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느닷없는 귀환
반기문 전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이 다시금 언론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출범을 제안하면서 당해 기구를 총괄할 수장으로 반기문 전 총장을 추천하자 청와대가 손 대표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가 현재까지 연출됐기 때문이다.
필자의 성미가 너무나 급하다고 나무라지 마시기를 바라며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밝히도록 하겠다. 이 일은 너무나 해답이 자명한 문제인 까닭에서이다. 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발족될 소위 범사회적 기구의 수장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은 예의에도 어긋날뿐더러 경우에도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확신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혹하고 이기적인 염량세태가 적나라하게 작렬하는 판국에 어른들이 도대체 무슨 염치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소신의 중요성과 일관성의 가치를 가르치겠는가.
1987년의 6월 시민항쟁의 성과로 만으로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대선정국만 시작되면 대권주자 스스로의 어리석은 선택에서 비롯됐든, 아니면 일부 작전세력의 정치공작으로부터 말미암든 간에 평소에는 비교적 멀쩡했던 인물 한 명이 나중에 꼭 바보가 되곤 해왔다.
바보 잔혹사의 한국정치
1987년에는 재야인사 백기완 선생이 결과적으로 바보가 되었고, 1992년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바보가 되었으며, 1997년에는 이인제 당시 국민신당 대통령 후보자가 바보가 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2대째 바보가 되었고, 2007년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패자 배역에 더해서 추가로 바보 노릇까지 맡았다. 2012년에는 안풍의 주역이었던 안철수 전 서울대학교 융합대학원장이 야권후보 단일화 와중에서 바보의 지위로 강등당했다.
2017년 봄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연속 바보가 되고 말았다. 안철수 전 대표 입장에서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부분은 이전까지의 바보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외로이 나 홀로 바보가 되지는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안철수와 더불어 듀엣으로 바보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반기문 전 총장과 안철수 전 대표는 책의 주인공이 아직 생존중임에도 위인전이 출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기문과 안철수 두 사람의 인연이 나름 깊은 셈이다.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발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에는 다음번 대선에서도 바보 혹은 바보들은 분명 나타나거나 또는 만들어지리라.
반기문 전 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국제적 명망가이다. 반기문이 분단국가 남한의 외무부 장관에서 출발해 세계정부로 종종 추켜세워지는 국제연합의 총수로 화려하게 영전‧도약하는 데에는 모국의 신장된 위상과 국력, 미국 등 서방세계의 전폭적 협조, 그즈음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긴밀한 도움이 크게 역할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의 지원과 후원이 아무리 두텁고 지속적이어도 본인의 깜냥과 노력과 역량의 뒷받침이 없으면 절대로 올라갈 수 없는 직책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영광의 자리다. 반기문은 여기저기 흠집이 난 빈티지 물건(?)일지언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어 다니는 명품이자 숨 쉬는 브랜드였다.
BTS 부럽지 않았을 지구촌의 슈퍼스타 반기문은 2017년 연초에 고국으로 금의환향한 지 불과 1달도 지나지 않아 호남 사투리로 ‘모지리’가 되었다. 반기문 자신의 오판과 미숙함도 나빴거니와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열성적으로 추종하는 극렬 친문세력이 대선 레이스에서 문재인의 유력한 경쟁자로 손꼽혔던 반기문 전 총장을 정조준해 조직적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을 전개한 것이 반 전 총장에게 치명적 결정타로 작용했다.
서울에서 콩이면 북경에서도 콩이다
반기문은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횡행하는 악의적 가짜뉴스들에 힘입은 디지털 인민재판과 인터넷 조리돌림의 단연 전형적인 희생자였다.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중차대한 통치권을 특별한 고민과 오랜 준비과정 없이도 자기 이름값 하나로 쉽고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단히 착각한 반기문의 무책임한 요행심리의 발현 역시 반기문의 망신스러운 정치적 몰락에 톡톡히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버닝썬과 아레나 등의 서울 강남 지역의 내로라하는 고급 클럽들을 무대로 유명 한류 아이돌 스타 그룹인 빅뱅의 막내 승리가 연루돼 벌어진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영국 BBC를 비롯한 해외 유수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벌써부터 요란하게 장식하는 중이다.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인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바보로 통하면 전 세계 어떠한 국가를 가도 바보 취급을 면하지 못하는 잔혹한 세상이 4차 산업혁명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로 21세기이다.
한국의 대선은 개표 끝나기 무섭게 미국 트위터 본사의 잭 도시 최고경영자(CEO)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전갈을 보낼 정도로 전 세계의 이목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지정학적 빅 이벤트이다. 북한에 핵이 있다면 남한에는 대선이 있다.
냄비란 모멸적 별명이 아깝지 않게 평범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대권후보 반기문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인상들과 그를 둘러싸고 빚어진 웃기는 촌극들이 일찌감치 기억에서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나라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의 뇌리에는 반기문이 등장하는 어이없는 실수담과 친문세력이 그를 주연으로 삼아 만들어낸 엽기적인 블랙 코미디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
니가 가라 대륙
이제 미세먼지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단숨에 끌어내릴 지경으로 한국인 제일의 관심사이자 걱정거리로 대두했다. 청와대가 중국 습근평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연합 부류의 친여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집권세력의 심기를 살피느라 온라인 게임 용어로 일제히 버로우(Burrow)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반도로 징그러울 만큼 집요하게 대량으로 계속 유입되는 유해한 미세먼지의 ‘원저자’가 다름 아닌 중국임을 정확하게 인식‧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손학규 대표가 씨를 뿌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열매를 거둘 범사회적 논의 기구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현실적으로 마련해 실천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는 차량 공회전 자제 당부하고 방진 마스크 착용 권유하는 내용의 유인물들을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다니는 게 거의 전부라고 하여도 필자의 섣부르고 근거 없는 예단과 악담만은 아닐 게다.
결국 중국이라는 사납고 버릇없는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무거운 십자가는 반기문의 몫으로 어영부영 전가될 듯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묻고 싶다. 60만 국군의 통수권자이며 10만 문빠의 최고존엄인 문재인 대통령의 애처로운 하소연도 먹히지 않는 나라가 G2 국가의 하나인 거대 중국이다. 따라서 턱받이도 제 손으로 차지 못하는 바보로 친문세력이 신나게 묘사해놓은 반기문 전 총장의 의견과 요구를 그 어느 중국 정부의 관리가 진지하게 경청하고 존중해주겠는가? 개그맨 정준하가 말했던 오래전 유행어를 빌리면 이는 반기문을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짓일 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력은 코드 맞는 여의도 정치건달들 연봉 수억 원짜리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 이사장으로 앉히라고만 헌법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라를 위해서 절박하다면 북한을 향해서건, 미국을 향해서건, 중국을 향해서건, 일본을 향해서건, 그리고 러시아를 향해서건 “No!”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라고 수천만 유권자들의 손으로 직접 뽑아놓은 권력자가 대한민국 대통령임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 사람들은 명징하게 깨달아야 한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그가 벼슬 맛에 중독된 속물적 사람이 아니라면, 뭔가 감투를 쓰지 않으면 단 하루도 견디지를 못하는 유형의 삿된 인간이 아니라면 청와대를 겨냥해 이렇게 큰소리로 당당하게 선언해야만 할 것이다.
“니가 가라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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