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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러시아의 동맹 복원에 부쳐 - 보수 정부가 냉전 극복에 앞장섰던 그때를 아십니까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6-21 01: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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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계승했음에도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과감한 북방 외교 정책에 나섬으로써 한반도에서 냉전의 먹구름을 걷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미지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 소식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러 양국의 동맹을 28년 만에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는 두 나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동맹’ 차원으로까지는 아직 규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양측이 체결한 이른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는 협정 당사국 중 한 나라가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돌입했을 경우 다른 나라가 지체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과 원조를 제공하는 조항이 포함된 걸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군사동맹에 준하는 내용인 셈이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로 자연스럽게 자동폐기된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동맹 부활은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면 우리나라가 노태우 정부 이래 범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꾸준하게 추진해온 북방외교가 강제종료됐음을 뜻한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다시금 단절되고 격리당한 대한민국이 어디에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필자 같은 일개 평범한 양민조차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당장 크고 작은 기업들부터가 중국과 러시아 시장을 대체할 거래처를 서둘러 물색해야만 할 처지인 탓이다.

 

한반도가 냉전의 최전선에 또다시 서게 될지도 모를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세이다. 남북한이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을 서로 주고받은 사태는 핵폭탄과 각종 첨단 유도무기로 이미 중무장할 대로 중무장한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연합의 전면적 대립과 갈등이 임박했음을 희화적으로 예고한 일인지 모른다.

 

때마침 나는 박희태 전 법무부 장관이 2006년 연초에 펴낸 「대변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심심풀이 삼아 막 읽고 난 터였다. 2006년은 지방선거가 있던 해였다. 경상남도 도지사 출마를 염두에 둔 전형적인 개인 홍보용 책으로 보였다.

 

박 전 장관은 현역 정치인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과 각기 여야를 대표하는 명대변인으로 나란히 명성을 날렸다. 이제는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이고 여염의 일반인들마저 널리 사용하는 내로남불, 곧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은 대변인 박희태가 창안해낸 히트작이었다. 그는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불명예스럽게 은퇴해야만 했다. 고승덕 전 의원이 2007년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희태가 돈봉투를 살포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정치인 박희태의 화양연화는 민주자유당 출범 초기에 그가 민정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민주계의 수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임과 총애를 만끽할 때였다. 1988년 4월 26일에 실시된 제13대 총선에서의 예상 밖의 패배로 말미암아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온 노태우 정부는 국내적으로는 3당 합당으로, 대외적으로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연쇄 수교로 국면전환을 도모했다. 북방 외교의 시작이었다.

 

북방 외교의 핵심 목표는 소련과 중국 두 공산주의 강대국과의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이었다. 이를 위해 고르바초프 집권 말기인 1990년 3월, 김영삼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과 박철언 정무장관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로 향했다.

 

초거대 여당 민자당은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세간에서 조롱당할 정도로 극심하고 만성적인 내홍에 시달렸다. 게다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고 호언장담한 김영삼도, 6공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막후정치를 주도하던 박철언도 차기 대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물과 기름인 두 사람의 신경전은 당연히 뜨겁고 날카로웠다.

 

모스크바로의 출발을 앞두고 김영삼은 박철언을 수행원 신분으로 평가절하했다. 박철언은 본인과 YS가 대등한 동행 관계라고 주장했다. 민주자유당의 내분과 혼란만큼 흥미진진한 기삿거리가 없는 터라 취재 나온 정치부 기자들이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 대변인인 박희태에게 물었고, 그러자 박희태는 수행도 아니고 동행도 아닌 일행이라고 황급하게 얼렁뚱땅 얼버무렸다는 게 박 전 장관의 책에 서술된 회고이다.

 

소련과의 정식 수교는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90년 9월 30일 성사됐다. 중국과의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은 2년이 더 경과한 1992년 8월 24일 실현되었다.

 

북방 외교의 실행 과정에서 적잖은 무리수가 두어졌고, 숱한 시행착오가 빚어졌다. 그러나 한반도에 밀접하고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4대 열강 전부와 외교 관계를 엶으로써 우리나라는 비교적 평화로운 국제환경 아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동시에 착실하게 이뤄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추세와 분위기는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한 다음에도 커다란 변동사항 없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북한과 러시아 양국이 냉전 시대와는 달리 군사동맹으로 엮이지 않은 덕분이었다.

 

북방 외교의 첫발을 내디딘 주역은 다름 아닌 전두환 정권의 부정적 유산과 흔적이 도처에 잔존해 있는 노태우 정부였다. 노태우가 누구던가? 「서울의 봄」으로 영화화된 12ㆍ12 군사반란의 주모자이자, 독재자 전두환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 군인 대통령 노태우조차 대륙으로 가는 길이 차단당해 답답하고 폐쇄된 섬처럼 돼버린 비좁은 한반도 남쪽에 장기간 갇혀온 한국의 경제영토와 외교영토를 반드시 넓히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진정한 수자원 강국은 강수량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치수 사업에 성공해 물그릇의 크기를 키운 나라이다.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당원의 물리적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당을 이끄는 지도자의 꿈이 작으면 해당 정당은 위대한 정당이 되기 어렵다.

 

국회의원 숫자와 당원 숫자에서 현재의 이재명의 민주당은 과거의 김대중의 민주당을 월등하게 능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닌 김대중의 민주당이 더 크다고 여긴다. 왜냐? 지도자의 꿈의 크기에서 김대중의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북방 외교의 기획과 실천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과 소련과 중국의 다급한 경제적 사정 등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제시돼왔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듯이 아무리 안팎의 여건이 호조를 띠어도 정치 지도자들의 꿈과 결단이 선행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일 뿐이다. 노태우가 개시해 김영삼이 계승하고 김대중이 완성시킨 창대한 북방 외교는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명운을 책임진 주요 지도자들의 꿈과 결단이 있었기에 마침내 성공적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20대 미혼 청년과 50대 중년 가장의 저축액이 비슷하면 후자가 무능하고 불성실하다고 욕먹기 마련이다. 젊은 세대에 지지기반을 둔 정당과 나이 먹은 중장년 세대가 주된 지지층인 정당이 꿈이 없기로는 피차일반이라면 전자가 더욱 가혹한 비판에 직면해야 마땅한 법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꿈이 없는 정당이다. 원내 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꿈이 없는 정당이다. 관건은 젊은 청년세대의 정당을 자임하는 개혁신당 역시 꿈이 없는 당이란 점에 있다.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에는 과연 어떤 꿈이 있는가? 유튜브 방송 채널 구독자 늘리겠다는 꿈? 개혁신당에 우호적인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 누리집들에서 ‘좋아요’ 개수 더 많이 받겠다는 꿈? 그건 꿈이 아니다. 단지 셈, 즉 계산속에 불과하다.

 

필자는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양문석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개혁신당이 상상력도, 창의력도 없는 정당이라는 냉정한 사실을 씁쓸한 기분으로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를 부정하고 저주하는 짓을 일삼으며 정치를 하는 ‘반(反)정치의 정치’의 극치일 정치의 사법화에 개혁신당도 은근슬쩍 편승했기 때문이다.

 

개혁신당이 더불어민주당에 진짜로 실효성 있는 정치적 타격감을 주고 싶었다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날짜인 6월 15일을 전후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화해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이준석 의원 같은 당내의 빅 마우스를 통해 발신해야만 했다. 6ㆍ15 정상회담에 관해 냉소적이기는 국민의힘이나 개혁신당이나 도긴개긴이었고, 개혁신당의 보수적 대북관은 “개혁신당은 어차피 국민의힘과 다시 합칠 정당”이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인식만 가일층 강화했을 따름이다.

 

노태우 시대의 보수당은 대한민국을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하려 애쓰는 집단이었다. 윤석열 정권에 들어와 한국의 보수 정당은 우리나라의 경제영토와 외교영토의 면적을 줄이지 못해 안달하는 시대착오적 정치세력의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중국과 빈번히 척지고 러시아와 사사건건 다투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아무리 중앙아시아 각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한들 이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신당이 남북관계와 그리고 한반도 문제와 연관해 국민의힘 2중대 역할을 자청하는 듯한 경직되고 수구적인 노선과 자세를 계속 고집한다면 천하람이 이재명과 양문석의 엇나가는 소행과 발언을 국회 윤리위에 골백번을 일러바친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를 포섭할 수도, 동요시킬 수도 없다.

 

개혁신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지지층을 의미 있는 규모로 뺏어오려면 한국의 외교영토와 경제영토를 확장하겠다는 큰 꿈이 있는 정당임을 어떻게든 증명해야 한다. 실상은 이준석 의원도, 천하람 원내대표도 개혁신당이 꿈은 없고 셈만 있는 조직임을 알리는 데 더 열심인 양상이다. 이준석과 천하람이 김영삼과 박철언의 사이처럼 견원지간으로 관계가 틀어질지언정 꿈이 있는 정치를 해주기를 바라는 건 나만의 터무니없는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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