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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 국밥집을 생각한다 - 2천 원짜리 해장국, 위정자에겐 경험이지만 인민에게는 실전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1-13 14: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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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국밥집


낙원상가 골목길의 서민형 밥집들,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장안의 명물이다. (MBC 문화방송 예능프로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당신 큰일 났네!”


한 그릇에 2천 원 하는 해장국집이 문들 닫고 그 자리에 커피 전문점이 새로 생겼다는 나의 얘기에 대한 아내의 반응이었다.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의 5호선 방면 5번 출구로 나와 낙원상가 쪽으로 50미터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조금은 스산하게 느껴지는 골목길 입구에 공깃밥까지 포함해 1인분 가격이 2,000원밖에 나가지 않는 국밥을 판매하는 노포가 위치해 있었다.


본래 노포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게를 뜻한다. 그렇지만 재개발의 광풍과 경기침체의 쓰나미가 수시로 순서를 바꿔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달아 밀려드는 탓으로 말미암아 대를 잇기는커녕 창업 후 1년만 무사히 장사를 계속해도 자영업자로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남한사회에서 오래된 점포는 일단은 노포라 불려도 큰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낙원상가 바로 옆의 국밥집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상호가 뭐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단, 분명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무조건 현찰로 선불에, 반찬은 깍두기 한 종류. 원하는 사람은 소주나 막걸리를 별도로 계산해 주문할 수도 있으며, 손님의 90퍼센트 이상은 주로 남성 노인들. 탑골공원 정문부터 낙원상가 뒤편에 이르는 구역이 어르신들의 해방구였다면, 이 해장국집은 그야말로 노인들을 위한 컵밥이었다.


낙원동 해장국과 인사동 호떡의 환상적 조합


낙원동에서 국밥을 먹으면 인사동에서 호떡도 살 수 있었다.나는 2012년 가을 무렵, 이 국밥집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실로 “유레카!”를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인사동의 어느 소호 사무실에서 모종의 선거기획 관련 활동을 수행 중이던 필자는 주머니가 몹시 가벼웠던지라 늘 값싼 식당을 찾아다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단돈 2천 원에 지나지 않는 고마운 해장국집 덕택에 나는 밥을 먹은 다음 후식으로 천 원짜리 호떡까지 여유 있게 사먹을 수가 있었다. ‘해장국+호떡’의 범상치 않은 음식궁합은 실제 영양가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열량 기준으로는 성인 한 명이 한 끼에 필요한 칼로리 수치에 그럭저럭 접근할 수 있었다.


이 해장국집은 현재는 방송이 종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배경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제작진과 출연자들 눈높이에서는 낙원동의 저렴한 국밥집이 정말 신기했던 모양이다. 1년에 수억대의 출연료를 벌어들이는 스타급 연예인들은 물론, 자신들은 춥고 배고픈 직종이라고 오랫동안 하소연해온 방송가의 비정규직 작가들조차 평소 2천 원짜리 해장국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는 않는 까닭에서였다.


2천 원짜리 해장국은 어떤 계층에게는 낭만적 추억과 아름다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반면, 어떤 계급에게는 치열한 현실이자 살 떨리는 실전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가장 근래에 2천 원짜리 해장국집에 들른 건 작년 정도의 일로 기억된다. 최근에는 종로3가에 갈 경우가 매우 드문 터였다.


등받이 없는 낡은 의자에 앉아 투박한 형태의 둥그런 탁자를 사이에 두고서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과 뒤섞여 어색한 표정으로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광경은 똑같았다. 가게 안에 빈자리가 없는 모습 역시 바뀌지 않았다. 값도 예전과 다름없이 2천 원이었다. 식단도, 결제 방식도, 식당 이용자들의 구성 분포도 그대로였다.


문제는 가게 밖 환경은 엄청난 속도로 정신없이 변화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임대료도, 인건비도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다. 식당 주인이 간디나 슈바이처 박사, 또는 테레사 수녀가 아닌 바에야 더 이상은 버티기가 불가능했으리라.


사람은 굶으면 죽는다, 문재인 정권 치하에서도…


형광등이 켜진 해장국집이 있던 자리에는 화려한 조명의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 그 많던 국밥집 노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인간은 늙어서 죽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때로는 운 없이 사고로 죽기도 한다. 당연히 먹지 않아도 죽는다.


굶으면 반드시 죽고 마는 연약한 존재로서 이왕이면 산해진미를 즐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허나 수중에 돈이 모자라면 2천 원짜리 해장국에라도 감지덕지해가며 목숨을 부지해야만 한다. 나는 취향의 충족과 추억 만들기를 목적으로 낙원동 해장국집을 향하지 않아왔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기에 거기에 갔다. 그곳을 찾아온 대부분의 고객들은 나와 매우 비슷한 심정과 동기였으리라.


밥은 인민의 하늘이다. 동시에 민심은 천심이다. 게다가 인간은 어제를 살려고 밥알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지 않는다. 내일, 곧 미래를 살아내고자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거듭한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정치에는 세 개의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가 사라졌다. 인민의 밥이 사라졌고, 진짜 민심이 사라졌고, 나라의 미래가 사라졌다.


미래가 사라진 지점에는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만을 매일 주야장천으로 다뤄대는 복고풍의 퇴영적인 과거 우려먹기가 지겹도록 들어섰다. 참다운 민심의 소재를 반영해야 마땅할 장소에는 리얼미터를 위시한 일부 여론조사 업체들이 집요하게 생성‧유포시키는 의심스럽고 믿기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가 뜬금없이 들어섰다. 인민의 하늘인 밥, 곧 민생경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 공간에는 공수처이니, 검찰개혁이니, 패스트 트랙이니 하는 공허하고 생소하기 짝이 없는 현대판 예송논쟁과 붕당싸움이 적반하장 격으로 괴물처럼 떡하니 들어섰다.


지금은 강남시대다.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강남패권주의’가 남한사회 거의 모든 분야와 영역들에서 끔찍하고 지독하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 고가의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부유하고 출세한 기득권자들끼리 보수와 진보로, 우파와 좌파로, 동맹파와 자주파로 적당히 편을 갈라 나라의 정권을 장악한다. 경제적 이권을 독점한다. 여론과 언론과 담론의 주도권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필자가 단언하건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든,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재탈환하든 2천 원짜리 가성비 우수한 착한 밥값의 해장국으로 뱃속의 허기를 달래야 하는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인민대중의 삶과 운명엔 대한민국이란 명칭의 한반도 남쪽의 분단된 가설국가(Temporary State)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열심히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내가 누구인가? 생활력은 더럽게 없어도 생존본능 하나만큼은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나이 아니던가? 싼값에 밥 먹는 과제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미 각자도생에 성공했다. 2천 원짜리 해장국집은 사라졌지만 1인당 2천 5백 원짜리 순두부찌개집과 3천 원짜리 콩나물비빔밥집은 주변에 의연히 건재해 있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천 원짜리 허름한 밥을 먹어야 하는 민중의 입장으로 꾸준히 역지사지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춘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진정한 인민의 정당이, 진정한 인민의 정부가, 진정한 인민의 국가가 출현하는 그날까지 나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서 매끼 악착같이 밥을 챙겨먹을 작정이다.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에겐 아직 몇 개의 값싼 밥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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