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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펭수 : 안철수와 펭수는 어떻게 다른가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정치활동 재개에 부쳐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1-02 16: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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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펭수보다 못하다니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펭수식 직설화법은 간보기가 난무하는 기회주의적 세태에 염증을 느낀 대중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이미지출처 :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먼저 광고 하나 내보내겠다. 연초부터 뜬금없이 자기 자랑에만 열심이라고 지나치게 타박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알고 보면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는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가병 역할을 볼썽사납게 자처하고 나선 일도 순전히 먹고살기 위한 짓이고, 박찬주 전 육군 참모차장이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낸 일반 유권자 한 명 없건만 기를 쓰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려고 하는 일도 순전히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다. 참여정부의 황태자로 각광받았던 전직 장관과 평생 목에 힘주고 살아왔을 퇴역한 4성 장군조차 먹고살겠다고 저렇게들 부지런히 아등바등하며 뛰어다니는데, 필자처럼 힘없고 가난한 일개 인민대중이 감히 주제넘게 고상한 성인군자 흉내 내며 하염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필자가 어느 중앙일간지가 기획‧제작할 예정인 유튜브 방송에 출연자로 섭외될 듯하다. 나는 잘생긴 미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유형의 인간이다. 허나 내가 아무리 외모가 시원치 않을지언정 나의 경쟁 캐릭터로 펭수를 지목한 건 솔직히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별다른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탈이지, 나는 8천만 한민족의 ‘위대한 웅비’를 꿈꾸며 제 깐에는 나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힘들게 고군분투해왔다. 위대한 웅비가 존재의 이유인 나한테 고작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펭귄 한 마리를 타도하는 데 나서라니? 한마디로, 빈정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펭수인지, 펭귄인지 하는 덩치 큰 날짐승이 나보다 뛰어난 구석이 엄청 많긴 많더라. 일단 나와 비교할 때 수십~수백 배는 더 유명하다. 더욱이 돈도 수백~수천 배는 훨씬 더 잘 번다.


사실 이런 지표상의 우위와 함께 펭수가 나를 포함한 웬만한 인간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펭수는 굉장히 명확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펭수는 기면 기이고, 아니면 아니다. 더욱이 펭수는 굳이 구질구질하게 남의 입 빌리지 않고서 그때그때 즉각즉각 자신의 의사를 직설화법으로 표현해왔다. 모호하지 않게 아주 구체적으로!


펭수의 명확함과 구체성은 스스로의 거취와 진로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에서 시원하게 작렬했다. 펭수는 EBS 교육방송 연습생으로 뽑히지 못하면 KBS 한국방송이나 MBC 문화방송으로 가겠다고 자신의 입장과 계획을 똑 부러지게 정리해 공개했다.


펭수에게는 있지만 철수에게는 없는 것


펭수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만큼이야 많겠는가? 펭수가 아무리 유명하다도 한들 안철수보다 더 명성이 높겠는가? 그럼에도 펭수에게는 있어도 안철수 전 대표에게는 없는 것이 딱 두 가지 있다. 그건 바로 명확함과 구체성이다.


이를테면 안철수 전 대표가 EBS 연습생 선발시험에 응시했다가 미역국을 마셨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안철수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대한민국 방송산업의 장기적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당분간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웃긴가? 이게 여태까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애용해온 대국민 소통방법이다. 웃을 건수는 아직 또 있다. 다 듣고 나면 알맹이도 없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안철수 전 대표는 거창하게 ‘안철수 측’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마치 계엄령 발포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통보하곤 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글을 이번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본인 명의로 직접 올렸다는 소식이다. 언제,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현실정치에 복귀할지에 관해서는 예상대로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는 정계복귀의 방식과 경로를 누군가와 상의하겠다고만 밝혔을 따름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서 피식, 실소가 새어나왔다. 대한민국 영토 안에 유시민이 입당해보지 않은 정당이 사실상 없듯이, 안철수가 상의해보지 않은 원로와 지식인들과 선거 컨설턴트들은 거의 없는 탓이었다. 유시민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건 새로 입당할 정당이 더는 없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상의할 인물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철수형은 또 누구와 상의를 한다는 말인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과 상의한다는 뜻일까? 물론 이것도 상의라면 상의일 게다. 안철수에게 정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비장하게 싸움도 거는 마당에, 그깟 상의쯤 하지 못하겠는가?


봉 도사가 가니 안 도사가 온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믿고 있다. 자기와의 싸움은 현실의 명확한 문제와 구체적으로 직면하는 일을 피하기 마련이다. (이미지 출처 : 안철수 전 대표 최근 책)한 남자가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는 실제로는 아무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 모두에게 사과의 의향을 표시한 건 실은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마찬가지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전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즉 그는 누구를 향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안철수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곳 남한사회에 차고도 넘친다.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강남패권주의 체제를 끝장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서 안철수를 두 차례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노원구 주민들이, 지난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가 창당한 국민의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던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안철수의 약속만 믿고서 덜컥 합당 제의에 응했다가 결국에는 뒤통수를 맞고 용도폐기된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정치인들이, 그리고 토끼(유승민) 사냥에 성공한 결과로 머잖아 토사구팽을 당할 사냥개 처지가 돼버린 손학규 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안철수 전 대표로부터 응당 사과를 받아야만 할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안철수는 그의 사과를 받아야 마땅한 개인과 계층에 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적시를 슬그머니 얼렁뚱땅 건너뛰었다. 그는 한국정치의 기득권 세력을 청산하겠다고 그저 추상적으로 기염을 토했을 뿐이다. 안철수는 그가 기득권 세력으로 거론한 집단의 정체에 대해서는 역시나 모호하게 뭉뚱그리고 있다.


친문세력과 더불어민주당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목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에 문 대통령과 그 가족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


친박세력과 자유한국당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목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사람들을 모조리 남김없이 감옥에 보내는 데 있다.


안철수는 자신은 세력이 없다고 거듭해 역설해왔다. 그렇다. 그에게는 분명 확실한 세력이 없다. 문제는 그는 세력이 없는 데 더해 분명하고 확실한 정치적 목표도 없다는 거였다. 정치를 시작한 지가 만으로 벌써 8년이 경과했어도 그의 얘기에서는 평범한 민중이 쉽사리 알아들을 수 있는 명징한 목적어가 여전히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구체적 목표와 명확한 목적어가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자기와의 싸움’에 광적으로 탐닉해왔을지 모른다.


나는 안철수 전 대표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꼭 승리하기를 바란다. 한데 안철수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마침내 수확할 결실은 집권이 아닌 득도일 성싶다. 자기와의 싸움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도사’라고 일컫는다. 미투 한 방에 훅 간 봉 도사의 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안 도사의 시대가 열릴 기세다. 결단하고 책임지는 지도자는 없고, 구름 위를 노니는 도사들만 판을 치는 광경을 보자니 세상이 말세는 말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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