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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춘보④] 박용진은 당은 바꿨어도 소신은 안 바꿨다 - 심춘보 다산저널 대표 겸 심촌정육식당 사장 인터뷰 ④ - 문재인 정부 때문에 자영업 어렵다는 지적에는 동의 못해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18-11-07 18: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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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처럼 정치에 과도하게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국민들은 전 세게 다른 나라에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주제의 이야기가 부동산 얘기, 아이들 공부 얘기, 그리고 정치 얘기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어왔겠는가? 한데 막상 알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모두 대보라고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 명도 채 열거하지 못하기 일쑤다. 초선 의원에, 변변한 경력이라고는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 정도가 고작인 박용진 의원이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한국정치의 신데렐라로 단박에 부각된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심춘보 다산저널 대표는 박용진 의원이 무명의 정치 지망생이던 시절부터 그를 꾸준히 주목해온 터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심춘보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님을 독자들은 능히 짐작할 수가 있으리라.

심춘보 다산저널 대표는 박용진 의원의 진보신당으로부터 민주당으로의 ‘이적’에는 충분한 명분과 정당성이 있다고 되풀이해 강조했다. 사진은 국회에서 취재기자들에게 빈틈없이 둘러싸인 박용진 의원의 모습. (사진출처 박용진 의원 페이스북)

박용진 의원, 지역구에서도 평판 좋아


공희준 (이하 공) : 대표님께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구을)을 엄청 칭찬하고 계십니다. 박용진 의원이 스타 정치인으로 단숨에 떠오른 이유는 이제 길가는 아이들조차 잘 알 정도입니다. 박 의원이 사립유치원들에서 고질적으로 자행되어온 다양한 유형의 비리들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전국적 쟁점입니다. 지역구 의원 박용진은 밖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빼어난 젊은 정치인가요? 왜냐면 중앙언론의 각광을 받는 유명 정치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작 지역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심춘보 (이하 심) : 제가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던 게 1987년 이맘때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을 겪어봤습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심리나 생리, 그리고 속성에 대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박용진 의원은 여의도의 중앙정치에서 촉망받는 것 못잖게 지역에서의 평판도 훌륭합니다. 박 의원이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어떤 정치인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지역의 현안들을 열심히 챙기고 있습니다. 폭염이 유달리 기승을 부렸던 올해 여름에도 무더위를 마다하지 않고서 골목골목을 발로 누비며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모습도 보여줬고요.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성과가 특별교부세입니다. 이곳 강북구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넉넉한 액수의 예산을 받아왔더라고요.


공 : 그래도 당선에 유리한 정당을 찾아 당을 바꿨다는 데서는 박용진 의원과 이언주 의원이 비슷하지 않나요? 어찌 보면 다 똑같은 철새 행각일 수도 있으니까요?


필자가 현재는 사라진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정치웹진인 서프라이즈의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할 때인 2003년 늦은 가을경, 한 열성 민노당원이 당시 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상태 중이던 박용진 민주노동당 위원장의 사면복권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나는 해당 기고문을 편집장의 권한으로 대문화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게재했다가 강경 친노들로부터의 무수한 악성댓글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허나 맹아 단계인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성장과 약진을 위해서 몇몇 극성스러운 노빠들의 악플을 사뿐히 즈려밟고 갔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잘한 결정으로 여겨진다.


심 : 저는 박용진 의원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박용진 의원이 어떤 연유에서 소속 정당을 옮겼느냐? 거대 정당에 입당해야 선거에서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박용진이 왜 국회의원이 돼야만 했느냐에 있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원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비단 박용진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가령 손학규나 안철수가 아무리 뛰어난들 국회의사당에 입성하지 못하면 자기 손으로 법안 하나 발의할 수가 없습니다. 예산 확보는 언감생심이고요. 박용진 의원은 그가 가진 소신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는 원내에 진입해야만 했습니다.


공 : 지금은 고인이 되신 후농 김상현 전 의원의 말씀을 빌리자면 물구나무를 서서라도요?


심 : 그렇죠. 진보신당에 머물러 있으면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보정치의 깃발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기는 중요하죠. 그렇지만 자신의 가치와 노선을 현실 정치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해내려면 민주당 입당 이외에는 박용진 의원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겁니다. 제가 박용진 의원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당은 바꿨어도 소신은 바뀌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공 : 박용진 의원에게는 금배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심 : 좋게 표현하자면 그렇죠.


그야말로 극찬의 연속이었다. 심춘보 대표는 이언주 의원에게 배신당한 신뢰와 기대를 박용진 의원에게 모두 쏟아 붓는 인상을 필자한테 주었다. 젊은 정치인에게 과도한 칭찬은 약이 아닌 독이 외려 될 수도 있는 까닭에 나는 화제를 잠시 전환시키기로 결심했다.


공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여름에 이 동네의 어느 옥탑방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때 여기 주민들이 실제 반응은 어땠나요? 가감 없이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심 : 7 대 3의 반응이었습니다.


공 : 어느 쪽이 7이죠?


심 :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7이었습니다. 부정적 반응이 3이었고요. 박원순 시장이 살았던 삼양동의 한 작은 옥탑방 근처가 좀 시끄러웠거든요. 취재진에 더해서 박 시장의 지지자와 반대자들까지 시도 때도 없이 소란스럽게 몰려왔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불편을 겪은 주민분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서민 체험을 마냥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었겠지요.  


공 : 박원순 시장에게 부정적인 서울시민들이 있는 것처럼 박용진 의원에게 부정적 의견인 강북구 주민들도 있을 텐데, 그분들은 무엇 때문에 박 의원을 싫어하는 건가요?


심 : 더불어민주당이 싫으니까 박용진 의원도 덩달아 탐탁하지 않은 거겠죠. 한마디로, 사람이 아닌 당이 싫은 겁니다. 그러나 박용진 의원이 사립유치원들의 잘못된 행태를 밝혀낸 데 대해서는 자유한국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도 박 의원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게 손님들이 대부분 강북구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가게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지역의 전반적 민심이 제 귀로 술술 들려오기 마련입니다. 그분들이 두런두런 나누시는 대화의 내용을 귀동냥으로 들어보면 박용진 의원을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는 칭찬하는 여론이 지지하는 정당을 불문하고 보편적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뚜기식품에 계속 있았으면 이사까지는 됐을 것


안정된 회사를 나와 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자영업자 심춘보의 삶은 한국경제의 부침과 언제나 함께해왔다. (사진제공 심촌정육식당 심춘보 사장)

다선저널 심춘보 대표의 견해를 청취하는 일은 아쉽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심촌정육식당 심춘보 사장의 생각을 들을 차례였다. 인간 심춘보가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표준적인 자영업자로서 정체성은 내가 그를 찾아온 또 다른 중차대한 동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문의 성격에 발맞춰 그에 대한 표기와 호칭이 ‘대표’에서 ‘사장’으로 변경됨을 독자들께서는 유의해주시기 바란다.


공 : 이제부터는 심촌정육식당 심춘보 사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터뷰의 2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인간 심춘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의 저변에는 그의 개인사가 토대처럼 깔려 있을 것 텐데, 심춘보 사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이 부분 역시 공개 가능한 범위 안쪽에서 말씀해주세요.


심 : 제가 젊었을 적에는 사업가로 대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일들에 부지런히 매진했습니다.


공 : 장사를 하셨다는 건가요?


심 : 제가 오뚜기식품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영업실적도 좋았고, 회사 내에서의 평판도 괜찮았습니다. 오뚜기식품에서 계속 성실히 근무했다면 감히 장담하건대 임원까지 승진했을 거예요. 


공 : 잠깐만요. 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원조 당원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우리나라 대기업 풍토에서 평범한 회사원이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야당 당원으로 활동한다는 게 있을 법한 일입니까?


심 : 제가 오뚜기식품이 근무했을 무렵에는 회사가 아직 대기업은 아니었습니다. 외형상의 연간 매출액이 2,300억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현재는 작년인 2016년 기준으로 2조 원이 훌쩍 넘지만요. 그리고 당연히 회사에서 모르게 정당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전업 당직자는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정치적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건 회사를 퇴직한 다음부터였습니다.


공 : 그러면 오뚜기식품에 다니신 기간은 얼마쯤 되나요?


심 : 2년 반 가량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4월 25일부터 제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아직 정식으로 규모 있게 창업을 해본 경험은 없다. 자기 사업에 착수한 자영업자들은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한 날을 본인의 생일날만큼이나 머릿속에 선연히 기억하고 있음을 필자는 심춘보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깨달았다.


심 : 저는 사업가로서의 첫발을 유통업 분야에서 내디뎠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택인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제가 당시 30대 초반임에도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그랜저 승용차를 몰고 다녔으니까요. 그 나이에 집도 두 채나 소유했고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었나 봅니다. 시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끄럼틀을 탔어요. 유통업으로 성공했다가, 유통업으로 홀랑 말아먹었죠. 다행히 양곡 도매업에 손을 대 당시에는 생소하던 포장쌀을 팔아서 또다시 큰돈을 거머쥐었습니다.


공 : 연도와 액수가 대략 어떻게 됩니까?


심 : 1995년에서 1996년에 걸친 시기였는데, 한 달에 2천만 원의 순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1997년 연말에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제가 갖고 있던 슈퍼마켓 두 군데를 그만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참 어려웠어요. 저는 결국 수중의 가게들을 전부 처분한 후에 나대집에 조립식으로 건물을 지은 다음 거기에 마트를 차려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영업한 경우가 서울시내에서는 제가 두 번째였을 거예요. 그때 저희 상점에 많은 분들이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견학을 왔습니다. 한동안 잘 나갔죠. 하지만 매상이 차츰차츰 줄고, 유사한 형태의 경쟁업체들이 인근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그동안 모아놨던 것들을 야금야금 까먹었습니다. 현재의 음식사업에 착수한 건 2006년도입니다.


공 : 음식점을 10년 넘게 운영해오셨으면 확고하게 입지를 다지신 셈입니다.


심 : 먹는장사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보기 좋게 말아먹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저로서는 나름 열심히 보고 다니며 음식장사를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과 실제로 막상 직접 해보는 건 크게 달랐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금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고집이 무척 센 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성격입니다. 그게 제 철학입니다. 물론 개똥철학이지만요. (웃음)


공 : 직업 정치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시네요. 정치인의 사전에는 ‘유감’은 있어도 ‘사과’는 없습니다. (웃음)


장사와 최저임금 인상은 별 관계 없어


필자는 심춘보 사장의 사업의 부침이 한국경제의 시대적 흥망성쇠와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자영업은 경기를 탄다”는 세간의 속설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그의 파란만장한 사업사(事業史)는 생생히 웅변해줬다. 그는 우리나라의 평균적 가게 형태가 점방에서 상회로, 상회에서 슈퍼로, 슈퍼에서 마트로 단계적으로 변화․발전해왔다며 대한민국 유통업의 변천사를 필자에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공 : 어르신들이 항상 아프시듯, 유사 이래로 경제는 늘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고르지 않게, 즉 평등하게 않게 힘들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다음에도 경제상황은 별로 나이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영업자 계층의 상황은 더더욱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여느 자영업자들과 매한가지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많이 어려우신가요?


심 : 어렵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와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데는 어폐가 있습니다. 저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꾸준히 나아져야 살맛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제 친구들이 저에게 “장사 잘 되냐?”고 물을 때마다 제가 늘 해온 대답이 있습니다. “꾸준히 안 된다”는 소리에요.


공 : 꾸준히 안 된다?


심 : 안 되도 그냥 안 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안 됩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다면 분명히 저에게 귀책사유가 있겠죠. 제가 장사 수완이 서투르던지, 아니면 종업원들이 불친절하다든지 해서요. 그러나 저의 잘못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오랫동안 자영업에 종사해온 이유에서인지 제 주변에 계신 분들의 대다수가 자영업을 영위하시는 분들입니다. 식당은 물론이고 마트, 맥줏집, 목욕탕, 카센터 등 업종 또한 다양합니다. 그분들 가운데 잘된다는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장사가 안 되다고 울상입니다. 그게 언제부터냐면 문재인 정부 출범하기 훨씬 이전부터입니다. 저는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그나마. 거의 모두가 세월호 참사와 메르트 사태를 겪으며 매출이 급락했었습니다. 그 후에 조금 나아지는 듯싶더니 더 이상 올라갈 조짐이 없어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장사가 꾸준히 안 됩니다.


공 : 자영업의 총체적 위기상황이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라는 의미인가요?


심 :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자영업이 급격히 어려워졌다는 지적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다만, 정권이 바뀔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통령 아래에서는 개인도, 국가도 형편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기대심리를 갖곤 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살리리라고 기대한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공 :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회생시키리라는 기대감을 가슴속에 진지하게 품고 있다면 문빠나 바보 가운데 하나겠죠. (웃음) 솔직히, 그저 더 나쁘게 만들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 :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747(연 경제성장률 7프로+국민소득 4만 불+세계 7위의 경제강국 도약) 공약처럼 허황된 약속을 남발하지는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뜻하지 않은 조기 대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이명박식의 황당무계하고 무책임한 장밋빛 공약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테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정치 지도자입니다. 문 대통령이 개도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만큼 우리나라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제가 추측하건대 아마 없을 거예요.


공 : 사장님의 독법에 근거하자면 문재인 정부 때문에 대한민국의 자영업이 몰락했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네요? 그렇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것만은 사실 아닙니까?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의 부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요.


심 : (단호한 어조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장사가 안 되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장사는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안 돼왔습니다. 물론 영향은 있죠. 최저임금이 갑자기 크게 올라간 여파로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가게의 수익구조가 악화됐거든요.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치는 이유는 매출은 그대로인데 여러 가지 고정비용만 추가로 더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안 되는 걸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돌리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 지적입니다. (⑤편에서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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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07 18: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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