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을 위한 떼창
“영식이가 요즘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
오영식 전 한국 철도공사(KORAIL) 사장에 관해서라면 시시콜콜한 개인적 사실까지 세세하게 잘 알고 있는 어느 선배가 몇 년 전 해줬던 말이 요 며칠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그러면서 필자는 오영식을 위한 변명을 해야겠다는 엉뚱한 오기가 발동되었다.
철도노조야 오영식 전 사장이 자신들의 철밥통에 튼튼한 장갑판까지, 그것도 초강력 복합장갑으로 둘러줬으니 이몽룡 한양으로 떠나보내는 성춘향 심정으로 오 전 사장을 향해 설령 산울림의 「가지 마오」를 목 놓아 떼창으로 부른다 한들 전연 어색함이 없으리라. 전국철도노동조합 같은 공공부문의 거대 기득권 노조들에게는 오영식이 그들만의 프레디 머큐리일 수도 있기 까닭에서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에게 오영식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등에다 매어준 낙하산 타고서 공기업 사장으로 운 좋게 내려왔다가 노조의 눈치만 살피다 불명예 퇴진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운동권 데모꾼 경력의 586 정치인 정도로 여겨질 확률이 현실적으로 매우 크다.
그럼에도 나는 오영식 전 사장을 이대로 그냥 놓아줄 수는 없었다. 오영식에 대한 한 가지 널리 퍼진 오해만큼은 불식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오해가 뭐냐? 오영식이 무식하다는 것이다.
오영식을 재발견한 계기는
나는 오영식 전 사장이 여러 명의 경제 전문가들과 어울려 대담한 내용을 정리할 기회가 예전에 있었다. 미시적인 부분들에서는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경제학 연구자들에게 비록 미치지 못했으나, 오영식 전 사장은 비교적 막힘없이 대담에 임하면서 예상 밖의 내공과 실력을 과시했다. 당시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오영식 전 철도공사 사장과는 20년 넘게 절친한 관계를 이어오던 선배의 이야기가 친구를 의도적으로 띄워주려는 허튼 빈말은 아닌 듯했다.
오영식 의원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제2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약칭 ‘전대협’의 의장을 지냈다. 1기 전대협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3선 국회의원인 이인영 의원이고, 3기 전대협 의장은 임종석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오영식은 당내 입지에서는 이인영에게 밀리고,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임종석에게 뒤쳐졌다. 그가 작년에 치러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중요한 배경이었다. 똑같이 컷오프를 당했어도 임종석은 청와대의 2인자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오영식은 정치적 비중을 따지면 한직에 속하는 철도공사 사장으로 나름 백의종군을 해야 했다.
철도공사 사장은 나 같은 힘없고 가난한 평범한 서민대중들에게는 어마무시하게 높다란 지위다. 연봉만 해도 엄청난 고액이다. 그러나 시속 300 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고속열차의 운행과 안전 관리에 더해 승객들의 편의까지 책임져야만 한다면, 명색이 왕년에 백만 학도의 우러름을 받아본 전대협 의장까지 한 입장에서는 선뜻 자청해서 맡고 싶은 자리는 아닐 성싶다.
지나친 자신감이 화가 되다
한데 어떤 동기와 연유에서인지 오영식은 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야인 신세로 다시금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성을 노리며 절치부심해왔을 오영식이었다. 그가 코레일 경영자로서 이뤄놓은 명확한 성과물을 보여준다면 유권자들로 하여금 오영식 전 사장을 괄목상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영식 전 사장은 지난 19대 국회의 전반기에 지식경제위원회의 야당 몫 간사를 역임했다. 후반기에서는 산업자원통상위원회에서 꾸준하게 활동했다. 오영식은 그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일 ‘근태형’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역 정치인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경제통’으로의 변신을 부단히 꾀했다. 경제통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으로 표상되는 ‘정치통’들과는 다르게 순간적 재치와 구수한 입담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공부 안 하고 날로 달기 어려운 영광스러운 비공식 훈장이다.
문제는 낡은 구체제가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이 개혁을 시도할 때이듯, 체계적 학습과는 담을 쌓아온 전대협 지도부 출신의 586 정치인들의 본격적 시련은 공부에 맛을 들이는 순간 발아한다는 데 있다.
공부하지 않았던 이들이 마음을 다잡고 책 한 권을 뗄 적마다 주위에 자랑스럽게 하는 얘기가 있다. 머리가 깼다는 소감이다. 말인즉슨, 자신감이 새롭게 생겨났다는 소리다.
사람이 없던 자신감이 생겨나면 이제껏 엄두도 내지 않아온 분야에 과감하게 손을 대게 된다. 필자는 이와 같은 현상이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체계적 공부를 시작한 오영식 전 철도공사 사장에게도 닥쳤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다른 586 정치인들이었으면 좀 더 편안하고 무탈하며 태평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꽃보직에 꽂아달라고 청와대 수뇌부에 요구했을지 모른다.
경제통으로 변신하려던 오영식의 오랜 꿈은, 기업경영에도 정통한 586 정치인으로 거듭나려던 오영식의 야심찬 포부는 강릉역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로에서 아찔하게 탈선한 강릉선 KTX 열차와 함께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향후에 크고 작은 기차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면 오영식의 이름은 어김없이 연관검색어로 등장할 테고, 따라서 2년 후에 여의도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계획 역시 허무하게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영식은 ‘실패한 닉슨’으로부터 배워라
낡은 구체제가 개혁에 나설 때에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허나 위기가 싫다고 개혁을 외면하면 조만간 망하는 법이다. 어떤 인물이 괜히 공부를 시작하는 바람에 겪지 않아도 될 시련을 겪을 바에야, 그냥 지금처럼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인간은 머잖아 구제불능의 패배자(Loser)가 되기 십상이다.
공화당의 닉슨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케네디에게 패배한 수난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마저 낙선하였다. 그럼에도 닉슨은 와신상담한 끝에 미합중국의 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가,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의 파고에 휘말려 임기 도중 낙마하고 만다. 패배가 역설적으로 약이 되고, 승리가 도리어 독이 된 경우다.
오영식 전 사장은 1967년 2월생이다. 이인영도, 임종석도 오영식보다는 연상이다. 그러므로 오 전 사장에게 재기를 위한 시간은 여전히 차고도 넘친다. 나는 그가 이왕 시작한 경제 공부를 인내심을 갖고서 계속하길 바란다. 어정쩡한 공부는 독이 되지만, 충분한 공부는 무조건 100프로 보약이 되기 때문이다.
586 세대가 꼰대가 되고, 구태가 된 건 변화와 성찰의 덕목이 결여된 탓이다. 공부는 성찰의 씨앗이고 변화의 밑거름이다. ‘허동준 연판장 소동’의 부끄러운 흑역사를 말끔하게 지울 수 있는 길도, KTX 탈선 사건의 치명적 실수를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만회할 수 있는 비결도 오직 공부, 또 공부뿐임은 오영식 전 사장 본인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독자들의 근거 없는 의심과 억측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잠깐 말미에 덧붙이자면 나는 오영식 전 사장과 사적인 대화를 딱 한번 나눠봤다. 아마 1990년대 후반 무렵이었으리라. 오영식은 그즈음 한쪽 발목 부위에 하얗고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고서 힘겹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양심선언 차원에서 남김없이 이참에 이실직고하도록 하겠다.
“안녕하십니까, 오영식입니다.”
“예, 〇〇〇 형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상이 끝이다. 글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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