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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원②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 현직 교사가 들려주는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진짜 학교 이야기, 두 번째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1-18 18: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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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3요소는 영토와 인구와 주권이다. 나는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3대 주체를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라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은 교육 현장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학부모 또는 학부형이라는 부정기적 주체들이다. 이들은 강한 듯싶으면서도 약하고, 약한 듯싶으면서도 강하다. 한국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하는 권상우의 아버지가 소심한 약자의 위치에 놓인 학부모를 대표한다면, 이종혁과 이정진의 어머니들은 극성스러운 치맛바람을 무차별적으로 휘날리는 오만한 권력자로서의 학부모를 상징한다.

확실한 사실은 학부모들의 평균 학력이 점점 더 높아짐과 정비례해 그들이 교육에 행사하는 입김과 간섭 역시 나날이 커져왔다는 점이다. 교사들 입장에서 얻은 것은 직업의 안정성이요, 잃은 것은 학부모들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인 셈이다.

필자는 영향력은 즐기면서 책임은 좀처럼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PD들의 복사판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닐 학부모들에 관해 전대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학부모는 한국사회 모든 「내로남불」의 끝판왕인 이유에서이다.

내로남불은 범국민 스포츠


전대원 선생은 다른 모든 분야는 바담 풍 하면서, 교육을 향해서만 바람 풍 하라는 요구에 대해 정면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공희준 (이하 공) :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이 교육을 통해 기대하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순을 드러내왔습니다. 남의 자식은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내 자식은 입시교육에 치중하라는 게 학부모들의 전반적이고 적나라한 요구사항입니다. 평균적인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이러한 자가당착적 바람을 현재의 공교육 체계가 수용하고 소화해낼 수가 있는지요?


전대원 (이하 전) : 인간은 복합적 존재이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 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정체성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라도 신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얘기할 때의, 직장 동료들과 회의실에서 얘기할 때의,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에서 얘기할 때의 얼굴이 각각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공희준 크리에이터께서 저를 상대로 질문하실 때의 모습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가시 돋친 독설을 퍼부을 때의 모습이 각기 다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편입니다.


공 :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실 수가 있어도, 저는 남의 자식은 인성교육 시키고 자기 자식은 입시교육 시키라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위선적 행태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학생들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입장은 아닌 터라 저는 학부모들의 위선을 용서 안 해도 됩니다. (웃음)


전 : 제가 현재 신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공 : 어느 신도시에 거주하시는지 대략적 좌표만 찍어주세요.


전 : 서울 외곽에 자리한 신도시입니다. 요즘에는 신도시를 건설할 때면 임대아파트도 꼭 짓도록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분양 아파트 입주자들이 이를테면 영구임대 아파트 거주자들을 꺼려합니다. 분양 아파트 사람들은 수준 차이가 나서 그렇다면서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분양 아파트 내에서도 급(Class)이 갈린다는 점입니다.


공 : 평수가 다르니 그럴지도 모릅니다.


전 : 꼭 평수의 크고 작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컨대 초등학교에도 사립초등학교와 공립초등학교가 있는 것처럼 아파트에서는 민간 건설사들이 지은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기업들이 건축한 공공 분양 아파트의 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삼성 래미안이나 LG 자이에 거주하는 사람이 LH 공사가 지은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공 : 최근에는 그와 같은 차별과 배제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같은 동의 같은 층수 안에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섞어놓는다고 어느 건설회사 사장님께서 저에게 귀띔해주셨습니다.


전 : 공공 분양 아파트 주민들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라고 주장하면서 일반 분양 입주자들이 공공 분양 거주자들을 무시하는 풍토를 거세게 비판합니다. 한데 차별과 배제에 분노하는 공공 분양 아파트 입주자들이 이번에는 임대주택 입주자들을 또 차별하고 무시하는 ‘내로남불’의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제가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솔직한 욕망은 뭘까요?


공 : 자기 자식 좋은 대학에 가는 거죠.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그것 빼놓고 자식에게 바라는 게 또 있겠습니까? 그 말 많고 탈 많은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필자도 몇 년 있으면 학부모가 된다. 나는 남한사회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조폭의 일원이 되는 일처럼 끔찍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한국 학부모들의 행동거지는 문신 없는 조직폭력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탓이다.


전 : 그렇죠. 만약에 우리나라 학교의 목표가 전교 1등 학생에게 모든 자원과 지원을 몰아줘서 해당 학생을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된다면 공희준 편집위원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공 : 내 새끼가 전교 1등이면 몰라도, 전교 1등이 아닌 바에는 세상에 그런 엽기적인 경우가 어디 있느냐면서 당장 학교로 찾아가 교장실이고 교무실이고 다 뒤집어엎을 것 같습니다.


전 :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방금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입니다. 교사들 또한 여느 노동자들처럼 근무하는 시간이 한정돼 있습니다. 더욱이 교사도, 학생도, 학부형도 모두 똑같이 하루가 24시간입니다.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다닙니다. 전교 1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학생도 있고, 혹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만 생활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가령 아빠와만 생활하는 학생이 아버지 출근시간이 워낙 이른 탓으로 말미암아 아침에 그 학생을 깨워줄 사람이 마땅치 않는 까닭에 학교에 지각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럴 경우 제가 아침에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잠에서 깨워야 합니다. 교사로서 열정이 넘칠 때는 학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학교로 데려오기도 하고요. 사람이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열정에는 한계가 따릅니다. 이럴 때는 전교 1등 학생과 아버지와만 함께 사는 학생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한 명의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만도 하루 24시간으로 모자란 판국인데….


공 : 같은 핏줄인 부모도 못 바꾸는 아이를 선생님이 무슨 재주로 바꿉니까? 흐흐흐.


전 : 그렇게 말씀하시면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이 가는 곳이지 선생님이 가는 데가 아니니까요. 공희준님 말씀대로만 하자면 교사인 저야 오히려 심신이 아주 편안해집니다. 나한테 맡겨진 교과목 수업만 열심히 진행하고, 나머지 일들은 사무적으로 처리해도 되거든요. 하지만 학생들은, 학부모들은, 사회는 학교와 선생에게 그 이상을 바라왔습니다.


공 : 엇나갈 수 있는 아이를 비뚤어지지 않게끔 바로잡고 부축해주는 것 또한 학교 선생님들의 역할이어야만 하겠죠. 왜냐? 일류대 나온 한 사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엇나간 상태로 사회에 나온 범죄자 한 명이 사회에 줄 수 있는 충격보다는 작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도적 관점으로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대단히 실용적 관점에서 견해를 피력했을 뿐입니다.


교육은 0.1 특권층의 전유물도, 상위 10프로의 독점물도 아니다


「스카이 캐슬」은 평범한 90퍼센트를 우리 사회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인간 내지 투명인간으로 노골적으로 취급한다는 측면에서 교육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는 기획 취지와는 달리 대중에게 불평등한 계급사회를 당연시하게끔 하는 그릇된 선입관을 심어주고 있다. 사진은 문제의 드라마의 한 장면

전대원 선생과의 대담은 내가 그에게 질문하는 것 이상으로 그가 필자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전대원 선생이 학생들을 평소에 가르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그와 같은 방식을 인터뷰에 고스란히 반영하고 싶었던 내 욕심 때문이었다.


전 :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학생이 엇나가지 않도록 막으려면 선생님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시나요? 사실, 부모조차 아이가 비뚤어지는 걸 막기가 무척 힘들지만요.


공 : 저는 학교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통제하고 제어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 : 그래도 노력은 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공 : 노력을 하기는 해야죠. 안 하는 것보단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전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입시교육과 인성교육의 양립이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인성교육 강화와 입시교육 주력은 상호 모순되기 쉬운 개념입니다. 질문에서 지적해주진 것처럼 자가당착적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상위 0.1퍼센트의 견지에서, 상위 10퍼센트의 관점으로 교육 현실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교육은 그 0.1프로의 욕망과 10프로의 눈높이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희준 크리에이터께서도 그걸 원하시나요?


공 : 0.1프로의 욕망은, 10퍼센트의 눈높이는 나머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 가지 말고 기술이나 배우라는 겁니다.


전 : 기회의 균등은 오랫동안 자주 강조되어온 개념입니다. 이른바 SKY를 비롯한 상위 11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숫자는 전체 학생수의 10퍼센트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탐내는 대학들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율은 5프로 아래로 줄어들 터이고요. 이 10퍼센트 안에, 5프로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게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맹점입니다.


문제의 드라마에 대한 논의는 이미 모두 끝났다고 필자가 생각하던 차에 전대원 선생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스카이 캐슬」의 견고한 성벽을 향해 석포를 한 번 더 발사했다.


전 : 입시제도가 절대평가에 근거하는 덕분에 사람들이 노력만 하면 전부 다 선망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면야 어떤 수단방법을 써서라도 아이들의 성적을 위로 올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현실은 상대평가입니다. 남들보다 내가 1점이라도 더 높아야 성공하고 합격하는 시스템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삶과 기준을 공교육이 보장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학교더러, 선생님들한데 ‘동그란 네모’를 그려내라고 다그치는 꼴입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라고 자꾸만 강요하고 압박해서는 그거야말로 진짜 안 되는 겁니다. 공교육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달성 가능한 목표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스카이 합격률을 잣대로 들이미는 순간 불가능의 영역에 진입하고 맙니다.


공 :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을 병행할 수는 없다는 말씀인가요?


전 : 이는 병행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입시교육이 공교육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입시는 공교육의 결과일 뿐입니다. 목표가 아닙니다. 제가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한 교과목을 성실하고 부지런히 가르치다가, 사회 과목에 흥미와 적성을 보이는 학생을 만나 더 열심히 가르친 결과로 해당 학생이 명문대에 갈 수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지만 처음부터 “우리 학교는 전교 1등을 서울대에 보내는 게 목적이다”란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결과로서의 입시와 목적으로서의 입시의 선후관계를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열심히 가르친 결과로 서울대를 가는 것이 되어야지. 서울대를 목적으로 열심히 가르친다면 그건 공교육의 본질과는 맞지를 않습니다. 한마디로, 입시교육은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전대원 선생님은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소위 주요 과목인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은 또 어쩐지 필자는 궁금했다.


전 : 만약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을 반드시 병행해야만 한다면 여기서의 입시교육은 지성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공 : 지성교육은 또 뭔가요?


전 : 지성교육은 교양을 가르치는 교육을 가리킵니다.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데는 몰라서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계층의 인권을 무시한다면 타고난 성격이 못 된 탓이어서는 아닙니다. 몰라서 그럴 따름입니다.


공 : 인천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한 중학생이 동급생들에게 집단폭행당해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사한 비극적 사건은 맥락이 다르지 않을까요? 사람이 맞으면 아프다는 건 애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도 남에게 맞아봤을 테니까요. 아무리 애들이라도 사람이 맞으면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는 없습니다. 좀 동떨어진 주제이기는 한데 그래서 저는 소년범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지지합니다. 아니면 벌을 받기에 아직은 너무 이른 나이라면, 처벌을 잘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 받도록 하던가요. 일정한 나이에 달하면 군대를 가는 것처럼, 과거에 죄를 지었던 미성년자들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처벌을 받게 하자는 뜻입니다. 나쁜 짓 저질렀으면 애어른 구별 없이 당연히 벌 받아야지. (③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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