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강조했던 100%국민대통합은 집권후반기에 돌입하면서도 밝은 빛이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사회의 분열요인인 지역 계층 세대 이념간의 갈등을 넘어서 더욱더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보수와 진보 간의 끈임 없는 대립과 논쟁이다.
정치권의 상징인 정당에서부터 우리사회의 나침판인 언론, 엘리트를 양성시키는 교수, 사회구조를 이끌어 가는 시민단체, 성역인 종교단체까지도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뜨겁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마차의 수레바퀴라는 보수와 진보는 서로의 균형이 맞을 때 ‘사회안정’과 ‘국가발전’ 이라는 희망의 짐을 싫어 나를 수 있다.
보수(保守)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전하여 지킴’ 진보(進步)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전적 풀이를 떠나 쉽게 표현하면 보수는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진보는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것이다.
정치철학의 틀로 보면 보수라는 단어를 이론적으로 제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영국의 사상가인 버크(Edmond Burke)로 알려지고 있다. 버크는 그가 저술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pevolotion in France)' 이라는 책 에서 보수주의(Conservatism)란 용어를 언급하면서 “이 세상에는 없앨 가치도 있지만 보존하고 가꿀 가치도 있음”을 피력했다.
이 표현은 프랑스혁명당시 왕권타도를 위해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는 사태를 보며 피력한 사항인데 이때부터 왕권을 수호하려는 세력을 보수주의로,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생각을 가진 세력을 혁명 또는 급진주의(Radicalism)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민족의 보수와 진보의 균형적 가치는 삼국시대에 잘 나타나.>
우리민족의 보수와 진보 사상역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오래 전부터 시작 되어 왔다.. 이론적인 이념이나 정체성은 없었지만 사고와 행동에서 이미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가장 큰 영토와 막강한 힘을 지녔던 고구려는 당시 보수적 사상이 강했던 연개소문이 당나라의 침략을 자국의 힘으로 지키려 했고 같은 핏줄인 신라와 백제의 지원을 얻어 당나라를 멸망시키려 했다. 반면 진보적 사상이 강했던 신라의 김춘추는 고구려보다 약세라는 현실을 뛰어넘어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을 이루어 냈다.
기득권에 대한 권위를 놓지 않고 국가를 지키겠다는 충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 연개소문과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까지 당나라를 끌어들여 목적을 달성했던 김춘추를 떠 올리면서 우리는 국가를 운영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다,
당시 고구려에는 보수성이 강했던 연개소문과 균형을 이룰 만한 진보주의자가 없었다. 설혹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절대 권력자인 연개소문에게 나서서 진보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반면 신라에는 김춘추의 진보적 사고에 제동을 걸고 균형을 이루는 김유신이라는 보수주의자가 있었다. 그러기에 신라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유지한 체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어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양대 산맥을 이루며 사회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갈림 현상은 연령, 지역, 직업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연령별로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던 노년층과 6.25를 겪으며 전쟁의 비극을 겪어본 세대들이 보수적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나라 잃은 슬픔과 전쟁의 고통 속에 가난을 몸소 체험하며 ‘ 가진 것을 지켜야 된다.’는 심리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라를 되찾게 된 안도감과 가난의 고통 속에서 얻어진 현재의 위치와 재산을 지켜야한다는 논리가 강하다. 반면 가난의 보릿고개 이후에 태어 난 세대들은 비교적 고통을 모르고 자랐기에 현실의 안주에서 벗어난 변화된 삶에 대한 욕구가 있어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
지역별로는 군사정권시절 비교적 많은 기득권을 누려온 영남지역과 조선시대부터 양반들이 많이 살아온 충청도가 보수적 색채가 강하고 군사정권시절 피해를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호남지역이 기득권층을 깨고 변화를 바라는 진보 성격이 강하다.
직업적으로는 고용주는 지키려는 의지가 변화의 욕구보다 강해 보수적인 성격이 강하고 노동자는 변화의 욕구가 기존의 틀을 유지하려는 생각보다 강해 진보성향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6공화국까지의 군사정권과 옹호파들을 독재세력이라 불렀고 반대세력을 민주세력이라고 불렀다. 문민정부 이후 군사정권이 뿌리인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을 보수정당으로 민주세력이 뿌리인 민주당(현재 더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표현해왔다.
<진화 되어가는 보수와 진보>
이러한 여러 가지의 구조적인면을 떠나 대한민국사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계속되어왔다. 이러한 이유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정체성을 떠나 생활 속의 보수, 진보로 변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논쟁은 이제 무조건 조금의 변화도 꺼려하는 극보수와 무조건 완전히 새로 뜯어 고치려고 하는 급진보에 속해 있는 일부 골수분자들과 국가의 정책을 담당하는 정치권, 이론을 적립시키는 학자들에 의해 거론되고 있을 뿐 대 다수 국민들은 생활환경 속에서의 보수와 진보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생활 속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비교적 타협과 합의를 통해 균형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사 간의 극한 대립도 결국은 협상을 통해 타결을 하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대중 집회에서도 한쪽의 일방적인 집회가 아닌 서로의 존재감을 위해 항상 쌍방이 같이 움직이는 형태로 굳어지고 있다.
또한 집회의 방법도 예전에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맞불작전으로 집회를 열어 폭력이 난무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시간을 겹치지 않게 하고 본인들의 주장과 상대 진영이 아닌 목적한 바를 이슈화 시켜 관철시키려는 논리와 행동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보수, 진보진영이 발전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지금의 보수와 진보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언론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의 발전적 균형은 이루어 내기가 어렵다.
국민의 여론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영으로 이끌기 위한 보수 신문과 진보신문의 극대극의 사설이나 기사내용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끼게 될 정도로 그 논조가 강하다. 방송역시도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보수와 진보진영에 심리적 자극을 주고 있다.
<발전적 보수와 진보 구축위해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의 변화가 필요.>
시민단체들 역시 각기 개념이 다른 상대방의 정체성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노선과 이념이 절대적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극한발언 극한투쟁으로 적대감을 만들며 보수와 진보의 발전적 균형의 저해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보수와 진보와의 대립이 좀 더 낳은 여건과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발전적 행동이라고 본다면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들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객관성을 벗어난 당리당략을 위한 세력 만들기, 자신들의 논조에 동조하는 세력 만들기,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슈 만들기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들이 현재의 틀을 벗어나 본인들이 추구하는 이념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주장해 나가며 상대방에 대한 정체성도 인정해 주면서 50%씩만 이해하며 행동해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양대 산맥은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수레바퀴로 인정받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라는 쌍두마차는 그 모습이 삶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다. 극 보수를 내 세우며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아 왔던 세력들은 ‘수구 꼴통’으로 불려 지며 점점 더 그 세력이 약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급 진보를 표방하며 폭력과 헌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좌빨’ 소리를 듣던 세력들도 지난번 이석기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종북이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이석기는 구속되고 통진당은 궤멸되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사회의 독이 아닌 약이 되기 위한 새로운 대한민국식 ‘새보수’와 ‘새진보’가 탄생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이념과 정책의 합리적 논쟁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아 가야되고 삶의 질을 향상 시켜가는 생활 속의 보수와 진보로 진화되어야 한다.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맞추며 푸른창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테두리 안에서 좀 더 낳은 삶을 위해 힘찬 날개를 펼쳐야한다.
<진보의 울타 속에서 기생했던 ‘종북세력’ 고립된 신세로 전락>
이러한 한 나라를 지탱해 가는 양대 산맥의 틀을 벗어나 특별한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진보라는 탈을 쓰고 별도의 이념을 만들어 이론과 행동으로 무장한 종북세력이 있다.
이들은 겉으로는 진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내면으로는 또 다른 이념사상을 만들어 놓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지은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 가치를 넘어서는 반국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 종북세력들이 가장 크게 기댈 언덕은 정치집단체인 정당이고 나아가 국회의원이 되어 모든 일을 보장받아 가며 국회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이 목적한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동안 이들 종북세력들은 진보를 가장해 정당에 들어가 활동을 하거나 정당을 창당해 왔다. 이들은 자신의 세력들을 당원으로 참여시켜 합법적인 테두리에 넣어 놓고 집단적 행동으로 세를 과시하거나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가며 거리낌 없이 종북활동을 하고 있다.
군사정권시절 이들은 지하에 숨어서 점조직으로 은밀히 활동해 오다가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는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후 서서히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양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승승장구 해 오던 이들 종북세력들은 지난번 이석기 사건이 터지면서 와해 되었고 이번 20대 총선을 계기로 다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다시 일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글쓴이 장석창
현) 미래정치경제연구원 원장
현) 제3세력전국연합 상임대표
전) 선진한국당 대표
저서 : 실화소설 ‘교도소담장위를 걷는 남자’ (필명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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