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폐렴 박쥐 요리 VS 광우병 쇠고기 햄버거
“정크 푸드 권하는 미국이냐? 박쥐 먹는 중국이냐?”
중국 무한(武漢 : 현지발음 ‘우한’)에서 발병한 감염성 폐렴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필자의 뇌리에 불현듯 떠오른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ㆍ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진 무한 폐렴은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 무한시를 인적이 끊긴 유령도시로 바꿔놓았다. 중국과의 인적ㆍ물적 교류가 활발한 우리나라 국민들과 방역당국 입장에서는 잠시도 경계의 눈길을 늦춰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무한은 진시황에서 시작된 중국의 봉건전제체제를 끝장낸 1912년 가을의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지방이기도 하다. 한양과 한구와 더불어 무한 3진을 이뤘던 무창에 주둔한 신군 병사들은 만주족의 청나라를 타도하고 인민이 나라의 주권자로 우뚝 서는 민주공화국을 선포ㆍ수립할 것을 촉구하는 무창기의를 일으켰다. 이 무한 3진이 나중에 합쳐져 단일한 도시를 형성한 곳이 현재의 무한이다.
중국 지도를 살펴보면 무한은 중국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수도 북경과, 중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광동성과 광서성의 양광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망이 무한을 통과한다. 내륙의 사천성으로부터 중국 최대 도시인 번화한 상해로 흐르는 양자강이 무한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그러므로 위대한 혁명이든, 무시무시한 역병이든 무한에서 생긴 일은 사통팔달의 입체적인 육해공의 교통망을 타고서 중국 전역으로 곧장 확산되기 마련이다.
중국은 옆 좌석의 독감 환자
남한의 주류 진보진영은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반대시위를 통해 정치적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는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정권은 전임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겨냥한 무리한 검찰수사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다가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광우병이 잠재적인 미래의 공포라면 중국에서 발병한 무한 폐렴은 지금 눈앞에서 생생히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공포이다. 비유하자면, 미국이 내가 방금 탑승한 열차를 뒤따라오는 후속 열차에 타고 있는 독감 환자라면, 중국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서 온몸을 비틀며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는 중증 독감 환자이다. 한국이 봉착한 길고도 고통스러운 딜레마는 바로 옆 좌석에 앉은 독감 환자를 피해 자리를 옮길 수도, 열차에서 내릴 수도 없다는 데 있다.
광우병 바이러스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인 까닭에 생겨났단다. 중국의 무한 폐렴은 박쥐 몸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사람이 박쥐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로 옮겨 붙었다고 한다.
중국이 대규모 기근 사태를 겪은 시기는 대약진 운동 직후가 실질적으로 마지막이었다. 수많은 인민들이 집단적으로 아사하는 참극은 모택동 사후에 화국봉 체제의 짧은 막간극을 거쳐 등소평이 집권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이전에 벌써 완전히 막을 내렸던 셈이다. 화학비료의 보급과 외국으로부터의 대량의 식량 도입은 초근목피로도 배고픔이 해결이 안 되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수천 년 중국 역사를 관통해온 오랜 수치이자 악몽이었던 끔찍하고 엽기적인 식인행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대부분의 마을이 물고기가 서식하는 강과 바다에 면해 있는, 산나물이 도처에서 자라나는 울창한 삼림을 끼고 있는 한반도와 달리 광활한 벌판이 일망무제로 이어지는 지리적 조건을 가진 중국에서는 창고의 곡식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먹을거리가 전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불가피하게 박쥐마저 식량으로 삼아야만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궁하지 않다. 그들은 저 악명 높은 ‘대륙의 별미’를 즐기기 위해 날개 달린 건 비행기 빼고는, 다리가 네 개인 것은 탁자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게걸스럽게 먹는다. 소에게 소고기를 먹이는 짓도 징그럽지만, 사람이 시커먼 박쥐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광경은 생각만으로도 그에 못지않게 속이 메스꺼워진다. 진보좌파 성향의 몇몇 지식인들은 혐오를 타기해야만 할 야만적인 원초적 감정에 불과하다고 목청을 돋우고 있으나, 박쥐 먹는 인간은 혐오의 원천이자 대상일 뿐이다. 이건 드라큘라 백작이 사람 목의 피를 빠는 게 아니라, 마치 인간이 흡혈귀를 상대로 흡혈을 하는 꼴이다.
자금성의 그대에게
그럼에도 중국인의 유별한 별미선호 습성은 웬만해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듯싶다. 입맛은 유구한 문화적 전통의 산물인 탓이다. 이러한 중국을 향해 대국 운운하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조국인 한국을 소국으로 비하한 문재인 대통령의 그릇된 중국관은 잘못되어도 여간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더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의 오도된 대중국 인식이 문재인 정권의 핵심적 지지기반인 기득권 586 세대에게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586 세대가 머릿속에 그리는 표준적인 중국인의 이미지는 미국 언론인 아그메스 스메들리의 책인 「중국의 붉은 별」에 묘사된 모택동이 영도하는 대장정 시대의 질박하고 헌신적인 중국 공산당원들이다.
허나 586 세대가 알고 있는 중국은, 중국인은 낡은 역사책 속으로 들어간 지 이미 오래이다. 연안의 좁고 어두운 토굴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던 홍군의 후예들은 지금은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 제국주의자들로부터 구입한 수백만 달러짜리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서 자금성 안을 질주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박쥐 먹는 중국이냐? 정크 푸드 권하는 미국이냐? 필자는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한 쪽을 대한민국의 든든한 우방이자 믿을 만한 동맹국으로 삼는 게 바람직할지에 관해서 더 이상 구체적 언급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대장정 시절의 중국을 흠모하는 586 중장년층 기성세대와 박쥐 먹는 현대 중국을 혐오하는 젊은 밀레니얼 청년세대들이 정확히 정반대 선택을 하리라는 것이다.
왜냐? 지금은 2020년이니까! 1980년대에 「백 투 더 퓨처」를 서울시내 극장에서 신기한 듯 관람하고, 「우주의 원더키디」를 텔레비전 방송으로 흥미진진하게 시청하던 그 누구도 2020년대의 첨단 문명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 인류의 일부가 미개하게 박쥐나 삶아 먹으리라고는 전연 상상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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