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선두주자의 양두구육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카노사의 굴욕’을 방불하게 하는 기이하고 엽기적인 구도의 광경을 눈밭에서 그려낸 바로 다음 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가 두 사람이 각기 이끌고 있는 정당의 당대당 통합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뇌물 성격이 짙은 고가의 외제 명품 디올 가방을 수수해 궁지에 몰린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거취와 안위를 둘러싸고 세간의 지적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각본이 짜인 약속대련을 벌인 것인지, 아니면 윤 대통령과의 동반침몰을 두려워하는 한 위원장이 오랜 직장상사와의 차별화에 실제로 나선 까닭에 현 정권의 1인자와 2인자 사이에 진짜 심각한 충돌사태가 빚어진 것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두 개는 확실할 성싶다.
첫째로 윤석열과 한동훈의 불화를 국면전환과 난국타개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의심에 휩싸일 지경으로 민심의 흐름이 지금의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충청남도 서천군에 자리한 서천특화시장의 화재사고 현장은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장면을 보여주며 윤 대통령이 여권 전체와 보수진영 전반을 여전히 확고히 장악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한 장소였다는 점이다. 화재로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와 손실을 입었을 시장 상인들의 절규와 아우성을 외면하고 휑하니 가버린 대통령과 여당 총수의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엘리트 인사들이, 특히 검찰 출신의 법조 엘리트들이 민중의 고통과 서민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무감하고 무지한가를 다시금 드러낸 탓이다.
이쯤에서 카노사의 굴욕을 잠깐 짚고 넘어가자. 카노사의 굴욕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위치한 카노사 성채 근처에서 차가운 눈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빌었던 사건을 가리킨다.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윤 대통령을 기다리는 한 위원장은 영락없는 하인리히 4세였다. 물론 반전은 있다. 이때의 굴욕을 잊지 못한 황제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나중에 교황을 로마 교황청에서 쫓아냄으로써 통쾌한 복수극을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
한동훈은 본인이 X세대의 일원임을 서태지의 어느 유명한 노랫말까지 동원해가며 자랑스레 강조했다. X세대가 한창 젊고 팔팔하던 시절에 그들은 “우리는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수시로 기염을 토하며 톡톡 튀는 개성을 뽐냈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되 권력자의 심기에는 무척이나 민감한 것으로 보이는 오늘날의 한동훈의 사례는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과거의 X세대가 어째서 존재감도 없고, 고유의 독자적 의견과 목소리는 더더욱 없는 곁다리 유령세대로 전락했는지를 함축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근엄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마치 당장 땅바닥에 코를 박을 것처럼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폴더 인사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한동훈이 윤석열이 철회했다는 지지와 기대를 되찾으려고 몹시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한동훈이 윤석열의 지지와 기대를 회복하는 대가로 올해 20대 총선 승부의 열쇠를 쥔 청년세대의, 수도권 주민들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요구와 바람과는 가일층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한동훈은 왕년의 X세대답게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셈이다. 하필이면 민중의 시선 따위는….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함께 등장한 양당의 합당발표 기자회견을 유튜브 방송에서 생중계로 시청하며 나는 특이한 상황을 포착했다. 양 대표가 양당의 합당 방침을 밝힐 때 이 대표가 양향자 옆에 아주 바짝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묘사하면 결혼식장에 나란히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입장하는 신랑신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반면, 이준석이 마이크 앞에 섰을 때 양향자는 60센티미터 가량의 통상적인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다. 양당의 합당에 누가 더 적극적이고 열성적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상징적 대목이었다.
미래지대의 탄생과 수직적 정권교체
이준석은 내년 3월이면 대통령 출마 자격을 취득한다. 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는 것을 전제로 이준석이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는 만으로 42세에 정권을 잡게 된다.
평화적 방법으로 42세에 집권에 성공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는 흔하디흔하게 목격된다. 허나 60세 안팎의 느지막한 나이에 처음 금배지를 달려는 중고신인들이 아직 여의도 정치권에 즐비한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40대 초반 대통령의 출현은 파격과 이변 그 자체일 테다. 이준석은 이와 같은 파격과 이변에 도전하고 있다. 그의 계획과 소망대로 2027년에 집권하려면 이준석은 두 가지 방면에서 새롭고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제3지대를 ‘미래지대’로 질적으로 변환시키는 일이다. 기존의 제3지대는 양당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주축을 형성하기 십상이었다. 선거철만 도래하면 떴다방식으로 명멸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이준석은 지리멸렬을 되풀이해온 종전의 제3지대를 낡은 정치문법에 물들지 않고 동시에 기성의 사회적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젊은 청년층이 주도적으로 추동하는 패기 있고 진취적인 미래지대로 착실하고 완전하게 객토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과제의 연장선상에 가로놓여 있다. 40대 초반 대통령의 출현이 가능해지려면 이준석의 집권이 한국정치사의 근본적 전환점이자 분수령으로 기록되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사상 최초의 수직적 정권교체’로 명명하고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실현한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은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하나같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한 기득권 양당이 쳐놓은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의 단순하고 제한적인 권력이동 현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준석은, 그리고 과학기술 패권국가 건설 노선을 천명한 양향자는 가두리 양식장에서만 오가고 있는 정권이 가두리 양식장 바깥의 광활한 민심의 바다에서 창출되도록 해야만 한다. 양향자와 이준석은 거대 양당 이외의 정치세력과 그 지지층도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수직적 정권교체를 과감하게 도모ㆍ지향해야만 한다. 기득권 거대 양당이 오랫동안 주인 노릇을 해온 좁고 탁한 가두리 양식장 틀 안에서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더는 참다운 의미의 정권교체가 아닌 까닭에서이다.
미래지대의 집권을 통한 사상 최초의 수직적 정권교체. 어려운 과업이다. 그러나 작금에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전면적인 붕괴와 소멸과 해체를 너무 늦기 전에 막으려면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이다.
그러므로 이준석이 더 통 크게 양보하고 더 멀리 바라봐야 한다. 이유는 하나다. 이준석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희망과 개혁신당이 합당한 신당 내부에서 혹여 거칠고 격렬하게 펼쳐질지도 모를 주도권 쟁탈전에서 합당 파트너인 양향자를 제압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준결승에서 격돌할 대상은 다음 대선에서의 경쟁자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결승전에서 맞닥뜨릴 강적은 이준석보다 1살 연상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지금부터 10년 후면 한반도 정치의 중심에서 윤석열도, 이재명도, 한동훈도 모두 사라지겠지만 김정은은 20대 초중반 성인으로 성장해 있을 딸 김주애와 더불어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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