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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국가에 문고리 권력은 없다 - 전략과 용단의 리더십 : 테미스토클레스 (11) - 육·해상 단속 및 유통·소비단계 자원관리 정책 강화 등 ‘어린 살오징어 생산·유통근절 방안’ 발표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1-04-29 17: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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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는 소아시아로 도망가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탓이었다. 일례로 페르시아 왕은 이 불구대천의 원수의 목에 2백 탈란톤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1탈란톤은 은화 6,000개에 해당하는 값이었으니 사냥꾼들 입장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걸어 다니는 로또와 마찬가지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사방에서 그를 옥죄는 위험한 올가미들을 피해 아이올리스에 자리한 어느 작은 성채로 은신했다. 성채의 주인으로 테미스토클레스와는 오래전부터 친분들 다져온 니코게네스는 상당한 갑부였던지라 현상금 때문에 절친한 지인을 페르시아 관헌에 팔아넘길 인물이 아니었다. 더욱이 니코게네스는 페르시아 궁정 안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해놓은 까닭에 테미스토클레스를 위한 구명운동에 나서줄 수도 있었다.


전성기 페르시아에는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문고리 권력의 농단은 있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구글)

페르시아에서는 남성이 자신과 관계된 모든 여성들을 외간남자 눈에 함부로 띄지 않도록 철통같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풍습이 보편화돼 있었다. 따라서 신분이 높은 여성들은 집밖으로 외출할 경우에는 사방이 장막으로 가려진 수레를 타는 게 보통이었다. 이 부분에 착안한 니코게네스는 테미스토클레스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가마에 태워 대왕이 살고 있는 수도로 보냈다. 영문을 모르는 가마꾼들은 유일한 승객인 그리스에서 건너온 미인이 왜 이리 무겁냐고 입속으로 투덜거렸다.

 

페르시아에서 임금 다음의 권력자는 국왕의 경호를 책임진 천인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300」은 페르시아 국왕을 보좌하는 관리들을 극도로 무능하거나 또는 엄청나게 교활한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허나 페르시아 신료들이 그토록 형편없는 인간들 일색이었다면 알렉산드로스에 앞서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세 대륙에 그 세력권이 걸친 광대한 대제국을 결코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서술된 테미스토클레스와 페르시아의 천인대장 아르타바노스 간의 접견 장면은 품위와 격조가 흘러넘치는 바람직한 대화와 소통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아르타바노스가 페르시아는 자유와 평등보다는 복종과 충성을 숭상하는 곳이라면서 대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한 연후라야 왕과의 접견이 허락될 수 있다고 강조하자 그리스에서 망명한 이방인은 페르시아 최고존엄의 권력과 명성을 더욱더 찬연하게 빛내주고자 이곳까지 고생스럽게 달려왔다고 대답하며 왕관의 알현이 우선임을 넌지시 주장했다.

 

아르타바노스는 스스로의 신원을 밝히기를 완곡하면서도 완강히 거부하는 남자의 정체를 니코게네스로부터 이미 귀띔을 받았으리라. 그는 낯선 사내가 누구인지를 굳이 더는 까다롭게 캐묻지 않고 왕과의 면담을 흔쾌히 주선해줬다. 전성기의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는 현대 남한의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에서 차례로 목격된 오만하고 음습한 문고리 권력이 제 세상 만난 듯이 활개 치지 않았다.

 

이즈음 페르시아는 그리스와의 전쟁을 도발한 크세르크세스가 붕어하고 그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지배하고 있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부친이 그리스를 침공했다가 목숨만 겨우 부지해 살아 돌아온 치욕적 사태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왕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사나이가 수많은 페르시아 장병들을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수장시킨 테미스토클레스임을 보고를 통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테미스토클레스 역시 자기의 정체가 일찌감치 드러났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므로 페르시아 수뇌부와 아테네군의 전직 총수는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치는 상황이었다. 왕이 망명객을 살해할 의사가 있었다면 테미스토클레스는 국경을 넘는 순간 진즉에 분명 죽은 목숨이 되었으리라.

 

이제 남은 절차는 숙적을 친구로 맞이하는 합당한 명분을 갖추는 일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연달아 대승을 거둔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본토로 진격하지 못하게끔 막아낸 과거의 공로를 부각시키며 지금 자기를 죽이는 건 적의 적, 즉 친구를 죽이는 백해무익한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될 뿐이란 논리를 국왕 면전에서 개진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예전에 도도네에서 받았던 신탁에 의하면 본인이 제우스 신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제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전부 ‘위대한 왕’으로 불리므로 신탁이 완벽히 맞아떨어진 셈이라는 너스레마저 천연덕스럽게 떨어댔다.

 

견강부회도 이런 뻔뻔스러운 견강부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거래의 갑은 이론의 여지없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다. 그는 선친이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서도 무릎 꿇리지 못했던 그리스 최강의 영웅으로부터 너무나 쉽사리 충성의 서약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못한 일을 해낸 아들은 그 승리감과 성취감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테미스토클레스의 손을 당장 덥석 부여잡으면 왕의 체통이 깎이는 일이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특별한 언질을 주지 않은 채 테미스토클레스를 자리에서 물렸다. 그리스인이 사라지고 페르시아 사람들끼리만 남게 되자 그는 억지로 참았던 기쁘고 들뜬 마음을 마음껏 바깥으로 표출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왕은 아리마니오스 신에게 테미스토클레스처럼 탁월하고 유명한 그리스 출신 인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모국에서 쫓겨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이윽고 침대에 누운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밤새 세 차례나 잠에서 깼다고 한다. 생전의 아버지가 분한 마음에 이불킥을 하느라 잠에서 깼다면. 아들은 “테미스토클레스가 이제는 내 편이다!”라고 신나게 만세를 부르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환희와 만족감으로 제대로 잠을 못잔 군주와 달리 망명객은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억누르느라 밤새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테미스토클레스에게 페르시아 왕과의 밀당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게다가 공개된 그의 정체를 전해들은 도성 경비병들의 눈초리는 무척이나 차갑고 매서웠다. 그리스인에 대한 페르시아 인민대중의 평균적 민심을 반영한 서늘한 표정들이었다.

 

아침 일찍 날이 밝자 테미스토클레스는 다시금 어전으로 향했다. 또 다른 천인대장 록사네스는 그를 보자자마 대뜸 막말부터 퍼부었다. 그리스와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무수한 부하들이 눈앞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처연하고 침통하게 바라봐야만 했던 페르시아 군대의 노장에게 그리스인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증오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긴장감이 감돌던 어색한 분위기는 아르타크세크세스의 익살스러운 농담 덕분에 단번에 화기애애하게 반전됐다. 왕은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즉시 200 탈란톤을 갚겠다고 말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마땅히 현상금은 자수한 범인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200 탈란톤 갖고는 성에 차지 않을 테니 더 많은 포상금을 지급해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하면서 테미스토클레스의 현재 심경이 어떤지를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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