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20대, 문재인 정부에 아직 등 돌리지 않았다
공희준 (이하 공) : 요즘 이영자 탓으로 정부여당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십대와 영남과 자영업자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잇따른 여론조사 결과들 때문입니다. 비교적 최근에까지 20대였던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고 청년정치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정당인의 시선에서 우리나라의 20대 유권자들이 정말로 문재인 정권에 이반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고강섭 (이하 고) : 저는 현재의 20대 청년층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전히 지지는 하지만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고는 봅니다.
공 : 실망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고 : 현재의 20대는 격심하고 극단적인 경쟁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 아래서 성장하고 생활해왔습니다. 젊음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살벌하고 건조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에 몇 가지 공정하지 못한 일들을 보여줬습니다.
공 : 어떤 일들이죠?
고 :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충분한 사전 여론수렴 절차나 선수들에 대한 진정성 어린 설득 작업 없이 갑작스럽게 남북 단일팀으로 변경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청년들은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죠. 이와 같은 실망감들이 내재되고 누적되어오다가 결국 경제 문제에서 폭발의 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전면적으로 버렸다고 속단하기에는 아직은 크게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필자는 정치인 고강섭에게 박상기 현 법무부 장관이 주도가 되어 동계올림픽 무렵에 취한 암호화폐, 곧 비트코인 거래에 대한 사실상의 계엄령 조치도 청년층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도록 유도한 요인들 중 한 가지임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금전 문제는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일인 터라 부득이하게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공 : 경제에는 다양한 부분과 요소들이 있습니다. 수출도 있고, 투자도 있고, 환율과 고용도 있습니다. 더욱이 물가도 있고요. 청년들이 한국의 수출 실적이나 대기업들의 설비투자 현황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는 않은데요.
고 : 청년들에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당연히 취업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들이 취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 위원회까지 구성했습니다. 관련된 제도와 정책들도 여럿 내놨고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 분위기입니다. 더군다나 더 중요한 문제는 정부가 한국경제의 근본을 고치지는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년들은 정부가 통계적으로 잘 잡히는 부분들에만 주로 신경 쓰고 여기는 것이죠.
공 : 근본이 뭔가요? 제가 유명한 지승호 선배님과는 달리 근본 없는 유사 인터뷰어인지라 근본 얘기만 나오면 왠지 기가 죽어서요. (웃음)
고 : 산업구조의 개혁을 가리킵니다. 신규 고용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토대와 체질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산업구조의 혁신은 없이 취업자의 숫자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해하는 양상입니다.
공 : 정부여당에서 요즘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표현조차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거라고 봅니다. 물론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공개적으로 정책의 파탄을 인정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변하지 않은 지점은 있습니다.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 기조입니다.
고 :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할 수 있는 부분이 그것뿐일 테니까요.
공 : 저는 그걸 ‘문재인식 레이거노믹스’라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본래의 레이거노믹스는 부자가 잘나가면 서민들도 잘나간다는 이론이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그걸 공무원이 잘살면 일반 국민들도 잘산다는 식으로 살짝 비틀어 번안한 셈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공공부문 일자리들이 심하게 말하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겁니다. 전등 끄기, 풀 뽑기. 이런 걸 청년들의 일자리랍시고 내놓고 있는 지경입니다. 저는 어쩌면 20대들이 자기 발등 찍은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공무원 늘리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에 가장 열광한 집단이 20대 청년들이니까요. 하지만 한 국가의 자원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가자원을 과도하게 독식하면 민간의 몫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20대는 청년인 동시에, 아니 청년이기 이전에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럴 줄 몰랐다”면서 억울해하는 건 어른으로서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요?
부모의 열광이 자녀의 열광이 되다
질문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서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 연유에 대한 해명에 굳이 나서자면 나는 20대는 더 이상 소년소녀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른이라고 믿는다. 그런 탓에 필자는 자식들의 학점 문제로 대학교에 찾아오는 일부 학부모들을 그야말로 주접의 극치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오고 있다.
고 :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제가 대학에서 강사로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때 자주 썼던 표현이 “기성세대에 의한 착취”였습니다. 지금의 20대가 창의력이나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아주 뛰어납니다. 그러나 이전의 다른 어느 세대와 견주어볼 때 기성세대로부터 혹독한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공 : 세대가 계급이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고 : 그게 좀 역설적인 게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세대들이 엄청나게 투자를 해온 세대입니다. 투자의 목적은 자명합니다. 투자한 만큼의 안정된 직장을, 고소득 직업을 자식들이 갖기 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들의 그와 같은 바람이 청년들을 옥죄는 프레임이 됐다는 거예요. 20대가 왜 공무원에 열광하느냐? 그들의 부모들의 공무원에 열광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 고강섭의 설명을 들으니 21세기 한국은 “청년은 중년의 거울”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청년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청년은 청년인 동시에 어른이기 때문이다. 단지, 아직 늙지 않은 어른일 따름이다.
공 : 저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가 않습니다. 20대는 청년인 동시에 어른입니다. 10대 중고교생들이 부모 세대의 요구에 굴복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와 납득이 될 수가 있겠지만, 20대는 어른이잖아요. 같은 어른들끼리 누가 누굴 비추고 반영합니까?
고 : 청년들에게 “당신들도 어른 아니냐?”고 윽박지르기에 앞서서 우리나라의 사회생태계에 대한 천착과 분석, 고민과 성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원천적으로 도전을 불허하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무엇보다도 도전에 실패했을 경우 그 다음에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설령 도전에 실패했다고 해도 재기할 수 있는 구조와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다시금 도전에 나설 청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용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번 실패하면 ‘실패자’란 낙인이 찍히고 그것 때문에 더 깊은 실패의 나락으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청년들 사이에 만연하면서 젊은이들이 자꾸만 의존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청년들이 왜 순응하는 선택을, 적응하려는 결정을 하겠습니까? 청년들이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아이들과 달리 무서움을 아는 존재잖아요. 걱정을 하는 사람이고요. 리스크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닮아간 것이죠.
공 : 능력은 아직 기성세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의식은 기성세대만큼이나 성숙했다는 의미인가요?
고 : 기성세대라고 해서 기꺼이 도전에 나서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 역시 청년들에 못잖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몹시 위축돼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우리나라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찾고 싶습니다. 청년세대들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대해 모르지 않습니다.
공 : 청년들이 용기에 앞서서 두려움부터 배웠다고 봐야겠네요?
고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착취’라는 표현을 쓴 까닭입니다. (잠깐 말문을 닫았다가) 부모세대는 청년들에게 자꾸만 겁을 줍니다. 안정된 직장을 잡지 못하면 어디에 가서도 사람대접 못 받는다는 식으로 청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포감을 주입해왔습니다. 청년들이 부모들이 짜놓은 이 프레임 속에 완전히 갇혀버렸습니다. 더욱이 부실한 사회안전망은 구태여 부모들의 눈과 귀를 거치지 않아도 청년들 스스로도 지겹도록 목도해온 터이고요. 뭔가에 도전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힘든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의 운신폭을 엄청나게 제약하고 있습니다.
공 : 결론적으로 고강섭 팀장님은 20대가 문재인 정부에게 아직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거네요.
고 : 예. 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율은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청년이 청년을 돕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공 : 어떻게요? 나중의 회복은 처음의 쟁취보다 더 벅찬 과제인데.
고 : 그러자면 청년들의 실질적 삶의 문제들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노력과 에너지가 산술적인 일자리의 수치들을 증가시키는 데에 매몰돼 있습니다. 구조와 원인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있고요. 대한민국의 현실적 좌표가 어떻습니까? 청년 자살률 세계 1위입니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전부 다 포기한 세대라는 함의를 지닌 ‘3포 세대’가 이제는 낯설고 색다른 신조어도 아닌 형편입니다. 원인은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사회적 안전망의 총체적 부실과 부재에 있습니다. 허점투성이인 사회안전망을 충실하게 확충하고 효과적으로 확보해준다면 청년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굴 수 있습니다. 청년들로 하여금 과감한 도전의 길로 나서도록 이끌어줄 수가 있습니다.
공 :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는 돈의 문제로 귀결되곤 합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용도에 소요될 재원은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조달해야 할까요? 문재인 정부가 하듯이 기업을 더 쥐어짜야만 할까요? 아니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공무원들 월급을 깎아야만 할까요? 청년들 호주머니를 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 : 역사적으로 국가운영의 문제는 세금 문제와 항상 결부되어왔습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증세에 찬성합니다. 서울시에서 동을 뜨고 경기도에서 호응을 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는 정책이 청년수당 또는 청년배당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책들이 사회안전망 강화의 첫걸음이라도 생각합니다. 대신에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데 상응해 청년들 스스로 담대한 도전과 실천과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면 응당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환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열린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사회안전망 강화의 정당성과 시급성이 더욱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공 : 청년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 실제로 관여해보신 경험은 있나요?
고 : 제가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에 참여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청년수당이 주제로 떠올랐을 때 무이자 대출 형식을 채택하자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래야 청년수당을 받은 청년들이 나중에 돈을 벌었을 경우에 대출금을 갚아나갈 수가 있고, 그렇게 상환된 대출금을 다른 청년들을 위해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년이 청년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자는 게 저의 확고한 소신입니다.
페미니즘은 죄가 없다
정치인 고강섭은 기본적으로 ‘청년=약자’라는 견해를 견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공식에 좀처럼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도는 나가야겠기에 개문발차를 무릅쓰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공 : 똑같은 20대 청년, 혹은 30대의 광의의 청년이라도 여성들과 비교해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에 더 큰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에 경도돼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실 제가 어젯밤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조웅천 의원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언론보도를 네이버에서 봤습니다. 참 흥미로운 현상이 무슨 연예계 관련 가십도 아닌데, 기사를 읽은 누리꾼들 중에서 이례적으로 30대 여성의 비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게다가 정부여당이 눈에 띄게 밀리는 다른 댓글싸움과 달리 여기에서는 현 정권 지지자들이 나름 선방하고 있더라고요. 즉 30대 여성들이 왕년에 H.O.T.나 젝스키스 좋아하듯 조국 수석을 응원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우리 오빠 지키자!”는 식이죠. 조국 수석이 내일모레면 환갑인데…. 솔직히 말해, 저는 그게 정상적인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정치가 치명적으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불길한 징후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있었던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역시 남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등 돌리게 만드는 데 딱 좋은 일이거든요.
고 : 저는 문재인 정부가 여성주의에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일부의 시각과 지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회 곳곳에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짙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그런 잘못된 문화와 풍토가 바로잡히는 일종의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평가합니다. 20대 남성들이 정부여당을 외면한다면 그건 페미니즘 탓이 아닙니다. 다른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분석과 진단이 뒬 수가 있습니다.
공 : 페미니즘이 ‘남자의 난’을 야기한 주범이 아니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가 빠지도록 부추겨댄 진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고 : 지금의 20대 남성 세대는 경쟁의 고통과 상처를 가장 민감하게 느껴온 사람들입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와 정비례해 공정성에 대한 갈망과 염원 또한 크고 뜨거워지기 쉽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20대 남자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공정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것이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리 있는 답변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문재인 정부에게는 분명 억울한 구석이 있을 수 있었다.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커다란 공분을 불러일으킨 특혜채용과 고용세습은 엄밀히 따지자면 민주노총에게 귀책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자 현 집권세력의 최대주주로 통한다는 점이고, 그러므로 아들의 허물은 아비의 허물이듯이 민주노총의 과오는 문재인 정부의 과오로 국민들에게 인식된다는 사실이었다. (②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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