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홍콩은 미얀마가 아니다
공희준(이하 공) :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30 세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한국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의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중국을 중요한 나라로 여기는 586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입니다.
김영선(이하 김) : 한국에게 어느 나라가 제일 중요한지 우리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는 행동 자체가 어리석은 짓입니다.
공 : 젊은 세대는 중국이 구한말의 청나라처럼 한국을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김 : (단호한 어조로) 중국은 한국을 먹을 계획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그런 근거 없는 두려움을 품고 있는지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공 :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하도 거칠게 갑질을 해댄 탓이 아닐까요?
김 : 작가님께서는 중국이 홍콩을 먹었다고 보시나요?
공 : 중국이 홍콩을 먹으려고 하기에 요즘 시끄러운 것 아닌가요? 홍콩에서 우산시위가 촉발된 원인은 중국에 대한 공포심이니까요.
김 :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고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본질을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이 홍콩을 강제로 점령한 게 아닙니다. 영국이 중국의 땅을 빌리는, 즉 임대하는 조차조약의 시효가 만료되어서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았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초적 사실조차 무시되고 있어요. 그러니 중국이 홍콩을 먹었다는 물구나무 선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제국주의 국가 시절의 전통이 아직도 뿌리깊이 남아 있습니다. 자기네가 뿌려놓은 게 있으면 악착같이 회수하려는 탐욕스러운 근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영국이 중국과의 홍콩반환 협상이 진행되던 당시에 내건 요구조건이 홍콩을 중국에 돌려준 이후에도 50년 동안 홍콩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본디 중국인인 홍콩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영국인으로 인식하게 된 연유입니다.
영국은 홍콩을 단물을 뽑아먹을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영국과는 다른 의도와 목표를 갖고서 홍콩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홍콩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매체들을 비롯한 전 세계 대다수 언론이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생략하고서 홍콩과 관련된 보도들을 무분별하게 내보내왔습니다.
공 : 홍콩의 상황을 군사쿠데타가 발생해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미얀마의 혼미한 정세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김 : 저는 홍콩의 상황과 미얀마 사태를 동일시하는 단선적 시각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홍콩에서 극렬한 시위가 전개된 근본적 원인은 실업률 상승에 있습니다. 홍콩이 중국에서 제조된 저가의 공산품들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교역창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능은 지금은 상하이나 광저우로 이동해갔습니다. 홍콩의 정정은 군부가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킨 미얀마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홍콩은 인권유린이나 정치적 자유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로 말미암아 시민들이 길거리로 일제히 쏟아져 나왔어요.
중국에게 한복은 유용한 돈벌이 수단일 뿐
공 : 조그마한 홍콩을 상대로도 마치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이 극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간을 보는 중국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을 무리하게 집어삼키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신가요?
김 : 중국에게 한국은 만만한 먹잇감도, 탐스러운 먹을거리도 아닙니다. 중국이 한국을 차지하려면 당장 미국과의 일전을 불사해야만 합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입니다. 한국은 과거에 중국 측에서 굳이 윽박지르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중국에 책봉을 요청하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구태여 피를 흘리며 한국을 도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 : 한국이 중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는 경로가 고조선 때처럼 중국이 물리력을 앞세워 한국으로 쳐들어오는 시나리오보다 오히려 더 섬뜩하게 들리네요.
김 : 우리나라 원화와 중국의 위안화의 연동성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의존도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생생하고 치명적인 증거입니다. 소형 선박은 큰 배가 근처로 항해해가면 설령 날씨가 좋아도 풍랑을 겪게 됩니다. 거대한 선박이 물결을 헤치며 지나갈 때 생겨난 파도가 작은 배의 선체로 밀어닥칠 테니까요. 만약에 큰 배와 작은 배가 같은 바다에서 자주 마주치는 관계에 있다면 작은 배는 큰 배의 영향을 불가피하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 : 한국이 중국에 먹힐 거라는 구체적 물증으로 제시되는 사례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아파트를 사게 되면 층, 즉 라인(Line) 단위로 사거나 아니면 아예 동 전체를 통째로 매입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시중에 나돌고 있거든요.
김 :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부동산을 싹쓸이한다는 주장은 주로 우파 유튜버들로부터 제기돼왔습니다.
공 : 진보좌파가 반미 장사로 재미를 봤던 것처럼, 보수우파는 반중 비즈니스로 이득을 챙긴다는 뜻이네요.
김 : 그렇죠. 더욱이 지적하신 부동산 매입 방법은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인들이 만들어 성행시킨 방식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 일찍부터 적응한 홍콩인들과 대만인들이 중국 본토에 들어가 애용했던 수법입니다. 그걸 중국 본토인들이 눈요기로 배워 한국에서 재활용하는 것이죠. 대만인들과 홍콩인들이 중국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주택조합과 비슷한 형태의 집단을 결성해 거액의 자금을 모았습니다. 그 돈을 갖고서 공동명의로 아파트 한 동을 통으로 사들였습니다. 그렇게 뭉텅이로 사들이기 때문에 집의 호수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그들은 매입한 주택과 토지를 부동산 관리업무를 전문으로 대행하는 회사에 위탁했다가 집값과 땅값이 오르면 되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뒀습니다.
공 : 부동산을 다루다 보니 홍콩이 중국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이 도출되네요.
김 : 중국은 웬만한 성 한 개의 인구가 1억 명입니다. 그들이 홍콩에 못된 생각을 품었다면 진즉에 모종의 결판이 났을 거예요. (잠시 짬을 두었다가) 우리는 중국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기술과 성취를 죄다 탈취해갈 거라는 걱정에 휩싸여 있습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중국 현지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시청해보면 역사물 같은 데에서는 심지어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착용한 모습마저 천연덕스럽게 나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금 이 순간’ 시청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역사적 셈법이나 고도의 정무적 포석 따위는 중국인들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드라마에 한복을 입은 인물이 등장하면 중국이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무슨 공정의 일환으로 파렴치하게 훔쳐가려 시도한다며 분노하기 일쑤입니다. 중국이 시청률을 높이려는 장삿속으로 한 일을 한국은 무시무시한 정치적 음모가 개재된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중국인들이 돈을 생각할 때 한국인들은 지레짐작으로 역사부터 따지고 있어요.
공 : 중국이 웃자고 코미디를 찍으면 한국은 그걸 진지한 다큐멘터리로 해석하는 형국이네요. (④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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