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은 호남 정권이 맞다
문재인 정권은 권력의 상층부는 부산경남 출신의 출세하고 성공한 엘리트들이 구성하되, 기층의 지지기반은 호남 태생의 평범한 유권자들로 이뤄지는 대단히 특이한 분업체계를 형성해왔다. 호남 유권자들은 부산경남 출신 엘리트들에게 실질적 형태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제공한다. 부산경남 엘리트들은 호남 태생의 유권자들에게 “문재인 정권은 호남 정권”이라는 일종의 정신승리와 비슷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필자처럼 고향이 호남이 아닌 사람들의 제3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호남인들의 정신승리가 종종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호남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겪어온 지독한 차별과 배제로 점철된 수난과 형극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와 같은 소박한 정신승리의 기쁨까지도 호남 유권자들로부터 깡그리 빼앗아가는 짓은 엄청나게 인색하고 몰인정한 소행일지 모른다. 소박한 정신승리가 안겨주는 일시적 마취효과마저 강제로 박탈당한다면 호남과 호남인들이 직면한 객관적 삶의 조건은 가일층 열악하고 고통스러워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요즘은 ‘문재인 정권=호남 정권’이라는 대다수 호남 유권자들의 인식에 흔쾌히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입장을 명확히 정리했다. 더욱이 문재인 정권의 참담한 실패가 구체적이고 불가역적인 현실로 나날이 굳어져가는 지금, 호남이 문재인 정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홀로 오롯이 전적으로 껴안겠다고 자청하니 호남인들에게 정말 매우 감사할 노릇이다.
특정한 정권의 몰락은 원칙적으로 결국에는 국민 전체의 공동책임이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호남인들 스스로가 문재인 정권의 총체적 실패에 관해 “내 탓이오!”를 큰소리로 외치는 모양새가 희비극적으로 펼쳐지는지라 나는 솔직히 적잖이 안도가 되는 터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왜 호남의 실패로 자리매김할 예정일까? 문재인 정권의 독주와 오만에, 무능과 무책임에 호남은 제때 제동을 걸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호남의 압도적 지지와 무조건적 응원은 문재인 정권의 개혁성과 도덕성을 강화하기보다는 문재인 정권의 전면적 부패와 타락에 되레 가속도만 붙여주고 말았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호남이 호랑이고 문재인 정권이 사람인지, 아니면 역으로 호남이 사람이고 문재인 정권이 호랑이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확실한 부분은 둘이 더불어 존재하는 모습이 이제는 호랑이 등에 사람이 올라탄 형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의 등에서 내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권 또한 호남의 등에서 내려오기가 불가능해졌다. 호남과 문재인 정권은 드디어 완벽한 운명공동체가 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주를 갑자기 찾은 건 자신이 호남이라는 호랑이에서 내려올 수 없는 처지임을 은연중에 자인한 격이다.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의 호남 출신의 내로라하는 유수의 정치인들조차 본인들의 지역구에서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가 몹시 어렵게 된 구도는 호남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권의 등에서 설령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게 된 찜찜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통렬하고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호남과 문재인 정권은, 문재인 정권과 호남은 갈 수 있는 데까지 함께 가보는 수밖에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호남을 상대로 부산경남 출신의 기득권 엘리트들이 저위험-고수익(Low Risk-High Return)의 정치적 부재지주(不在地主) 노릇마저 급기야 태연히 하게 된 배경에는 영남당 간판으로는 대권을 잡을 수 있어도, 호남당 브랜드로는 정권을 창출할 수가 없는 한국정치 특유의 고질적인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가 자리해 왔다. 문재인 정권이 명색이 호남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호남 유권자들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표정을 짓는 연유이다.
오랫동안 호남과 영남의 관계는 영락없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였다. 그러므로 호남의 전략적 선택의 절반은 뜨거운 정의감에서, 나머지 절반은 영남에 대한 전통적 공포감에서 비롯되었다.
대구경북은 포장지도 영남이고, 내용물도 일관되게 영남인 정치를 해왔다. 부산경남은 콘텐츠는 영남이나, 디자인 측면에서의 영남 색깔은 상대적으로 옅었다. 어차피 모든 정권은 영남 정권이기 마련이었던 강고한 영남 패권주의 체제에서 이왕이면 영남색이 덜한 부산경남 계열의 영남 정권을 선호해온 건 호남인들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정치사회적 자위권의 발동이었다. (②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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