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스파르타 군대의 테베 전격 점령이 현지 지휘관인 포이비다스의 독단적 처사임을 강조하려 애썼다. 스파르타 정부는 포이비다스를 지휘관직에서 해임한 다음 벌금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테베에 진주한 스파르타 군대를 철수시키지는 않았다. 라케다이몬인들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얄팍한 짓거리는 나머지 그리스 사람들의 스파르타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우월한 군사력 앞에서 그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속으로 조용히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스파르타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테베에 들어선 새로운 참주정은 아테네로 망명한 민중파의 거두인 안드로클레이데스를 마침내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스파르타는 망명한 민중파 지도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라며 아테네를 압박했다. 아테네는 과거에 스파르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테베의 도움을 크게 받은 적이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다면서 스파르타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테네에 우호적인 역사 서술을 줄곧 지속해온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 당국의 이러한 판단을 고매한 인격의 발로로 추켜세웠다. 실상은 테베에 민주정이 회복되어야 아테네에게 유리한 대외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비스마르크 식의 영악한 현실정치적 셈법이 낳은 결정이었다.
펠로피다스는 아테네로 도피한 테베의 민주정 인사들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그는 더 늦기 전에 테베를 되찾는 역사적 사명에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한다며 선배 망명객들을 선동했다. 펠로피다스가 귀감으로 제시한 인물은 아테네의 트라시불로스였다. 테베의 망명지를 과감하게 박차고 나온 트라시불로스는 스파르타가 수립한 꼭두각시 괴뢰정권을 타도하고서 아테네인들을 외세의 침탈과 독재의 사슬로부터 동시에 해방시킨 걸출한 구국의 영웅이었다.
동을 뜨는 일은 젊은 펠로피다스의 몫이었다. 실제로 일을 추진하는 역할은 고국에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해둔 노련한 망명객들의 담당이었다. 망명객들로부터 궐기 계획을 전달받은 테베의 민중파 지도자들은 기민하게 행동에 착수했다. 이를테면 테베의 최상위층에 속하는 카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저택을 반란자들의 거점으로 기꺼이 빌려줬다.
펠로피다스가 국내진공 계획을 추진하는 동안 본국에 잔류한 에파미논다스는 하릴없이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테베의 청년들과 스파르타 병사들 간에 레슬링 시합을 정기적으로 주선했다. 에파미논다스가 프로모터 자격으로 개최한 투기 경기에서는 덩치가 우람한 테베인들이 보통은 어렵지 않게 이기곤 했다.
핵심은 에파미논다스의 반응에 있었다. 그는 시합에서 승리해 우쭐해하는 테베의 젊은이들에게 왜소한 체격을 가진 스파르타인들의 노리개 신세가 된 조국의 상황이 부끄럽지도 않느냐며 큰소리로 호통을 쳐댔다. 청년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공공연하게 자극해 그들을 분발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는 스파르타의 반(半)식민지가 돼버린 테베의 청년들을 의협심 가득한 그리스판 장군의 아들들로 부지런히 키워나가는 데 진력했다.
드디어 거사일의 아침이 밝았다. 테베로 은밀히 잠입하는 가장 위험한 임무는 펠로피다스를 위시한 12명의 청년들이 맡기로 했다. 생사를 같이하기로 굳게 맹세한 이들 모두는 테베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이었다. 12명의 젊은 선발대 겸 열혈 결사대원들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평범한 사냥꾼 복장을 하고서 테베로 향하는 걸음을 떼었다. 카론은 그가 사전에 약속한 것처럼 자기 집으로 청년들을 맞이할 준비를 신실하게 진행해나갔다.
12명 가운데 단 한 명도 동요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었으리라. 힙포스테니다스는 음흉한 악인은 아니었으되 그렇다고 불굴의 용자도 아니었다. 막상 테베로 돌아오자 그의 자신감은 순식간에 공포심으로 바뀌었다. 힙포스테니다스는 봉기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하고는 친구인 클리돈을 시켜 동지들에게 작전 취소를 급히 제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클리돈은 친구의 부탁을 신속히 실행하고자 집으로 돌아가 말을 타려고 했다. 클리돈의 아내는 남편이 자칫 멸문지화를 부를지도 모를 위험한 음모에 연루되는 것이 두려웠던 탓으로 오늘날의 자동차 시동키에 해당할 말고삐를 클리돈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부부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거사의 성패를 가를 일차적 관건인 금쪽같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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