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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를 생각한다 - 그는 미래를 상상하는 한 사람이었다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8-05 17: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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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혁신의 시대도 끝나나


남들이 모두 과거를 회상할 때 이민화 회장은 나 홀로 미래를 상상했다. (사진 출처 : 고 이민화 회장 페이스북)

이민화 한국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 급작스럽게 타계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67세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국가로 자리 잡은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별세는 때 이른 애석한 죽음이라고 일컬어져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고 이민화 회장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 그럼에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착잡한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 건 이민화의 죽음이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시대가 결코 종언되어서는 안 될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민화의 시대는 다름 아닌 혁신의 시대이고, 도전의 시대였다.


이민화 회장은 의료기기업체 메디슨의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벤처업계의 스타로 일약 떠올랐다. 메디슨은 그에게 영광을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오점도 남겼다. 회사의 주식시세가 부침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개미투자자들이 큰 상처를 받은 탓이다. 메디슨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전의 이민화 회장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까닭이다.


이민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반골


그러나 필자는 이민화는 과에 비하면 공이 훨씬 더 많은 인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21세기에 접어든 남한사회에는 두 개의 에너지가 모자라다 못해 아예 고갈될 지경이다. 하나는 도전의 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혁신의 에너지이다.


이민화는 도전의 대명사이자 혁신의 옹호자였다. 한 사회에서 진정한 반골은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막말과 저주를 퍼붓는 인사가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대세를 좇아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인간이 진정한 반골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민화는 한국사회의 마지막 반골이었다. 그는 사지 멀쩡한 20살짜리 젊은 청년조차 단지 잘리지 않고 월급 꼬박꼬박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부가가치 창출 제로 직종인 공무원이 되려고 광분하는 퇴영적 현실을 사납게 증오했다. 선대의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얍삽하게 내버린 채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타성에 찌든 재벌 3~4세들은 이민화에게는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극혐의 대상이었다.


이민화의 사인은 부정맥으로 알려졌다. 쉽게 얘기하자면 심장마비다. 나는 오늘날의 암울한 시대상황 또한 그의 가슴에 과로와 스트레스 못잖게 견디기 어려운 부담과 압박을 가해왔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망국적인 공무원 증원 정책에 열을 올려왔다. 공무원 한 명의 월급과 연금을 대려면 수많은 국민들이 허리띠를 죽어라 졸라매야만 한다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경제적 분석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문제의 본질은 비대하고 방만해진 공공부문은 혁신과 도전에 그야말로 쥐약이라는 부분에 있다.


문재인 정권이 공무원 숫자를 한 명씩 늘릴 때마다 한국사회는 혁신과 도전의 무풍지대였던 조선왕조 시대로 더욱더 맹렬하게 역주행을 감행했다. 길을 넓히는 대신 지게를 만든 게 대표적 혁신이고, 3년 동안 산발한 채로 죽은 자의 무덤을 지키는 것이 제일 담대한 도전이었던 송시열의 나라 봉건 조선으로….


물론 지금도 사회 일각에서는 나름 도전과 혁신을 시도한다.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청은 반도체 국산화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일종의 ‘반도체 백일장’을 연다는 소식이다. 어쩌면 우리는 갓 쓰고, 도포 입은 고색창연한 조선시대 선비가 열심히 먹을 갈은 다음에 백지 위에다가 굵은 붓글씨로 반도체 설계도를 그려나가는 기상천외한 광경을 머잖아 목격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혁신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냥 엽기일 뿐이다.


회상이 아니라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이제는 심지어 북한마저 우수한 인재들이 노동당 간부가 아닌 유능한 엔지니어가 되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의 머리 좋은 젊은이들의 꿈은 전도 유망한 스타트업 창업이고, 바다 건너 섬나라 일본에서는 노벨상의 꿈을 불태우며 연구실에서 날밤을 지새우는 과학기술자들이 허다하다. 다들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마음은 21세기 너머를 준비한다. 반면에 한국의 21세기는 오직 달력 속에만 존재할 따름이다.

 

필자는 오래전에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다. 돈과 시간도 없으려니와, 개봉되는 한국영화들마다 절반은 「이수일과 심순애」 코드이고, 나머지 절반은 「전설 따라 삼천리」 감성인 연유에서이다. 미래를 향한 당찬 도전과 창의적 혁신을 선도해야만 할 문화예술이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가장 먼저, 그것도 확실하게 도전정신과 혁신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된 분야가 돼버렸다. 그 칙칙한 폐가 주변을 굳이 돈과 시간 써가며 기웃거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세상은 과거를 회상하는 99명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1명이 바꾸고 변혁시키기 마련이다. 필자의 오래된 소신이다. 이민화 회장이 사라짐으로써 바야흐로 한국사회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99명만 오롯이 남게 되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환율과 바닥없이 폭락한 주가는 이에 대한 시장의 소리 없는 곡소리일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나는 고 이민화 회장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1명이 너무 늦기 전에 한반도 남쪽에 꼭 나타나주기를 바란다. 미래를 상상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만 도가 트고 몸이 닳은 99명을 데리고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성과물은 오로지 상조회사 차리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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