹방’이라는 개념이 그 무렵에 있었다면 유시민 전 장관은 진즉에 먹방 스타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유시민, 그때 왜 그랬을까


고 김선일 씨가 이라크 반군에게 피랍당한 국면에서의 만두시식 파동은 정치인 유시민에게 당혹스러운 흑역사로 남았다.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유튜브 화면 캡처)

필자가 빽바지와 포스트잇, 그리고 만두 3가지 사물을 시시콜콜하게 열거한 건 유시민을 흠집내려가나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나름 선의를 띤 동기와 이유에서이다.


첫째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계복귀가 초읽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감지되는 최근의 정세와 분위기에서 그가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어떤 일들과 결정에 관여하고, 어떠한 언급과 행동을 했는지에 관해 대부분의 국민들, 특히나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너무나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관한 판단을 내릴 때에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흐려지고 왜곡될 수밖에 없는 기억과 이미지에 근거하지 말고, 세월의 압박과 풍화에 비교적 단단히 견디는 문자화된 기록들에 입각해야 바람직하다.


둘째로 그때 그가 왜 그랬는지를 설명 혹은 해명할 수 있는 기회와 계기를 당사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마련해해주자는 충정의 발로에서이다.


유시민 전 장관 정도의 인물이 장난기로 빽바지를 입고서 신성한 국회 단상에 섰을 리는 없다. 게다가 포스티잇까지 급하게 싸가야 했을 지경이면 개혁국민정당 해산에는 유시민 본인도 차마 밝힐 수 없었던 모종의 사연과 속사정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더욱이 국민의 소중한 목숨이 촌각에 달렸을 즈음 유시민 또한 엄청난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당연히 겪었을 게 분명하다. 그가 순전히 만두가 너무나 먹고 싶음 마음에 ‘만두사랑’ 모임에 들렀겠는가?


필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반대했으면 반대했지 지지하지는 않아온 입장이다. 그럼에도 유시민이 우리나라의 귀중한 인적 자원이라는 사실에만큼은 어떠한 단서나 유보조항 없이 흔쾌히 동의하고 있다. 유시민 같은 인물을 한 명 키워내려면 마을 하나가 아니라 최소한 광역시 한 개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가 현실의 제도권 정치인으로 경험한 실수와 실패와 시행착오를 사회의 공적인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더 이상 회피하거나 지연시킬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고 과제이다.


「실록 유시민」에서 「대하실록 홍준표」까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계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유시민은 누구인가를 알려줄 '유시민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진은 유시민 전 장관이 쓴 책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실록 유시민」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감히 제안드리는 바이다. 이 작업은 자연인 유시민이 아닌 공인 유시민의, 정확히는 정치인 유시민의 영욕과 성쇠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복원하는 데 근본목표가 있다. 그러자면 좋든 나쁘든,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정치인 유시민과 이런저런 인연을 갖고 있는 분들의 전폭적 협조와 지원이, 아낌없이 증언과 자료 제공이 절실하고도 불가결하다.


죄송한 말씀이겠으나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내고, 일국의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선거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까지 골고루 빠짐없이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내로라하는 범국민적 유명 인사와 관련된 기록을 수집하고 기억을 모으는 데는 적잖은 노력과 비용이 수반된다.


이러한 연유로 필자는 국내 최초의 CF 방식을 채택해 「실록 유시민」 만들기에 소요될 자금을 모아나갈 예정이다. CF는 'Contents Funding'의 약자로, 콘텐츠를 이용하고 감상할 의향이 있는 뜻 있는 투자자와 독지가들로부터 먼저 자금을 모은 다음에 콘텐츠 제작에 착수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실록 유시민」은 ‘빠’ 아니면 ‘까’가 되기 쉬운 지독하고 일그러진 진영논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정확한 감정평가를 지향한다.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가 있으면 사람에 대한 감정평가도 있어야만 옳지 않겠는가? 「실록 유시민」이 사감 반 주관 반의 감정적 평가가 아닌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정평가로 자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개시될 콘텐츠 펀딩에 독자 제현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후원을 정중하고 진솔하게 부탁드린다.


나는 「실록 유시민」 프로젝트가 성료되면 곧바로 「대하실록 홍준표」 제작을 시작할 요량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주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치밀하고 에누리 없는 총화(總和)야말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답답한 한국사회를 다시금 힘차게 미래로 전진시키는 작지만 힘찬 첫걸음이 되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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