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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평전」이 나오면 어떨까 - ‘욕망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위한 기록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10-04 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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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는 서로 견원지간에 있는 태극기 세대와 소위 진보대학생 세대의 욕망을 두루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은 한국을 방문한 일본 측 퍼스트레이디 기시다 유코 여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모습 (사진출처 : 대통령실 누리집)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세칭 ‘김건희 특검법’)」이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재표결에서 찬성 194표에 반대 104표로 부결되었다. 이례적으로 재적 의원 300명 전원이 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가결에 필요한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야당은 더욱 강도 높은 내용의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안을 다시금 발의할 계획임을 공언하고 있다. 집권 여당 내에서 4표의 이탈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 곧 거부권을 또다시 무람없이 행사할 게 명약관화하다.

 

김건희 여사는 내로라하는 정치인도, 위세 높은 재벌그룹 회장도, 유명 스포츠 스타도, 인기 정상을 질주하는 연예인도, 그리고 최소한 아직은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김건희를 모르면 북한에서 침투시킨 간첩이나 일본으로부터 잠입한 밀정으로 오해받을 지경으로 그 이름 석 자가 일반 국민의 입에 일상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오죽하면 올해 추석 연휴를 즈음해 뉴스를 달궜던 주요 검색어들의 구글 트렌드 평균 지수에서 ‘김건희’가 ‘물가’와 ‘응급실’을 능가ㆍ압도했겠는가? 물가도 김건희만큼은 뛰지는 못했고, 응급실도 김건희와 비교하면 바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들어와 특정한 개인이 아이부터 어르신에 이르는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계속 강력히 잡아끈 경우가 세 차례 정도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4강 신화를 달성한 거스 히딩크 감독 열풍이었다.

 

두 번째는 메가톤급 빅히트곡 「강남 스타일」을 발표해 전 세계를 현란한 말춤의 향연으로 물들인 가수 싸이 신드롬이었다.

 

세 번째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작금의 소동과 논란이다.

 

히딩크의 업적은 축구의 변방 한국을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단숨에 밀어 올렸다는 것이다. 싸이의 위업은 K-POP의 매력을 아시아권을 뛰어넘어 지구촌 전체로 널리 퍼뜨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김건희가 창출해낸 최고의 성과물은 무엇일까? 이기홍 동아일보 대기자가 보수 성향 매체 소속 언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작심하고 지적했듯이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문제는 히딩크의 업적과 싸이의 위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김건희의 성과물은 김 여사 자신과 그 주변인들로부터만 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주변인들 집단에는 남편인 윤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겠으나….

 

김건희 사태가 제기한 본질적 과제는 그가 윤석열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지를 가리고 데 있지 않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떻게 순식간에 비참해지는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판을 이참에 확실하게 세우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 여사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드리울지 모를 부정적 파장의 범위와 성격을 진단하는 일로 이제 차츰차츰 무게중심을 옮겨가면 어떨까? 필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제목을 약간 변형해 김건희를 ‘욕망이라는 이름의 천사’로 규정하련다.

 

김명신에서 김건희로 개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김건희 여사를 키운 8할은 적나라한 욕망이었다. 다른 인간들에게는 욕망의 화신으로 보였을 김건희가 오직 윤석열에게만은 천사였을 테고, 따라서 김 여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천사’로 불려도 무방할 터이다.

 

권력이 권력일 때는 사회과학적 분석대상이 된다. 권력이 더는 권력이 아닐 때는 문화예술의 창작 소재가 된다. 이러한 초점이동의 법칙은 승패가 갈렸을 때도 적용된다. 승리한 한나라 유방은 역사가의 붓끝에서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패배한 항우는 영화 「패왕별희」에서 증명된 바처럼 무수한 예술가들의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김건희 여사는 더 이상은 권력자가 아니게 될 때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과, 극우 유튜버들의 악다구니와,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같은 인사들의 맹목적 과잉 충성의 약발도 그 수명과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네 명이 이탈표를 던졌지만, 내일은 열네 명이, 모레는 마흔 명이 이탈표를 던지리라.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얘기가 왜 나왔겠는가?

 

김건희는 산업화 세대의 탐욕을 늦둥이 막내 격으로 대변한다. 재산증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탈법을 서슴지 않아온 브레이크 없는 물욕이 그것이다. 이와 동시에 김건희는 탈근대(Postmodern) 세대의 맏이인 왕년의 X세대의 허영심을 선도적으로 웅변해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돋보이고 싶어 하는 무절제한 인정욕구가 그것이다.

 

과도한 욕망은 종국에는 욕망의 객체에 뒤이어 주체마저 파괴하기 마련이다. 김건희가 써온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비극적 대서사시로 귀결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연유다. 김 여사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평균적 한국인들은 증오에서 동정으로의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사실이다.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초췌한 얼굴로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교대로 받는 김 여사 모습이 나중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현재 김건희에게 분노한 민심의 50퍼센트는 즉시 연민으로 돌변해 공중으로 산산이 휘발될 게 뻔하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소녀가 일국의 퍼스트레이디도 화려하게 비상했다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거대하고 극적인 서사를 누군가는 아주 객관적 시각에서 글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김건희 평전」 집필 작업에 서서히 착수해야겠다고 결심한 까닭이다.

 

세상에는 「백범 김구 평전」과 「체 게바라 평전」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완용 평전」도 쓰였고, 「폴포트 평전」도 발간돼 있다.

 

김 여사의 그간의 소행이 아무리 괘씸하고 고약하다고 한들 김건희는 공산 캄보디아의 독재자였던 폴포트와는 달리 수백만 명의 무고한 인민을 대량학살하지도 않았고, 친일역적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과는 다르게 나라의 주권을 외세에 비열하게 팔아먹지도 않았다. 그러니 「김건희 평전」이 실제로 정식 종이책으로 완성되면 반감과 거부감을 너무 드러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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