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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총수의 세 가지 자랑거리 - 당돌함의 이준석이냐, 노회함의 김어준이냐 ⑧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1-09-07 1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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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의 명랑한 기업문화


딴지일보 편집국원들이 독립해 만든 미디어몹에서 제작한 「헤딩라인 뉴스」는 현재까지도 단연 딴지스러운 콘텐츠였다.“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닙니다. 나라에 도둑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허풍쟁이 허본좌로부터 ‘원조 이재명’으로, 그리고 안철수와 함께 제3지대를 쌍끌이하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그 위상이 부쩍 제고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가 대통령 선거에 또다시 출사표를 던지면서 당차게 내뱉은 사자후이다.

 

“회사에 도둑이 있는 게 아닙니다. 회사에 돈이 너무 없는 것입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2002년에 투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유니텔에서 악명을 떨치고, 인터넷신문 대자보에서 약간의 필명을 날린 것을 제외하면 일개 네티즌에 지나지 않았던 필자가 딴지일보에 전격적으로 영입되는 기쁨을 누릴 당시에 김어준 총수는 나날이 극심해지는 회사의 자금난 때문에 커다란 고통과 압박을 받고 있었다.

 

총수가 직면한 경제적 고충을 알 턱이 없는 나는 김어준에게 한없는 부러움과 외경심을 느꼈다. 실력 있고 호감 가는 글쟁이들을 주변에 모으는 일이야말로 모든 논객들의 궁극적 로망인 연유에서였다. 이와 같은 로망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들이 대세로 자리 잡은 현재까지도 하등 변함이 없다. 단적으로, 유명 작가들이 직접 배우로 데뷔하려고 시도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내로라하는 연예인들마다 자신이 필자로 표시된 책을 펴냄으로써 예능인에서 예술인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려고 애쓴다.

 

딴지일보가 가장 딴지일보다웠던 시절인 2002년의 딴지일보에는 세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다.

 

첫 번째 자랑거리는 바둑판의 천원처럼 사무실 정중앙에 떡하니 설치된 목욕시설이었다. 공중전화 부스보다 조금 더 큰 이 샤위장은 사방이 반투명 유리로 덮여 있어 안에서 누군가 몸을 씻으면 그 노리끼리한 그림자가 고스란히 밖으로 투영되었다. 한마디로, 여직원들은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직원들도 사용을 꺼리는 기색이었다. 나는 딴지일보의 창간이념인 엽기성과 발랄함이 고스란히 반영된 문제의 명랑욕실이 실제로 쓰이는 경우를 딱 한 차례 육안으로 목격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남자가 열심히 때를 벗겼더랬다. 물론 총수는 아니었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국내 최고 높이를 과시하는 침대였다. 휴식과 취침이 필요한 직원들을 배려해 총수가 각별히 마련했다는 이 고층침대를 이용하려면 5미터 정도의 목제사다리를 타고서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이곳에서 잠을 자려면 한 가지 주의사항을 반드시 숙지해야만 했다. 절대 술 먹고 자지 말라는 당부였다. 숙취로 몸을 뒤척이다가 밑으로 떨어지면 치명적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러한 기괴한 형태와 구조로 침대를 들여놓은 이유는 바로 이곳이 김어준의 딴지일보인 데 있었다. 총수는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적 수구언론 매체들은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과감한 도전정신의 산물이라며 천장에 닿을락말락할 지경으로 위용 있게 솟아오른 초고도 침대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곤 했다. 나는 호기심에 당연히 침대에서 자봤다. 침대의 단점은 아찔한 높이가 아니었다. 땀내냄새와 담배냄새로 골고루 찌든 퀴퀴한 악취였다. 샤워실만 사무실 구석에 지었어도 상황이 조금은 나았으련만….

 

딴지정신의 결정체 최내현 편집장


김어준의 세 번째 자랑거리는 무생물인 사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다. 딴지일보의 명실상부한 2인자이자 편집국 식구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던 최내현 편집장이었다. 최내현 편집장은 글쟁이 생활을 사실상 청산하고 현재는 한 자원개발 전문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어준 총수는 외부 일정이 잦았다. 회생 불능의 회사는 사장이 늘 사무실에 붙박이로 앉아 있는 법이다. 찾아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탓이다. 총수가 외근 때문에 회사를 비운 시간이 많았다는 건 딴지일보의 운이 아직은 다하지 않았다는 긍정적 신호였다. 총수의 부재 시에 회사의 전반적 운영 및 매체의 제작과 편집은 최내현 편집장의 몫이 되었다.

 

최내현은 대단히 영민한 인물이었다. 스펙도 좋았을 뿐더러 두뇌회전도 빨랐다. 그는 무엇보다도 창의성이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게다가 미국 유학파답게 영어 실력 역시 출중했다. 나는 최내현이 전형적인 ‘강남 키드’란 점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이고, 그의 친삼촌이 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손꼽힌 「5월의 사회과학」의 저자였던 최정운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라는 사실은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눈치 채게 되었다. 그즈음의 최내현은 철저하게 아방가르드적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딴지일보의 안살림을 꾸리는 총책임자로서 그는 행동 하나하나마다 매우 겸손하고 조심스러웠다.

 

최내현은 김대중 대통령과는 한자마저도 똑같은 동명이인인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이 국민의정부를 흠집 내려는 목적에서 미국 유수의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의도적으로 오역했다는 특종을 딴지일보에 올리며 젊고 진보적인 누리꾼들 사이에서 혜성처럼 떠올랐다. 그 유명한 스타 편집장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작업하게 됐으니 나로서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여간 벅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⑨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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