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공희준(이하 공) :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주류 보수언론매체들이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일이 보수의 통합과 혁신입니다. 여기에서의 통합은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빅 텐트를 치라는 주문입니다. 혁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친박세력을 정리하고 청산하라는 의미입니다. 조갑제, 윤평중,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 같은 내로라하는 보수 논객들도 이러한 논리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아스팔트 우파는 유승민 세력과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다며 보수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시금 보수의 중심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보수에게 등 돌린 중도 보수나 중간층 성향 유권자들을 보수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께서는 유승민 세력 없는 보수의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친박세력과의 절연 없이도 보수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박근혜 탄핵의 주역은 새누리당 반란파
변희재(이하 변) : 질문하신 내용 중에서 먼저 정정해야만 할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광훈 목사는 유승민 계열과 손잡고 가야 한다는 입장에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건 더불어민주당 의석만 갖고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62명의 이탈자가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시점부터 한국정치의 지형은 양자 구도가 아닌 3자 구도로 전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 4월의 20대 총선도 사실상 3자 구도로 치러졌습니다. 즉 총선과 탄핵을 거치며 한국정치는 기존의 양자 구도가 깨지고 3자 구도로 바뀌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었습니다. 이제는 이 사실을 냉정히 수용해야 합니다.
공 : 3자 구도를 정립(鼎立)시킨 세 축이 뭐라고 보십니까?
변 : 간단합니다. 첫째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입니다. 저는 이들을 ‘문재인당’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둘째는 예전의 국민의당에 김종인, 김무성, 유승민 같은 인물들이 더해진 세력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탄핵당’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셋째는 탄핵을 반대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면 국민의 30프로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부당했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당, 탄핵당, 탄핵반대당, 이렇게 천하 삼분지계의 구도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따라서 융합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합치라고 쓸데없이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 : 조중동으로 표상되는 보수의 주류들이 지금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태가 그러한 3자 구도의 모양새로 총선정국이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어부지리를 거둘 수 있으니까요. 이름 좀 알려졌다는 보수 이데올로그들이 그래서 거의 매일 애절하게 호소하다시피 하는 소리가 총선 전까지 반드시 일대일 구도를 창출해야만 한다는 주문입니다.
변 : (답답하다는 듯이) 당장 지난번 총선부터가 일대일 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정당투표율을 기억해보세요. 새누리당이 1등이고, 국민의당이 2등이고, 더불어민주당이 3등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3자 구도가 출현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이 3자 구도의 부산물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에서 왜 무려 62명씩이나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통과에 찬성표를 던졌겠습니까? 3자 구도의 정세에서 제3당으로 건너가 반기문 전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영입하면 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였습니다. 객관적 정치현실은 진즉에 3자 구도로 재편됐는데, 이제 와서 보수 노땅들이….
공 : 보수 노땅들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 박근혜 사태와 조국 파동을 순차적으로 거치며 보수는 분열을 인수했고, 진보는 부패를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는 노땅들의 준동을, 진보는 꼰대들의 발호를 각각 경험해왔다. 진영과 정파를 막론하고 남한사회는 총체적 노화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보수판 ‘3자 필승론’이 어째서 정답인가
변 : 무조건 합치라는 목소리의 중심에는 전광훈 목사가 자리해 있습니다.
공 : 그분이 보수판 백낙청인가요?
변 : 전광훈 목사의 요구를 좇아 유승민 손잡고, 김무성 껴안는 전략으로 보수가 뭉쳐서 총선을 치르면 어떠한 선거 결과가 나올까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0석 넘게 차지할 게 명백합니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은 50석 밑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공 : 일대일 구도에서는요?
변 : 예, 일대일 구도에서는요.
공 : 이유가 뭡니까?
변 : 보수 성향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유승민과 김무성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일대일 구도에서는 투표장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차라리 기권을 선택하고 맙니다. 2016년 총선 때 당시 새누리당 당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180석을 얻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 투표함을 개함해보니 어땠나요? 여당이 선거에서 대패했습니다.
반면에 좌파는 압승을 거뒀습니다. 왜냐? 좌파 계열 주요 정당이 2개가 나타나며 유권자들이 제각기 입맛에 맞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문재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철수당을 찍으면 됐고, 안철수를 싫어하는 유권자들은 문재인당에 표를 던지면 됐습니다. 각자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할 수가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진영과 김무성 당대표 세력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으니 유권자들이 여당이 이기면 김무성 체제만 더 확고하게 굳혀준다고 판단하고서는 대거 기권을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대폭 다원화됐습니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에 적응하지 않으면 자유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공 : 방금 내리신 진단은 크게 공감이 가는 분석으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책임은 최경환 전 의원을 위시한 친박 핵심들이 빚어낸 ‘진박감별 파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무성 전 대표의 과오 또한 물론 있겠지만 친박들 잘못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 아닌가요? 여당이 선거에 지면 백이면 백 국정운영에 실패한 탓입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의 주축이 김무성이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적으로, 최경환 전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령탑이었지, 김무성 의원은 아니었습니다.
스포일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전에 밝혀둔다면, 필자의 반론을 겸한 지적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 만큼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대답을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끝내 내놓지 못했다.
변 : 2016년 선거 구도가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3자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자 상당수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 200석도 넘게 얻을 수 있다고 판세를 낙관했습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압승이 김무성 의원을 차기 대통령으로 굳혀줄지도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한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선거가 치러지기 전해인 2015년 가을에 그와 같은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이미 예견한 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무성과 유승민 두 사람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는 게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그 무렵 개진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이전부터도 김무성과 유승민은 일찌감치 우리와는 같을 배를 탈 수 없는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몸은 여당에 있어도 실제로는 야당 노릇에 열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그때 그들과 단호히 결별해야만 했습니다.
공 : 그분들은 어떻게 하라고 선거도 하기 전에 청천벽력으로 결별을 선언합니까?
변 : 새로 창당된 국민의당에 합류를 했던지, 아니면 바른미래당을 조금 일찍 만들던지 했겠죠. 후자의 경우에는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 네 사람이 경쟁했던 식의 2017년 봄의 4자 구도가 2016년 봄에 출현했을 겁니다.
공 : 변 대표님이 제안한 논리는 보수판 4자 필승론으로 들립니다.
변 : 굳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내년 총선을 상정한다면 ‘3자 필승론’으로 보일 테고요.
4자 필승론은 1987년의 제13대 대선 국면에서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측에서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가 불발되자 독자 출마를 감행하며 내세운 이론이었다. 그 4자 필승론이 30여 년 후에 하필이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입을 빌려 부활하려는 참이었다.
변 : 보수의 꼰대들은 양자 대결 구도에서만 야당의 승리가 확실하게 보장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양자 대결 구도가 결국은 야당의 참패로 귀결된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공 : 진보 꼰대들도 양자 대결을 좋아합니다. (웃음)
나는 왜 ‘우파 자유주의자’인가
공 : 변희재 대표님이 피력한 견해를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가 국정운영에 크게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으로 집약이 됩니다.
변 : 국정운영의 성패를 판단하는 데에는 모종의 기준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 기준을 높게 설정하면 성공으로 칭송되고, 낮게 잡으면 실패한 것으로 단죄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기대치가 아주 낮았습니다. 저는 박근혜 정부가 제가 설정한 기준선보다는 그나마 높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공 : 그건 문빠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성적을 매기면서 적용하는, 그들만의 너무나 관대한 잣대와 비슷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일반 국민들은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수’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응시만 해도 자동으로 무조건 ‘수’를 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공과와 역대 정권의 우열에 관한 설전이 잠시 오간 다음 대화는 ‘인간 변희재’로 좌표를 이동했다.
공 :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강경 보수로 통합니다. 그런데 변 대표님 스스로는 자신을 도리어 혁신 보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인상입니다.
변 : 저는 사람들이 정확한 개념 위에서 논의를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철학에서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사회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로 구분합니다. 혁신 보수니, 강경 보수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사회주의가 왼쪽에 있고, 보수주의가 오른편에 있으면 자유주의는 그 중간에서 주기적으로 일정한 진자운동을 되풀이해왔습니다. 자유주의가 어떤 때는 보수주의에 가까워지는, 또 어느 경우는 사회주의로 기울어지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미국에서는 리버럴(Liberal)이 좌파로 인식돼왔습니다. 이와 달리 자유주의자들이 유럽에서는 우파로 묶여왔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철학과 이념을 공부할 적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이론에 기초해 학습을 진행해나갔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자유주의자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중시하고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겹치는 부분이 큽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에 종속돼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비교해 제도의 개혁과 시스템의 변화에 훨씬 더 과감하고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자유주의는 낡은 인습에 저항하는 가치이자 사상이기도 합니다.
공 : 그럼 변 대표님은 자신을 리버럴로 간주하십니까?
변 : 미국에서는 리버럴이라고 하면 곧장 좌파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는 자유주의자는 우파로 분류되는 게 타당합니다.
공 : 그렇다면 만약 변 대표님의 바람대로 3자 대결 구도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어떤 당을 찍으실 작정입니까?
변 : 3자의 범주 안에 탄핵무효당이 있다면 당연히 그 당연을 찍어야죠.
공 : 그 탄핵무효당이 일반 국민의 인식에서는 ‘친박복권(復權)당’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변 : 친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 정치권에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습니까?
공 :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을 친박세력이 확고하고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친박을 바퀴벌레만큼이나 질긴 생명력을 지닌 징그러운 집단이라고 직격했겠습니까?
변 : 탄핵무효당이 등장하면 그 당에 친박이 얼마나 있겠어요? 2016년 총선 당시에 친박의 빅3로 알려진 인물들은 최경환, 서청원, 윤상현 세 사람입니다. 이들 중에서 이제 서청원 의원은 탈당했습니다. 최경환 전 의원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윤상현 의원은 다시금 탄핵찬성파로 슬금슬금 변신해 김무성 의원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친문 패권주의 논란으로 몸살을 앓을 때마다 “친문은 없다”는 신경질적 반응이 친문들로부터 습관적으로 나오곤 했다. 변희재 전 대표의 “친박 없다”는 항변이 필자에게 즉각 기시감을 불러일으킨 연유였다. (③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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