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과 벌컨」, 정당이 납치된 시대의 죽비소리
장훈 교수는 훌리건들 반대편에는 벌컨(Vulcan)들이 포진해 있다고 역설한다. 벌컨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시민들을 뜻한다. 장훈 교수는 벌컨들이 소란스러운 지금의 정치판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채 깊은 침묵 속에 빠져버렸다고 「훌리건과 벌컨」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개탄했다. 훌리건의 득세와 벌컨의 퇴조 현상은 상식적 민심과는 나날이 동떨어져가는 이른바 당심에 무기력하게 휘둘려온 최근 20여 년 동안의 한국 정당정치의 족적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강희욱 기자
202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윤창하 선생 (사진=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해 항일정신을 일깨운 윤창하 선생을 202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윤창하 선생(1908.4.9.~1984.12.29.)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독서회 활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항일정신을 일깨웠다.
선생은 1926년 광주고등보통학교(이하 광주고보)에 입학해 광주고보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에 동맹휴학이 일어나자, 적극 동참했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광주중학교(일본인 학교) 학생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생 박기옥을 밀친 것을 발단으로,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선생은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보 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독서회 중앙부와 광주고보 독서회의 간부로 활동했다.
11월 3일 체포되어 1930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시위운동으로 금고 4월에 집행유예 5년,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독서회 활동으로 징역 2년을 각각 언도받았다.
두 번째 판결로 인해 앞의 집행유예 판결이 취소되어 총 2년 4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옥고 후유증으로 일제강점기나 광복 이후에도 특별한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1984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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