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이상의 로펌 ‘우리법 연구회’
성남시청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지금부터 열흘 전쯤에 전해졌다. 성남시청 공무원이 시청건물 4층에서 9층을 다녀온 일을 출장으로 처리한 후에 출장비를 얌체같이 챙겼다는 것이다.
똑같은 건물 내에서 왔다 갔다 해도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인정해줘야만 할 경우는 있다. 이를테면 공무원들이 엄청난 무게의 대형 사무용 복합기를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통해 직접 등에 짊어지고 옮겼다면 출장비 지급 정도가 아니라 훈장을 수여해줘야만 옳다. 힘든 육체노동을 기피한다는 점에선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 뺨친다.
그런데 뉴스를 자세히 살펴보니 북카페에서 자료를 몇 개 꺼내온 게 문제의 공무원이 수행한 업무의 전부였던 모양이다. 십중팔구, 이마저 계단이 아닌 승강기를 이용해 이동시켰으리라. 문재인 정권 치하의 한국사회에서 인민대중을 가렴주구로 혹독하게 쥐어짠 결과물인 국민의 세금을 본인 돈처럼 아껴 쓰는 공무원을 찾아내기란 전광훈 목사가 ‘창업’한 서울 성북구 장위동의 사랑제일교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노릇일 듯싶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의 반대말은 “법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범위를 좁히면 평균적인 한국인은 변호사도 아니면서 법 없인 못 사는 사람들이다. 무거운 법률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4층에서 9층을 다녀온 일도 아닌 일로 천연덕스럽게 출장비를 청구할 지경이면 성남시 공무원들의 근무기강이 평소에 얼마나 문란할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 문란함이 은수미 성남시장의 영(令), 곧 말발이 지역 공직사회에서 서지 않고 있는 데서 기인함은 물어보나 마나이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유죄가 확정되리라는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의 예상을 빗나간 판결이었다.
허나 필자는 법정의 선고가 전혀 놀랍지도, 당혹스럽지도 않았다. 민변과 그 엑기스일 우리법 연구회가 김앤장을 능가하는 남조선사회 최강ㆍ최고ㆍ최대의 ‘비공식 로펌’이었음이 날이 가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앤장은 세금이라도 납부한다. 반대로 우리법 연구회는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 명목상으로는 순수 친목단체인 까닭에서이다. 그러고 보니 전두환이 은밀하게 운용한 군벌조직 하나회도 명목상으로는 순수 친목단체였더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은 운명공동체이다. 두 사람이 현 정권의 이너 서클 중의 이너 서클임은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반면에 은수미 성남시장은 운동권 586 출신이기는 할지언정 권부의 실세는 아니다. 그럼에도 운 좋게 기사회생했다. 물론, 은수미 개인의 기사회생은 성남시청의 총체적 난맥상과 기강 해이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권력의 비호 덕분에 자리를 가까스로 유지했다는 불미스러운 평판에 휩싸인 지방자치단체장이 시민과 공무원들 사이에서 권위와 신뢰를 누리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탓이다.
콧구멍은 평등하다
그럼에도 은수미는 살아났다. 어떻게? 필자는 이 대목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급히 소환하고 싶다. 필자는 김어준과 비교하면 돈도, 명성도 없다. 대신에 필자나 총수나 콧구멍은 평등하게 두 개 달렸다. 김어준이 누리는 냄새 맡을 자유와 권리가 필자에게도 존재한다. 김어준 총수는 만약 억울하다면 다음 생에서는 얼굴에 콧구멍 세 개 가지고 꼭 태어나시기 바란다.
필자는 은수미 성남시장이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는 순간, 김경수 경남지사를 구하려는 정권 차원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냄새를 맡았다. ‘김경수 대통령 만들기’ 기획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기에 앞서 기계(Campaign Machine)에 기름칠하는 냄새가 물씬 풍긴 것이다.
큰 그림 즉 대작은 전광석화처럼 단번에 그려지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완성되는 법이다. 그래야 무리수에 동반되는 충격과 반발을 완화시킬 수가 있다. 은수미 무죄는 김경수 무죄를 위한 일종의 기초적 밑그림이었다. 필자의 머리가 아니라 코가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 또한 김어준 총수처럼 머리가 아닌 코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은수미 무죄가 스케치였다면, 이재명 무죄는 배경 그리기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상당히 억울할 수도 있으리라. 그는 김경수 살리기의 큰 그림과 상관없이 무죄를 선고받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축구에서도, 정치에서도 위치 선정이 성패를 가른다. 이재명은 그의 본의와 관계없이 김경수 살리기의 큰 그림에 숨 쉬는 정물로 묘사되도록 위치를 선정당했다. 명심하시라. 선정한 게 아니라 선정을 당했음을.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당장은 이재명에게 불리할 건 없는 위치선정 당하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경수 경남지사를 향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적으로 표시해왔다. 그제 청와대에서 개최된 소위 ‘지역균형 뉴딜’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김 지사에게 어느 때보다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야만 간신히 즐길 수 있는 따스한 승은의 시선을 김경수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거저 득템해왔다.
필자는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범인지, 공범이 아닌지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 솔직히 공범이든, 공범이 아니든 그게 뭔 대수이겠는가? 그를 기어이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현직 대통령의 의지가 저토록 확고부동한데….
김경수 지사의 고등법원 항소심 선고일이 다가오는 11월 6일로 박두했다. 그가 유죄판결을 받으리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세상을, 사회를, 권력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셈이다. 그러므로 11월 6일은 김경수가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아니 선언당하는 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추미애는 추대된다
추미애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참으로 먼 길을 에둘러 돌아왔다. 김경수가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또는 선언당하는 날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는 혹은 던져지는 날이기도 하다. 대선은 김경수, 서울시장 보선은 추미애로 정권 후계구도의 교통정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여권에서 서울시장 후보직을 노리며 출마를 저울질하는 인물은 여럿이다. 당사자들부터가 잘 알 것이다. 추미애는 형식상의 무늬만 경선을 거쳐 시장 후보로 추대될 것임을.
다른 요인과 이유를 다 떠나 추미애 법무장관은 서울시장이 아니면 앞으로 정치를 계속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이낙연을 밀어내고 당대표를 또 하겠는가? 아니면, 여권 핵심부의 역린을 건드리면서까지 막무가내로 대선에 나서겠는가? 그렇다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가겠는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노무현 재단 이사장직이라도 물려받으면 모를까, 서울시장이 되지 못하면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문재인 정권의 호위총국장이 돼버린 작금의 추미애이다.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재명과 이낙연의 본질적 차이는 그들 명의로 개설된 통장에 입금된 돈이 실제로 자기 소유냐, 아니냐에 있다. 이재명의 지지율은 오롯이 이재명의 자산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낙연의 지지율은 그 성격상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를 위탁관리해주고 거둔 약간의 거래 수수료일 따름이다. 그는 일종의 차명계좌 예금주일 뿐이다. 사주의 2세 격일 김경수 지사가 경영권과 자금을 다시 돌려달라고 압박할 때 집권여당의 대외적 당수 역할을 책임진 이낙연 대표가 느낄 바지사장의 비애를 생각하니 필자까지 괜히 가슴이 갑갑해진다.
북경에서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뉴욕에서의 거대한 폭풍우를 불러온다고 한다. 한 성남시 공무원이 청사 4층에서 9층으로 출장 다녀온 사건이 여권의 권력판도에 일으킬 지각변동과 연쇄반응을 필자의 후각세포를 총동원해 잠시 냄새맡아봤다. 모든 콧구멍은 넓다. 그러나 어떤 콧구멍은 좀 더 넓다. 쓸데없이 넓게 생겨먹은 필자와 김어준의 콧구멍이 거기에 해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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