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과 독일축구의 공통분모는
영국, 정확히는 잉글랜드의 전설적 축구 영웅인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90분 내내 부지런히 공을 쫓아 뛰어다니다가 결국에는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가 있다.
독일에게는 최상의 찬사이자, 독일 국가대표팀과 축구장에서 격돌한 다른 나라 선수들한테는 악몽 가득한 저주와도 같았을 리네커의 이 명언은 한국시간으로 2018년 6월 27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 F조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축구 리그 토트넘 훗스퍼의 간판 스타 손흥민이 이끄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독일연방공화국 대표팀에게 이 경기에서 ‘2 : 0’의 점수로 이론의 여지없는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독일이 복병 중의 복병일 한국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기 직전까지 승승장구해왔던 비결은 선수 개개인의 충실한 기본기와 더불어 팀 차원의 탄탄한 조직력이 주효했다. 만약 한국에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세계적인 스타 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한국에 덜미를 잡히지 않았으리라. 독일에게는 설상가상 격으로 그날 시합에서 한국의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맡았던 조현우 선수는 그야말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친 듯한 선방을 보여줬다.
모든 방패를 꿰뚫는 창인 손흥민과,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인 조현우가 한국팀에서 나란히 맹활약하고 있었으므로 독일로서는 무척이나 운이 나빴던 셈이다. 독일인들에게는 2018년의 카잔의 참사가 1940년의 영국 항공전이나, 30만 명의 독일 육군이 궤멸되는 것으로 종결된 1942년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만큼이나 치욕스러운 패배일 수가 있다.
필자가 이미 지나간 러시아 월드컵 축구 이야기를 왜 이렇게 지루하게 다시 꺼내고 있느냐? 지금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비유하면, 정세균 현 국무총리를 독일에 빗댈 수가 있는 이유에서이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여름이 저물 쯤에 정당들의 월드컵이라고 칭할 수 있을 대통령 후보 경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정세균 총리는 기본기가 탄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본기에 탄탄한 선수들의 플레이는 대개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세균은 화려한 개인기로 승부하기보다는 탄탄한 조직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해왔다. 따라서 정세균 식 정치에는 짜릿함도 없고, 박진감도 없다. 밋밋하고 평이하다. 독일 축구가 주요한 경쟁 상대인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유럽의 프랑스나 네덜란드에 비하면 축구팬들에게 흥미가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대신에 한국에게 호된 봉변(?)을 당하기 이전의 독일 축구는 늘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해왔다. 정세균 총리 또한 어떠한 형태로건 정치권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독일이 설령 우승을 놓쳤을 때에도 8강권 안에는 항상 들어간 것처럼, 정세균은 당수를 하건 총리를 하건 장관을 하건 언제나 주류로 꾸준히 자리매김해왔다.
이재명도 안 되고, 추미애도 안 되면
올해 4월 7일 수요일에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 판도와 직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정권심판을 표방하는 야당이 승리하면 비문 후보로 유권자들에게 인식되어온 이재명 경기지사가 별다른 이변 없이 집권당의 대선 후보로 무난히 선출된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대로, 여당이 공천한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되면 이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정권을 재창출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완전히 판명 났던 친문세력의 부활의 신호탄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즉 어정쩡한 스탠스의 이재명이 아닌 명실상부한 진문 정치인이 여당 대권주자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가 확고히 형성되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뒤끝을 지질하게 작렬시키고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추미애 전 의원이 될 것이다.
문제는 보궐선거 다음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재명 대세론에 한층 더 탄력이 붙을 것임은 물어보나 마나이다. 반면에 여당이 이긴다면 내로남불의 위선과 적반하장의 오만 같은 문재인 정권의 치유불능의 각종 고질병들이 재차 기승을 부리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가 여권에게는 오히려 독이 든 성배가 돼버릴지 모른다.
더군다나 추미애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부추기기로는 조국보다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사람이다. 그런 추미애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되는 날은 정권교체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날로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지면 불안하고, 이기면 더 불안한 선거가 요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인 연유이다.
2002년에 저 악명 높은 후단협이 등장한 배경의 하나로 꼽히는 요소가 예선인 경선과 본선인 대선 간의 간격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그 후 우리나라 주요 정당들의 대통령 후보자 선출 일정은 선거를 서너 달 가량 앞두고 진행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차기 대선은 그 간격이 반년으로 도로 늘어난다. 게다가 개월 수로는 반년이지만, 그 반년이 햇수가 변하는 반년이다. 심리적으로, 1월과 7월 사이보다는 금년 9월과 명년 3월 사이가 훨씬 더 긴 것처럼 체감되는 법이다. 올해 선출한 대선후보로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그 중간에는 유례없이 힘들고 길게 느껴질 한국판 ‘불만의 겨울’이 끼어 있다. 경선을 마친 다음 겨울 나고 해 바뀌어 치르는 대선이다. 입학과 졸업, 설 명절과 이사철까지 겪을 것 다 겪으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인 상황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경과하는 동안 비문 후보 이재명이든 친문 후보 추미애든 가상의 야권 단일후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선출 직후의 이른바 컨벤션 효과 기간을 제외하면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를 돌릴 때마다 어김없이 완패하는 후보를 갖고서 군말 없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경우는 딱 한 가지뿐이다. 정권재창출을 드러내놓고 포기했을 때이다. 친노가 폐족으로 영락하던 2007년 가을의 대통합민주신당과, 박근혜가 탄핵당한 후과로 지리멸렬한 2017 봄의 자유한국당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주도집단이 정권재창출의 꿈을 쉽사리 단념하지는 않을 성싶다. 그러므로 2021년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뽑아놓은 후보가 그해 연말이 다가도록 확실한 승리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들은 모종의 특단의 대책을 세울 개연성이 짙다. 그 특단의 대책이란 다들 익히 짐작하듯이 다름 아닌 후보 교체이다. 경선불복에 수반되는 이인제 학습효과? 벌써 20년 전 옛날 얘기다. 여의도 정치꾼들과 소위 정치 고관여 계층을 빼면 기억도 안 나고, 관심도 안 가는 철지난 과거의 일일 따름이다.
그래서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실질적이고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시점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제(諸) 후보자들의 벽보가 길거리에 부착되는 시기가 될 걸로 예견하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의 신화적 포수이자 명감독이었던 요기 베라의 말을 빌리자면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경선이 진짜로 끝날 무렵이면 여권을 통틀어 시쳇말로 기스가 크게 나지 않은 유력 대선주자는 정세균 총리 정도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정세균이 마지막에 웃는 ‘정마웃’ 게임으로 과감하게 개념규정한 까닭을 독자들께서는 이제야 아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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