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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기①, “변호사는 피고인이 악마라도 변호해야” - 국선변호인은 국가에 대항하는 변호사를 국가가 돈 주고 사는 일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11-13 12: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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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벌고, 흩어지면 굶는다.” 생계형 단체와 조직이 우후죽순으로 잇따라 출현하도록 부추긴 21세기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시대정신이다. 지금은 그와 같은 생계형 결사체의 무리에 전교조와 참여연대 유형의 내로라하는 노동조합들과 시민단체들도 언죽번죽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약칭 대한변협)는 대한민국에서 단연 힘세고 권위 있는 직능단체이자 전문가 조직이다. 한데 이제는 변호사 사회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민변조차 국민들 사이에서 그 권위와 신뢰도가 바닥을 기고 있을 정도로 변호사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믿음과 기대감이 죽을 쑤고 있는 게 불편하면서도 솔직한 현실이다.

변호사가 바로 서려면 변호사들의 공동체인 대한변협이 바로 서야만 한다. 대한변협이 한국 법률서비스 시장의 공급자와 생산자 모두를 만족시켜줄 신뢰받는 열린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현직 중견 변호사인 김관기 변호사로부터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오전, 서울지하철 교대역 근처에 자리한 김관기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공희준(이하 공) : 문재인 정부가 신줏단지 모시듯 해온 이른바 ‘검찰개혁’은 사공 많은 배처럼 이미 산으로 올라간 지 오래입니다. 더욱이 검찰개혁은 검찰수사를 받을 만한 지위로까지 출세한 한국사회 일부 특권층만이 관계되는 ‘그들만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서민대중은 검사를 만날 일보다는 변호사를 찾을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숫자가 아무리 늘어났어도 좋은 변호사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대한변협은 사법부와 검찰과 더불어 ‘법조 3륜’의 한 축으로 오랫동안 불려왔습니다. 그런데 대한변협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지키는 데만 열중하는 특수한 이익단체 정도로 여전히 여겨지고 있습니다. 검찰과 법원과 달리 개혁의 무풍지대에 머물러온 대한변협이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법률적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개혁과 변화가 필요할까요?

 

변호사의 꽃은 형사변호사


김관기 변호사는 변호사를 국가의 폭압에 맞서서 개인을 지켜주는 사람으로 봤다. (사진=최인호 기자)

김관기(이하 김) : 저는 이제는 변호사들이 법률시장에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의뢰인이 원하는 단계와 수준의 법률 서비스에 딱 들어맞는 변호사와의 만남이 아직도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보비용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사전에 대략 예상은 했지만 인터뷰 도입부에서부터 ‘정보비용’이라는 생소하고 난해한 개념이 등장해 법률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매우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의료보험 즉 건강보험은 국민들로 하여금 약간의 비용을 평소에 꾸준히 납입하면 병에 걸렸을 시에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해줄 병원과 의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법률시장에는 그와 같은 연결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명일 선배 변호사들이 건강보험과 비슷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담당할 법률보험을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한 탓입니다.


법률복지는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고 필수적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국가는 진정한 법률복지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국가에 고용된 변호사를 참다운 의미의 변호사라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공 : 국선변호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검증된 제도 아닌가요?

 

김 : (음성을 낮추며) 그건 본질적으로 악어의 눈물일 뿐입니다. 국가는 형사사법 사건에서 탄압의 기제(Mechanism)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죄인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는 일을 목적으로 탄생돼 운용되는 조직입니다. 국가의 범죄단속 행위가 적정선을 넘으면 억울하게 구속되고 투옥되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탄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태를 문학인의 눈으로 서술한 경우가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입니다. 제가 방금 소개한 책에는 한 선량한 청년이 나폴레옹 숭배자로 엉뚱하게 낙인찍힌 까닭에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몽테크리스토 섬에 갇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 :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암굴왕」이란 제목으로 알려졌던 소설입니다.

 

김 : 프랑스의 형사소송법은 구속기간 제한조항이 21세기인 현재에도 아예 없습니다. 일본도 프랑스와 유사한 상황입니다. 이론상으로는 무제한 구금이 가능합니다. 1995년 3월에 도쿄 시내를 운행하는 지하철 노선에서 발생한 사린가스 테러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공 : 너무 충격적 일이라 잊히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수괴인 아사하라 쇼코가 워낙 극악하고 엽기적인 인간이라 대중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김 : 출근길의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 독가스 테러를 자행한 옴진리교 관계자들을 재판하는 데 15년 가까이 소요됐습니다. 그것도 겨우 1심 재판을 마치는 데만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범인들은 미결수 신분으로 계속 구금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아주 희귀한 사례입니다. 그렇지만 국가는 개인을 향해 압제자로 군림하는 속성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가장 큰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국가의 압박을 당하는 개인을 보호하고 그 정당한 인권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변호사의 꽃은 형사변호사라고 제 후배들에게 일관되게 강조해왔습니다.

 

공 : 형사변호사의 기능이 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변호사는 다 똑같은 변호사로 여겨져서요.

 

김 : 형사변호사란 개인을 위해 국가에 대항하는 일을 핵심적 업무로 삼는 변호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체제와 이념의 성격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권력은 형사변호사를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국선변호사는 개인의 법익을 증진하고자 국가에 대항하는 변호사를 국가가 돈을 주고 고용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엄청난 형용모순인 셈입니다.

 

형용모순을 쉬운 영어로 표현하면 난센스(Nonsense)이다. 김관기 변호사는 차마 거기까지는 기존의 국선변호인 제도를 '극딜'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공 :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 민간이 자율적으로 변호사를 구하는 게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변호사는 자신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수익에 기반을 두고서 변론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변론활동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이 정상적 시스템이 작동도, 존재도 하지를 않습니다. 국민들이 변호사를 필요로 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낡은 전제 위에 법률시장의 구조가 짜여왔습니다. 누구도 건강보험에 상응하는 성격의 법률보험 도입의 필요성을 생각하거나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변호사 숫자가 아무리 증원되어도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변호사 만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게만 느껴지기 쉽습니다.

 

변호사는 나랏돈을 먹으면 안 된다

 

김관기 변호사는 변호사가 호의호식하는 배부른 직업이 돼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그러면 변호사들은 한껏 여유를 부릴 수가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개업한 후배 변호사들의 상당수는 하루 종일 우두커니 책상 앞에 앉아 고객이 사무실을 찾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젊은 새내기 변호사들만이 이러한 애로를 겪는 게 아닙니다. 중견 변호사들의 형편도 별로 낫지가 않습니다.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고객을 맞이할 준비가 항상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만 날리기 일쑤입니다. 그 결과, 절망적인 생활고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변호사도 여러 명 생겨났습니다.

 

변호사에게 중산층 이상의 풍족한 생활이 약속되는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입니다. 변호사들도 새롭게 변화한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변호사 자격증만 있어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와서도 안 됩니다.


저는 수임료로 뭉칫돈을 챙겨주는 부유한 극소수 고객이 아닌, 소액 다수의 의뢰인들로부터 사건을 선임 받아 먹고사는 변호사가 가난한 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편으로, 국가 덕분에 비교적 편안히 살아가는 변호사들이 실제로 있기는 합니다.

 

공 : 괜찮으시면 구체적 실례를 들어주세요.

 

김 : 우선 법률구조공단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염두에 두어온 형사공공변호인도 나라에 의지해 생활하는 변호사 범주에 해당합니다. 현행 국선변호인 역시 당연히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개인파산대리인도 국록을 먹는 변호사군에 속합니다.

 

공 : 개인파산대리인의 인건비를 왜 국가에서 부담하나요?

 

김 : 소송구조를 해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제가 열거한 장치들만으로는 생계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많은 변호사들이 자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 : 다른 생각이라면 혹시 여의도 정치권 진출?


김 : 예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먹여 살리는 사람을 향해 충성심을 발휘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보상체계(Incentive System)는 대가관계를 기본으로 합니다. 받는 것이 있어야 주는 것도 있다는 뜻입니다. 순수한 인간애만으로 이뤄지는 변론은 사실상 없습니다. 변호사의 몸값은 다른 직업과 견주면 아직까지도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여전히 값비싼 변호사의 인건비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할까요? 정답은 보험제도에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보험 또는 변호사 보험을 건강보험을 벤치마킹한 사회보험 개념으로 설계하고 구축할 수 있다는 발상에 저는 흔쾌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법률 서비스가 국가의 통제 아래서 사회화된다면 국가에 대항하는 변론을 하기가 굉장히 곤란해지는 탓입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국가에 대항해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변호사겠습니까? 변호사의 윤리는 일반인의 윤리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악마도 법정에서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게 변호사 사회의 직업윤리입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도, 사회적 지탄을 받는 파렴치범도 변호사의 합당한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신념이, 언론의 자유에 대한 확신이 그리 강하지를 못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변호사들의 자기검열이 횡행합니다. 어느 용감한 변호사가 토착왜구로 내몰린 인물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면 변호사 사무실이 항의전화로 몸살을 앓습니다. 따라서 변호사가 자신의 직업윤리를 충실히 관철하면서 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임료를 지불하는 형식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합니다.


변협개혁을 주제로 성사된 인터뷰는 ‘변호사의 직업윤리’라는 샛길로 벗어났다. 이 샛길은 기대하지 않은 노다지가 도처에 깔려 있는 수지맞는 샛길이었다. (②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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