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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패배 앞에는 정치의 타락이 있다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14)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10-08 14: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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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는 개인기와 조직력의 차이였다. 페리클레스가 죽자 아테네는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숨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그가 일궈놓은 광대한 제국도 해체됐다. 반대로 카이사르가 암살당했어도 로마는 쇠망하지 않았다.

 

아테네가 만끽한 제2의 전성기는 알키비아데스의 현란한 개인기에 철저히 의존했다. 그러므로 알키비아데스가 병사들의 급료를 구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리산드로스의 스파르타 해군에게 수치스럽게 농락당한 사태는 그리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전사한 것처럼 알키비아데스를 대신해 제독 자격으로 함대를 지휘한 안티오코스 또한 적병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반면에 상실한 군함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사령탑에 복귀한 알키비아데스는 이순신과는 다르게 13척보다 훨씬 더 많은 전선들을 여전히 거느렸다.

 

조일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달랐던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승기를 제대로 포착했다고 오판하고서 서해 바다로 호기롭게 나아가려다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 왜의 수군과 달리, 명장 리산드로스가 통제하는 스파르타 함대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굳건한 방어태세를 철통같이 유지했다.

 

차별성이 이쯤에서 그쳤다면 아테네에게 찾아온 제2의 전성기는 더욱 오래 지속되었을지 모른다. 칠천량 해전의 패전은 이순신을 대체할 만한 역량 있는 인물이 조선왕국 내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무능하되 교활했던 암군 선조에게마저 확실히 각인시켰다. 허나 안티오크스가 리산드로스의 유인전술에 기만당해 봉변을 당한 일은 아테네인들이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신임을 철회하는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앞서서 알키비아데스의 두 번째 추방과 전쟁의 패배가 있었다. (그림 출처 : 구글)

트라손의 아들 트라시불로스는 아테네 사회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명성과 권위를 떨어뜨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알키비아데스가 무책임한 술고래에게 함대의 지휘권을 위임한 채 향락과 유흥에만 몰두한 탓으로 아테네 함대가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알키비아데스가 군자금을 직접 조달하러 동분서주해야만 하는 상황도, 그가 화류계 여성들과 어울린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사실도 질투심과 권력욕에 눈먼 트라시불로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반대파들은 알키비아데스가 트라키아 지역에 위치한 도시인 비산테 근처의 토지에 성채를 지은 일도 문제를 삼았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애정과 충성심이 진심으로 있었다면 거액을 들여 외국 땅에다 커다란 건물을 올릴 이유가 없으리라는 논리였다.

 

이 또한 실상을 무시한 악의적 음해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예전에 아테네에서 추방당하면서 수중의 재산 역시 전부 몰수된 터였다. 비산테 부근 성채는 갈 곳 없어진 그가 남은 사재를 몽땅 털어 마련한 노후대비용 자산일 따름이었다.

 

중우정치에 중독된 변덕스럽고 어리석은 대중은 순간순간의 감정의 기복에만 충실한 법이다. 아테네인들은 후임 함대 사령관을 새로 선정하는 형식으로 알키비아데스를 해임했다. 알키비아데스가 당한 두 번째 파문은 몇 년 후 엉터리 인민재판에서 대철학자 테스 형, 즉 소크라테스에게 내려질 부당한 사형선고를 예고하는 우울한 전주곡이었다.


또다시 국적 없는 망명객 신세로 전락한 알키비아데스는 트라키아 지방에 독자적 군영을 설치하고서 자체적으로 용병을 모집해 싸움을 계속했고, 곧 수많은 그리스 난민들이 스파르타의 보복과 페르시아의 폭정을 피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 무렵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작게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의 제해권을 둘러싼, 크게는 나라 전체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해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리산드로스 휘하의 스파르타 선단은 유럽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람프사코스 항구에 포진했다. 티데우스, 메난드로스, 아데이만토스 세 명의 장군이 교대로 통수권을 담당하는 아테네 해군은 해협 건너의 갈리폴리 반도에 자리한 아이고스포타모이에서 숙영에 돌입했다.


아테네 육군이 병력 규모에서 압도적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인 페르시아의 대군을 마라톤 평야에서 치러진 전투에서 완파한 비결은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맡는 최고 사령관 지위를 밀티아데스 한 사람에게 일원적으로 몰아준 데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고스포타모이에 주둔한 아테네군 지휘관들은 순번제 지휘체계를 막무가내로 고집했다. 그들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힘으로 말미암아 군법회의에 넘겨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던 선배 장군들의 비극적 말로를 그동안 무수히 목격해온 까닭에 소심한 보신주의 기질과 소극적 복지부동 습성에 완전히 찌들어 있었다. 따라서 과감한 작전 구사와 일사불란한 지휘통솔은 애초부터 기대 난망이었다.

 

일반 병사들의 무질서는 한층 더 가관이었다. 그들은 하선한 다음에는 식수와 식량을 찾아 주둔지를 멋대로 벗어나기 일쑤였으므로 만약에 적이 불시에 기습이라도 해온다면 신속하고 효과적인 응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아테네군은 경박한 오만함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 도취해 거의 매일 바다로 나아가 해협 건너편에 닻을 내린 스파르타 함대에 싸움을 걸었다. 스파르타군은 일체의 대응을 자제하며 수비에만 의연히 주력했기 때문에 출항한 아테네 함대 승조원들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갔고, 마침내 그들은 싸움터로 출전하는 게 아니라 마치 관광지를 구경 가는 것 같은 느슨하고 몽롱한 기분으로 상대편의 정박지로 느긋하고 여유롭게 주기적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당나라 군대가 돼버린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군의 추태와 난장판을 더는 구경꾼처럼 우두커니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말을 타고 아테네 진영에 가서 빨리 정박지를 옮기거나, 아니면 경계를 강화할 것을 충고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테네 함대사령관들 가운데 하나인 티데우스의 모욕과 냉대뿐이었고, 알키비아데스는 돈 주고 되레 뺨맞은 심정으로 씁쓸하게 자신의 영지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는 아테네군의 진지를 떠나며 자기를 수행한 경호원들에게 이렇게 뇌까렸다.


“내가 라케다이몬 놈들을 아테네 녀석들의 먹잇감으로 며칠 안에 던져줄 참이었는데….”


이는 결코 허황된 빈말이 아니었다. 그가 모병해 공들여 훈련시킨 기마대와 투창병들은 스파르타군을 통째로 무찌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라케다이몬인들을 아테네 함대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게끔 강요하기에는 충분한 전력을 자랑했다.


알키비아데스의 예상과 경고, 그리고 우려대로 스파르타 함대는 군대의 숙영지인지 보이스카우트의 캠핑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기율이 난잡하고 문란해진 아테네 함대의 정박지를 전광석화처럼 급습해 2백 척에 이르는 적선을 분멸하거나 나포했다. 스파르타의 날래고 매서운 공격을 피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 아테네 전함은 코논이 인솔하는 겨우 네 척에 불과했다. 잠자다가, 밥 먹다가, 술 마시다가, 또는 한참 잡담과 놀이에 열중하다가 스파르타군에게 사로잡힌 3천 명의 아테네 장병들이 현장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아테네 함대의 주력부대가 전멸하면서 최초의 ‘구주대전(European War)’으로 인류사에 기록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의 승리로 30년 가까이 이어진 대단원의 막을 드디어 내리게 되었다.


아테네는 외항 피레우스와 아테네 시가지를 연결하는 20여 리 길이의 장성을 자진철거하는 굴욕적 조건의 강화조약을 스파르타와 체결해야만 했다. 위대한 페리클레스가 집권하던 시절에 축조를 시작해 완공시킨 이 장성은 아테네의 번영과 강성함을 상징하는 거대한 구조물로서 아테네인들 입장에서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역할을 병합한 구실을 해왔다.


고대의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포대라고 평가될 수도 있을 장성의 강제적 파괴와 철거는 더 이상은 항전할 의지가 없다는 패자인 아테네의 진정성을 승자인 스파르타에게 최선을 다해 증명하기 위한 구슬프고 불가피한 고육지책이었다. 함대를 잃은 아테네에게 성벽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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