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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의 관리 능력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 정치학자 장훈 회고록 ③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5-09-09 12: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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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 인수위와 함께 특검도 출범하는 것이 시나브로 대한민국 현실정치의 뉴노멀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특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새싹이 나기는커녕 머잖아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은근슬쩍 돌아온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부도, 김영삼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특검과 나란히 출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역사적 변화와 혁신을 착실히 일궈냈다.

노태우는 정권을 잡은 후 대선에서의 경쟁자들을 사법처리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국회에서 헌정사 최초의 여대야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즉각적인 정권타도 투쟁에 착수하지 않았다. 장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군부 정권에서 민간 정부로의 전환이 순조롭게 진행된 데는 노태우 정부의 빼어난 관리 능력이 있었다는,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금기처럼 기피되어온 아주 불편한 진실을 서슴없이 거론했다.

유럽식 정치모델의 무조건 추종은 옳지 않아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1노 3김이 이끌던 4당 체제는 ‘황금분할’이라는 여론의 찬사에 걸맞게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다. 법치의 탈을 쓴 ‘정치의 사법화’가 횡행하는 오늘날 한국정치의 황량한 풍토와는 대단히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홍희경(이하 홍) :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군사독재정권이라는 적을 공유했습니다. 주적 개념이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친문, 친윤, 친명은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피아 관계의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계파 단위만 놓고 봤을 때는 한국 정치의 수준이 발전하기는커녕 도리어 후퇴했다는 징후가 역력합니다. 투박하게 인쇄된 종이 당보 뿌리며 다니던 시절과 견주어 다들 손에 휴대전화기 들고 다니는 지금이 정치인들도, 지지자들도 오히려 더 저질이 됐습니다.


장훈(이하 장) : 정치가 퇴보한 인상을 주는 일차적 원인은 김대중과 김영삼을 뒤이을 빼어난 정치지도자가 등장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공 : 대장이 지질해지니 부하들도 덩달아 지질해졌습니다.


장 : 양김의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훌쩍 넘는 기나긴 시련과 고난을 거치며 완성됐습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그것에 필적하는 경험치와 단련의 과정을 가진 리더가 두 사람이 현실정치의 공간에서 퇴장한 다음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공 : 지금은 30년은커녕 3년만 정치권에 몸담아도 구태라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장 : YS와 DJ처럼 오랜 풍상을 겪으며 훈련되고 다듬어진 결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인물은 앞으로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비범한 리더 밑에서 비범한 참모와 측근이 출현하기 마련입니다. 리더가 비범하지 않으니 참모와 측근들도 비범하지 않은 게 당연하겠지요.


공 : 윗물이 맹탕이면 아랫물도 맹탕입니다.


장 : 거인들의 시대는 김대중과 김영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합니다.


공 : 제13대 총선으로 탄생한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는 황금분할로 불리며 정치의 생산성과 효능감을 한껏 높였습니다. 우리나라 의회정치의 황금기였습니다. 그런데 빛이 밝은 만큼 그늘도 짙었습니다. 영호남 대결로 상징되는 지역주의 구도가 확실히 고착됐기 때문입니다.


장 : 한 나라의 정치 지형은 한 사회의 사회적 갈등구조를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민주화 초기의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갈등구조의 중심축을 이룬 게 지역주의 구도였습니다. 저는 김대중과 김영삼을 망국적인 지역주의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역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선진적인 갈등구조가 두 사람이 정치를 주도하는 때는 아직 출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기반한 진보정당이 정치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였습니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중도보수 정도에 자리한 양김이 경쟁의 장을 주도하다 보니 지역주의 구도가 정치적 갈등구조의 핵심으로 기능하게 됐습니다. 지역주의의 뿌리를 면밀하게 따지자면 박정희 정권이 채택한 불균등 산업화 전략에서 찾아야 옳습니다. ‘영남 우선-호남 소외’의 박정희식 경제개발 정책이 지역주의 정치 구도의 모태로 평가돼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지역주의가 지배적 모순이 된 탓에 건전한 정책 경쟁이 실종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시대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으로 보입니다.


공 : 1층도 아직 완전히 짓지 않았는데, 왜 2층을 올리지 않느냐고 독촉하는 격이네요.


장 : 첫째로,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이념적인 거리나 노선상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학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정책적 차별성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기기 어려웠습니다.


둘째로,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일각에는 서유럽 모델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흐름이 존재해왔습니다. 그분들은 서유럽을 한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좌표로 설정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분들은 우리나라도 서유럽이나 북유럽 나라들처럼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정치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정당 체제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서유럽 사회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에 겪었던 1차 민주화는 노동자 계급의 전면적인 정치적 세력화와 병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와는 달리 유럽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사회의 민주화와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 덕분에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정책경쟁이 정치의 주요한 갈등기제로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었습니다. 서유럽 역사에 내장된 그와 같은 사회경제적 코드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는 탑재되지 못했습니다.


한국과 서유럽의 역사적 연원과 전개 양식이 명백히 다름에도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를 향해 왜 선명한 이념과 체계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느냐고 닦달하는 일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서구 중심의 경험과 사례를 우리나라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민주화의 경로와 계기와 방식이 서구의 그것들과 분명히 다른데 유럽 모델이 우리나라에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이식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매우 경직된 사고이자 대단히 단선적인 역사관일 수 있습니다.


공 :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초기에 집필한 책들의 내용을 읽어보면 조선일보 비판이 절반이고, 진보좌파 학자들 비판이 나머지 절반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비판은 언론개혁 차원의 비판이었습니다. 그럼 진보좌파 학자들은 어째서 강준만의 표적이 되었느냐? 그들이 3김 청산을 주야장천 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3김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YS가 대통령인 시절이었으니 실제론 DJ 퇴진에 주안점이 두어졌습니다. 김대중 탓에 지역주의가 가일층 강화되고 있다면서요.


장 : 지역주의 구도의 책임을 양김에게 전가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였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 가장 저평가된 정부


공 : 시곗바늘을 다시 몇 년 앞으로 되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군사 정권과 민간 정부의 과도기 성격을 띠고 출발했습니다. ‘반군반민’의 노태우에게 전두환의 5공을 청산하는 작업은 양날의 칼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의 후계자이면서 동시에 청산인 역할을 하게 된 배경과 의도는 뭐였을까요? 노태우는 굉장히 복합적인 캐릭터인지라 아직도 제대로 된 입체적 조명이 이뤄지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장 : 저는 노태우 정부 초기에 공교롭게도 한국에 있지 않았습니다.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역대 정부들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정부라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여소야대 구도였던 4당 체제는 집권세력 입장에서 생각하면 매우 곤혹스러운 정치지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노태우 정부는 4당 체제에서 정권의 존립을 흔들 만한 사건 없이 국정을 무난히 운영해갔습니다. 더욱이 노태우 정부 집권기는 국제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노 정부는 동서냉전 체제의 붕괴라는 세계질서의 도전에 대해 북방 정책이라는 전향적인 외교 노선으로 적극적으로 응전해나갔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와 김종필이 득표한 표수를 고려하면 한국이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대열에 진입했다고 단언하기는 일렀습니다.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민주화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후보자들, 곧 노태우와 김종필에게 표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르고 연약한 민주주의 체제가 노태우 정부를 거치며 연착륙함으로써 이후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차례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부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간 정치인들이 이끄는 민주정부 시대로의 전환과 이행이 부드럽게 이뤄지도록 해준 노태우 정부의 관리 능력이 이제는 재평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노태우 시대가 마치 짧고 하찮은 막간극쯤으로 오랫동안 취급돼왔습니다.


공 :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88년 7월 7일에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약칭 7·7선언을 발표됐습니다. 이 선언의 작성 작업을 실제로는 이홍구 당시 국토통일원(현재의 통일부의 전신) 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7·7 선언은 그 내용의 파격성과 진취성 때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선언을 북한을 겨냥해 발표한 또 다른 6·29 선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홍구 장관은 나중에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장 : 학자로서의 이홍구 총리의 주요한 연구 분야는 정치사상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노태우 정부의 초대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임명되기 오래전부터 남북한의 통일과 관련된 문제들을 연구해왔습니다.


공 : 외교와 안보가 그분의 주된 전공이었나요?


장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총리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사회보전의 공리와 정치발전」입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대의 근대화 과정을 탐구한 논문이었습니다. 이 총리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학자 시절부터 김영삼과 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와의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관에 취임한 다음에도 노 대통령의 양해 아래 양김과 꾸준히 소통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7·7 선언은 여야의 경계를 초월하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 기반을 확보할 수가 있었습니다.


홍 : 남북한의 연방제를 지향하겠다는 뜻이 7·7 선언에 함의돼 있었나요?


장 : 본격적인 연방제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느슨한 국가연합 정도를 장기적으로 염두에 두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 : 제가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와 5·18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원죄를 안고서 국가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악(惡)하게 정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집권한 다음에는 최대한 착하게 보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자면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자기들끼리 호흡이 척척 잘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명색이 검찰조직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두 사람은 정권 재창출 목표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부터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민간인인 윤과 한의 정치적 역량은 어째서 군인인 전과 노만도 못했던 걸까요?


장 : 선거로 야당을 이기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야당 정치인들의 사법 리스크에만 의지한 탓이 크겠죠.


공 : 제가 윤석열 정권의 집권 시 행태를 목격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조금은 긍정적 방향으로 재평가하게 됐습니다. 노태우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부를 겨뤘던 경쟁자들을 검찰과 경찰 같은 사법기관을 동원해 제거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1987년 대선이 끝나고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리지는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의외의 상황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3김에 대한 사법처리를 대선 후에 어째서 꾀하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정권이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법원까지 확실하게 장악했던 시절이었거든요.


장 : 노 대통령은 대선 경쟁자들의 정치생명을 사법적 수단으로 끊어놓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설령 끊고 싶었다고 해도 그즈음의 정치적 세력분포와 사회적 역학관계가 그러한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요.


덧붙이는 글

「정치학자 장훈 회고록」의 ‘미리보기’ 1탄을 이것으로 마친다. 정리가 완료되는 대로 2탄도 곧 공개될 예정임을 독자들께 알려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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