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문재인 정부에게 자영업자들은 편리한 희생양
이진화 :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들의 처지는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자본력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영업자들의 대다수가 종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마지못해 퇴직한 다음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다 긁어모아 소규모로 창업전선에 들어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이 영세 자영업자 계층을 희생양 삼아 추진돼왔습니다. 현 정권은 가장 힘이 약하고 저항력도 작은 계층을 정부 정책의 속죄양으로 만들어온 셈입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기간제 근로자들인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이러한 2년짜리 기간제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한 주역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의 전신인 참여정부였습니다. 기간제 근로자 문제는 대한민국 노동현장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본인들이 마땅해 풀어야만 할 기간제 근로자 문제를 힘없고 돈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겨왔습니다. 영세 자영업자와 기간제 근로자들을 을과 을의 투쟁으로 내몬 일이야말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최대 과오이자 최악의 오점일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이 그동안 이기적 면모를 드러내온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배타적 태도가 뚜렷한 증거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대 기존 노조들이 이러한 부분과 관련해 자성과 혁신을 꾸준히 시도해왔음을 국민들께서 기꺼이 인정해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직 위주의 기성 노동조합들도 자기들이 귀족노조라고 비판받고 있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대교체는 노동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젊은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으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는 까닭에서입니다. 젊은 노동자들은 나이든 중장년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창의성을 존중합니다. 젊은 노동자들은 획일적 집단문화와 강요된 조직논리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노동조합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들 젊은 노동자들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배경과 조건에서 젊은 신세대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노동계의 관행과 의식이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바로 한반도 남쪽에 세워진 국가인 대한민국입니다. 노조들은 노동시장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나서서 이를 주도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여건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마련일 서유럽과 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사례들을 허구한 날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대며 개혁의 무풍지대에서 안주하려는 구태의연한 태도와 습성을 이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만 합니다. 고용세습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적폐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 ‘노동자 대단결’의 정신으로 더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폭넓은 여론과 민심의 지속적 지지를 얻어야 발언권이 강화되고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에서는 산업현장의 노동조합은 여의도 정치권의 유력 정당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노조도 정당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사회적 의무를 책임감을 갖고서 회피하지 않고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정정당당하게 온전히 이행하고 실천한 때만이 권리와 자유도 여기에 정비례해 신장될 수가 있습니다.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경영계 역시도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또한 권력을 누리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책임을 다하려는 공적인 사명감을 먼저 체화해야만 합니다. 을과 을들을 대결시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얄팍한 전략에만 지금처럼 탐닉해서는 안 됩니다.
정의당은 망했어도 진보정치는 계속돼야 한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난 4ㆍ15 총선의 결과로 이어졌다.
공희준 :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는 정당들은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예외 없이 궤멸되거나 또는 사실상 몰락했습니다. 그 주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분석하십니까?
이진화 : 진보적 이념과 노선을 내세운 정당들이 총선에서 참패한 본질적 원인은 지지층을 보수 정당에, 정확히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들에 빼앗긴 데 있습니다. 저는 정의당에 국한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의당은 남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지층을 보수 정당에 헌납한 이유는 정의당 내부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의당이 지난 4년 동안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를 과연 진정성 있게 해왔는지 의문을 깊게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의당은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리당략을 알아서 옹호해주는 또 하나의 위성정당으로 충실하게 기능해왔을 뿐입니다.
정의당이 노동자가 아닌 집권세력을 대변해주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작년 여름, 조국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에 부끄럽게도 여지없이 까발려졌습니다. 저는 정당으로서는 정의당을, 정치인으로서는 심상정 대표를 오래전부터 응원해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정의당의 행태는 엄청난 실망감과 어마어마한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명분이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정의당의 표를 정의당 스스로가 깎아먹고, 자신들의 손으로 자기 정당의 지지기반을 허무는 어리석은 짓들을 그분들은 서슴지 않았습니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상황에서는 구태여 정의당을 지지해줄 이유도, 필요성도 더는 없습니다. 이른바 힘 있는 여당을 찍어주면 알량한 실리라고 챙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의당이 사라진다고 해서 노조의 정치세력화 실험까지 덩달아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동계급을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대변하려는 정치집단의 맹아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계속 움트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김훈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라면 끓여낸 냄비의 받침대로 사용되는 세상이 설령 도래하더라도 평등을 향한 인류의 뜨거운 열망까지 식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김훈의 이야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목표해야만 하는 평등은 전통적인 좌파들이 주장해온 평등으로부터 진일보한, 현재의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개념의 평등이어야 할 것입니다.
공희준 : 진짜 노동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화 : 재미없을 수도 있는 얘기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진화 공인노무사는 1980년생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를 고향인 인천광역시에서 모두 다녔다.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서 여러 노무법인에서 공인노무사로 일한 다음 한국노총 인천지부에서 서부노동법률상담소 차장을 지냈다. 현재는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서하 합동노동법률사무소에서 대표공인노무사 겸 감정노동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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