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와 롯데 캐슬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한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브랜드의 대명사인 롯데 캐슬의 광고 문구이다. 롯데 캐슬의 선전대로 21세기 남한사회에서 한 인간의 실체적 본질은 그의 거주지로부터 기원하기 마련이다.
올 여름에 시작돼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는 롯데 캐슬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1승을 안겨주었다. 조국 장관 부부가 강남좌파의 근원적 정체성은 진보적 ‘좌파’가 아닌 부유한 ‘강남’에 존재함을 남한사회의 평범한 인민대중에게 대단히 명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 덕분이다.
소장파 철학자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칼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의 역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한 설명을 지나치게 띄엄띄엄 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유물철학과 관념철학을 21세기 한반도 남쪽의 현실에 맞게끔 새롭게 정의해봤다.
관념주의는 한 인간의 진정한 본질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유물주의는 한 사람의 참다운 정체성이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념이다.
필자는 절에도 다니고 교회에도 나가봤다. 심지어 서울 이태원 언덕배기에 들어선 이슬람 성원에도 들러 한국 태생의 이맘과도 장시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견결한 유물론자로 영원히 남을 듯싶다. 필자는 한 인간의 참다운 정체성은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의 성격과 색깔에 의해 규정된다고 철두철미하게 확신하는 연유에서이다.
이와 같은 한국적 유물사관에 비춰보면 조국 일가 파동을 둘러싸고 분출된 상충하는 다종다양한 반응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거의 오차 없이 유추해낼 수가 있다. 이는 남한사회 최강‧최고‧최대‧최악의 수구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 출세하고 돈 많은 586 세대의 물질적 토대를 손쉽게 이해하는 단서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공지영과 진중권은 왜 갈라섰을까
조국 구하기의 선봉에 선 인물은 소설가 공지영 씨이다. 공지영 작가의 현재 모습은 조국 팬클럽 회장을 방불하게 할 지경이다. 왜 공지영은 조국 지키기에 목을 맨 것일까? 필자는 공지영 작가의 수익구조, 곧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에 그 원인과 비밀이 있다고 평가하련다.
잘 알려졌다시피 공지영 작가의 핵심 독자층은 40~50대 중장년 여성들이다. 조국 장관의 열성 지지자들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므로 공지영 작가가 조국 장관을 반대한다면 스스로의 재정적 생존기반을 제 손으로 허무는 격이다. 남녀와 직종을 막론하고 환갑을 앞둔 나이에 들어선 중장년 세대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항목이 경제적 안정인 점을 감안하면 공지영의 조국 응원은 작가 입장에서는 일상적 영업활동의 연장선상에 자리한 셈이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조국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필자는 진중권 교수가 조국 장관과 일단은 공개적으로 결별한 사건이 별로 놀랍지 않다. 진중권은 공지영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젊은 독자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고 있는 탓이다.
이건 경제학자 우석훈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중권도, 우석훈도 40~50대 중장년 여성들에게 억지로 코드를 맞출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다. 우석훈과 진중권이 공략해야 할 마케킹 대상인 지금의 청년세대는 조국 일가로 상징되는 출세하고 부유한 기득권 586 세대의 파렴치한 특권과 상습적인 반칙에 그 누구보다 뜨겁게 분노해온 세대이기도 하다.
유시민, 더 큰 먹잇감을 노리다
참여정부의 2인자이자 황태자로 막강한 권세를 누렸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온갖 수준 이하의 궤변을 남발하며 무리하게 옹호하는 과정에서 그가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해온 20~30대 독자층을 대거 상실했다. 출판시장에서 유시민의 이름값은 이제는 휴지조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을 문재인 정권을 순수한 마음으로 보위하기 위한 유시민의 이타적 희생과 헌신으로 해석한다면 그야말로 속단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출판시장보다도 몇 배, 아니 몇 십~몇 백 배는 더 크고 수지맞는 알짜배기 시장을 노리고 있다. 그건 바로 선거시장, 즉 정치시장이다. 당신은 베스트셀러 작가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뭐가 더 되고 싶은가? 100명 가운데 최소한 99명은 수유의 망설임조차 없이 후자를 고를 게다.
미안한 얘기이지만 남한의 민주주의는 실패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민중의 머리가 아니라 머릿수를 원하기 때문이다. 민중 역시 본인의 머리가 아닌 머릿수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를 바란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 무려 300만 명이 운집했다는 문재인 정권 일각의 과장된 주장과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조국 지지자들은 머리가 아닌 머릿수로 승부하려는 한국 민주주의의 처절한 실패 사례를 부끄럽게도 백일하에 드러내버렸다. 물론, 서초동의 머릿수는 광화문의 머릿수에 이내 압도당하면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기득권 586 세대는 취업기술자
머리가 아닌 머릿수가 중요한 시대에는 임명권자 또는 공천권자가 내 입으로 들어갈 밥의 양과 질을 궁극적으로 정해주는 법이다. 한국의 정치시장, 곧 선거시장에 무탈하고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임명권자 즉 공천권자의 호감과 신임을 얻는 게 절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이너 서클’의 호의와 후견을 확보하고자 수만 명의 젊은 독자들을 순식간에 내팽개친 유시민의 카멜레온 뺨치는 신속한 변신은 따라서 영악하면 영악했지 결코 멍청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청래 전 의원은 유시민 전 장관을 정치기술자라고 혹평했다. 정청래의 유시민 인물 비평은 딱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정청래는 유시민이 기술자라는 부분은 맞혔지만, 유 전 장관이 정치기술자가 아닌 취업기술자라는 지점에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내린 전략적 선택의 메커니즘은 기득권 586 세대의 노회한 처세술에서 고스란히, 동시에 부지런히 재연‧답습되는 중이다. 기득권 586 세대는 평범한 소비자를 상대로 꾸준하고 성실하게 돈을 버는 인간들이 아니다. 유력한 인사권자에게 영합하고 굴종해 생계 문제를 시쳇말로 ‘한큐’에 해결하는 약탈적인 엽관 집단이다.
조국을 지키겠다며 서초동 검찰청 앞으로 모여드는 기득권 구태 586들에게는 남한의 힘없고 가난한 인민대중에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릴지 말지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네 586들을 연봉 1억 원이 가뿐히 넘을 각종 공공기관과 이런저런 사실상의 국영기업들에 이사 혹은 감사로 낙하산으로 조용히 꽂아줄 청와대를 향해 일종의 요란한 출석 체크에 나섰을 따름이다.
국가 공동체와 후배 세대에게 너무나도 유해하고 치명적인 기득권 586 세대의 엽기적인 먹고사니즘의 민낯을 잠시 살펴봤다. 필자가 매주 주말 오후, 서초동에서 열리는 이른바 조국 지키기 집회를 기득권 “586 세대를 위한 거대한 취업 박람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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