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7월 28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것으로 보도되었다. 언론이 ‘명락회동’으로 호명한 이번 만남에는 김영진 의원과 윤영찬 의원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의 핵심 측근 인사로 통하는 김 의원은 현재 당의 정무조정실장을 맡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처럼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윤 의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입성한 다음 이낙연을 지근거리에서 계속 돕고 있다.
이재명과 이낙연이 오랜 샅바싸움 끝에 대면한 지난주 금요일은 하필이면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30퍼센트대가 무너진 29퍼센트까지 하락했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가 두 사람의 만남에서 대화의 주제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을지는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만약 누군가 이 얘기를 꺼냈다면 이낙연 측에서 먼저 입에 올렸을지 모른다.
허나 뾰족하고 도발적인 직설화법 대신에 신중하고 두루뭉술한 은유와 암시를 즐겨 구사하는 이낙연의 평상시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가 최신 여론조사 자료를 구체적으로 동원해가며 이재명을 면전에서 공격ㆍ압박하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짙다. 지루한 사전조율을 거쳐 어렵게 성사된 민주당 현직 대표와 전직 대표의 만남은 일단은 탐색전 성격을 띠었다.
원내에 압도적 다수 의석을 보유한 제1야당이자 바로 직전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작금의 분위기를 필자가 조금은 장황하게 비유하자면 가족 중 한 명이 복권판매점에서 구매한 로또가 1등에 당첨됐는데 로또를 어디에 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온 집안을 들쑤시다가 급기야 식구들끼리 서로의 부주의와 무신경을 타박하는 어느 가난한 가정과 같다고 하겠다.
더불어민주당이 로또를 맞은 비결은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작년 여름 이후 줄곧 크게 앞서온 덕분이다. 조사작업을 수행하는 기관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잘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응답자의 비율을 20퍼센트 포인트 내외로 꾸준히 웃도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얻을 국회 의석 숫자를 벌써부터 바쁘게 계산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게 정상일 터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오기는 한다. 문제는 그게 즐거운 비명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 당권파인 친명세력이 비명들을 향해 퍼붓는 악담과 저주 섞인 비명이다. 옛 당권파인 비명그룹이 친명들을 겨냥해 쏟아내는 불평불만 가득한 비명이다.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이 상대방 탓에 분실됐다고 매양 지지고 볶으니 한때 20년 장기집권을 호언장담했단 거대 야당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나는 지금은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니다. 특정 정당의 특정 계파를 목이 터져라 응원할 필요도, 두둔할 이유도 없다. 민주당의 내분과 관련해 비교적 공정한 판단과 객관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중립적 입장인 셈이다.
이낙연이 견인해온 비명그룹은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이은 패배를 오롯이 이재명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정권은 한방에 잃어버리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야금야금 상실하기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의 지위에서 밀려나는 과정은 이재명이 유력 대선주자로 약진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이낙연이 당헌ㆍ당규까지 무리하게 개정하며 서울시장 후보와 부산시장 후보자를 공천했다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종료된 2021년 4월의 재보궐선거는 민주당 대선 패배의 단순한 예고편이 아니었다. 본편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때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서 한 개라도 건졌다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직을 중도사퇴한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으리라.
이재명은 대통령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는 구조의 정당을 친문으로부터 불완전하게 물려받았다. 왜 불완전이냐?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으로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공동등기 상태로 남아 있는 탓이다. 부부 사이도 아니고 동업자 관계도 아닌 양인이 등기를 공동명의로 설정하고 있자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불편함은 주로 이재명이 몫일 테다. 당의 유지와 관리를 둘러싼 책임을 전적으로 이재명이 담당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본질적 과오는 대선 패배에 있지 않다. 선거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병가지상사다. 때론 이길 수도 있고, 경우엔 따라선 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당 당수로서의 이재명의 최대 실수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을 겨우 5년 만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시킨 근본적 원인들에 대한 대수술을 차일피일 미뤄온 데 있다, 아니,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 슬며시 편승해왔다.
당권만 잡으면 만사 장땡인 정당. 공천권만 틀어쥐면 모든 게 용서되는 정당. 보편적 민심을 협애한 당심에 무릎 꿇리는 정당.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민주당이 걸린 3대 중병이다. 이재명 대표 시기에 들어와 이 중증질환들은 나아졌는가? 아니면, 더 악화됐는가? 이재명의 당에 대한 장악력이 확고해지는 것과 반비례해 개혁가와 혁신가로서의 그의 신선한 면모가 두드러지게 퇴색한 일은 이재명이 단기적으로는 웃어도, 장기적으로는 웃기 어려운 사태가 되어가고 있다.
‘명락대전’으로 불리는 친명과 비명의 갈등과 다툼이 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다시금 발돋움시키는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동력으로 작용하려면 친명과 비명 중 최소한 한쪽은 새로움을 대변해야 한다. 그렇지만 더불어민주당 고정지지층, 즉 집토끼들을 제외한 일반대중의 시선에는 낡은 세력과 또 다른 낡은 세력의 이전투구로 비칠 뿐이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강한 것이 새로운 것마저 이길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 안에는 강자가 되려는 인물과 집단은 차고 넘치되, 새로운 것이 되려는 사람과 세력은 그 존재감과 활동상이 뚜렷이 발견ㆍ목도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덕택에 매주 쉬지 않고 로또를 맞아도, 산 입에 자구만 거미줄을 치게 되는 저간의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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