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無信不立(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어떤 것도 올바르게 오랫동안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한글날이 겨우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건너온 사자성어를 거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 또한 자괴감이 든다. 이러한 자괴감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살펴보자 곱빼기기 되고 만다. 박근혜 시대에 쌓이고 쌓인 적폐가 물러난 곳에 문재인 시대의 늘어만 가는 불신이 턱하니 꿰차고 앉은 탓이다.
과거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억압적 정치권력에 의하여 입에 재갈이 물린 국내 언론을 대신해 우리나라의 청년과 지식인들에게 진실과 사실을 밝혀주는 전령사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이 미국의 소리가 일부 식자층과 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련한 미국 정부 측의 정확한 견해와 정책을 국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불만에서이다.
정말 딱한 노릇이다. 미국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여기는 보수 야당의 사대주의적인 배알 없음도 딱하고, 한영사전에도 그 의미가 ‘승인’으로 뻔히 나와 있는 영어 단어 ‘Approval’을 “뉘앙스로는 협력”이라고 얼토당토않게 풀이해 우겨대는 어느 유명 친정부 방송인의 기회주의적 과잉충성 또한 역시나 딱해 보인다.
사실과 진실 모두는 보수 야당의 사대주의적 배알 없음과 친정부 인사들의 기회주의적 과잉충성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소설가 노신은 “희망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나 사실과 진실은 그냥 쭉 있는 것이다. 그냥 쭉 있는 진실을 탐색하는 동반자로는 가벼운 영어사전 한 권이면 충분할 게다.
적폐가 사라진 자리에 불신이 들어섰다면 그것처럼 허망하고 당혹스러운 일도 드물 성싶다. 희망도 그러하듯, 신뢰의 가치도 공짜로 오지는 않는다. 사실과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나는 미국 백악관 공식 누리집에 올라온 지 꽤 된 두 가지 영어 문건을 힘에 부치더라도 직접 우리말로 차례로 옮겨보기로 작정했다.
하나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 사이에 열린 정상회담에 관한 미국 측의 공식적 영어 성명서이다. 또 다른 하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올해 유엔총회 연설문의 요지와 골자를 미국 백악관 당국자들이 자세히 해석해놓은 글이다. 당연히 영어로 작성돼 있다.
진학을 위한 목적도 아니고, 취업을 위한 목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 생활을 위한 목적은 더더욱 아닌 영어 공부를 권하는 사회는 두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일 걸로 짐작된다. 학문이 꽃피는 이상사회이거나. 아니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이 만연한 아수라장이거나.
2018년 가을의 한국사회가 이 두 개의 사회상 중에서 어느 쪽 시나리오에 보다 더 가까울지를 결정하는 일은 독자들의 판단에 전폭적으로 위임하련다.
□ Readout of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Moon Jae-in of the Republic of Korea
□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의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발표문
- September 24, 2018 (미국시간 2018년 9월 2일)
Today, President Donald J. Trump met with President Moon Jae-in of the Republic of Korea in New York. President Moon shared with President Trump the outcomes of the September 2018 inter-Korean summit, which included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hairman Kim Jong Un’s reiteration of his commitment to complete denuclearization.
▷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뉴욕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에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에는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완전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거듭된 약속도 포함돼 있습니다.
President Trump commended President Moon on conducting a successful third inter-Korean summit with Chairman Kim, and noted that there remained much work to be done to accomplish their mutual goal of achieving the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른 데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서 한미 공동의 목표인 최종적이며,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를 완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고 강조했습니다.
The two leaders agreed on the importance of maintaining vigorous enforcement of existing sanctions to ensure North Korea understands that denuclearization is the only path to economic prosperity and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 양국 정상은 현존하는 대북제재를 강력히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 일치를 이뤘습니다. 강력한 대북제재야말로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북한의 비핵화만이 한반도의 경제적 번영과 항구적 평화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Both leaders also discussed plans for a second summit between President Trump and Chairman Kim in the not too distant future and committed to closely coordinate on next steps.
▷ 한미 양국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머잖아 열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필요한 계획에 대해서도 역시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조치들에 대해서도 서로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미국 측 공식 문서를 통해서도 뚜렷이 재확인할 수가 있듯이 결론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수 야당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제를 방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친문세력 일각의 희망사항과는 다르게 북핵 폐기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검증 가능한 진실이다. 필자 같은 ‘영알못‘마저 번역의 대열에 동참하게끔 부추기는 지독한 불신 풍조가 나는 누적된 적폐만큼이나 무섭고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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